요동성육왕탑(遼東城育王塔)-삼국유사(三國遺事)
三寶感通錄載(삼보감통록재) : <삼보감통록(三寶感通錄)>에 이렇게 실려 있다.
高麗遼東城傍塔者(고려료동성방탑자) : 고구려 요동성(遼東城) 곁에 있는 탑은
古老傳云(고노전운) : 고로(古老)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러하다.
昔高麗聖王(석고려성왕) : 옛날 고구려 성왕(聖王)이
按行國界次(안행국계차) : 국경 지방을 순행하던 길에
至此城(지차성) : 이 성에 이르렀다.
見五色雲覆地(견오색운복지) : 여기에서 오색 구름이 땅을 덮는 것을 보고는
往尋雲中(왕심운중) : 그 구름 속을 찾아가 보았다.
有僧執錫而立(유승집석이입) : 거기엔 중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旣至便滅(기지편멸) : 다가 가보니 곧 없어져서
遠看還現(원간환현) : 멀리 바라보니 다시 나타났다
傍有土塔三重(방유토탑삼중) : 그 곁에는 세 겹으로 된 토탑(土塔)이 있는데
上如覆釜(상여복부) : 위는 솥을 덮은 것 같으나
不知是何(부지시하) :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更往覓僧(경왕멱승) : 이에 다시 가서 중을 찾아보았으나,
唯有荒草(유유황초) : 다만 거친 풀이 있을 뿐이다.
掘尋一丈(굴심일장) : 거기를 한 길 깊이나 되게 파보았더니
得杖幷履(득장병리) : 지팡이와 신이 나오고
又掘得銘(우굴득명) : 더 파 보았더니 명(銘)이 나왔는데
上有梵書(상유범서) : 명 위에 범서(梵書)가 있었다.
侍臣識之(시신식지) : 시신(侍臣)이 이 글을 알아보고
云是佛塔(운시불탑) : 불탑(佛塔)이라고 말하였다.
王委曲問詰(왕위곡문힐) : 왕이 자세한 것을 묻자
答曰(답왈) : 시신은 대답한다.
漢國有之(한국유지) : "이것은 한(漢)나라 때 있었던 것으로,
彼名蒲圖王(피명포도왕) : 그 이름을 포도왕이라 합니다."
(本作休屠王祭天金人(본작휴도왕제천금인) : (蒲圖王; 본래는 休屠王이라 했는데 하늘에 제사지내는 金人이다))
因生信(인생신) : 성왕은 이로부터 불교를 믿을 마음이 생겨서
起木塔七重(기목탑칠중) : 이내 칠중(七重)의 목탑(木塔)을 세웠고,
後佛法始至(후불법시지) : 뒤에 불법(佛法)이 비로소 전해 오자
具知始末(구지시말) : 그 시말(始末)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今更損高(금경손고) : 지금 다시 그 탑의 높이를 줄이다가
本塔朽壞(본탑후괴) : 본탑(本塔)이 썩어서 무너졌다.
育王所統一閻浮提洲(육왕소통일염부제주) : 아육왕(阿育王)이 통일했다는 염부재주에는
處處立塔(처처입탑) : 곳곳에 탑을 세웠으니
不足可怪(부족가괴) : 이는 괴상할 것이 없다.
又唐龍朔中(우당룡삭중) : 또한 당나라 용삭(龍朔) 연간에
有事遼左(유사료좌) : 요동에 전쟁이 벌어져서
行軍薛仁貴(행군설인귀) : 행군(行軍) 설인귀(薛仁貴)는
行至隋主討遼古地(행지수주토료고지) : 수양제가 토벌한 요동의 옛 땅에 이르렀다가
乃見山像(내견산상) : 여기에서 산에 있는 불상(佛像)을 보았는데
空曠蕭條(공광소조) : 모두 텅 비어 있고 몹시 쓸쓸하여
絶於行往(절어행왕) : 사람의 왕래가 끊어져 있었다.
問古老(문고노) : 고로(古老)에게 물었더니
云是先代所現(운시선대소현) : "이 불상은 선대(先代)에 나타난 것입니다."한다.
便圖寫來京師(편도사래경사) : 이에 이 불상을 그대로 그려 가지고 서울로 왔다
(具在若函(구재약함) : (이 사실은 모두 若函에 실려 있다))
按西漢與三國地理志(안서한여삼국지리지) : 서한(西漢)과 삼국(三國)의 지리지(地理地)를 상고해 보면
遼東城在鴨綠之外(료동성재압록지외) : 요동성은 압록강밖에 있으며,
屬漢幽州(속한유주) : 한(漢)나라 유주(幽州)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다.
高麗聖王未知何君(고려성왕미지하군) : 그러나 그때의 고구려 성왕이란 어느 임금인지 알 수가 없다.
或云東明聖帝(혹운동명성제) : 혹 동명성제(東明聖帝)라고 하나
疑非也(의비야) : 그렇지 않은 것 같다.
東明以前漢元帝建昭二年卽位(동명이전한원제건소이년즉위) : 동명제는 전한(前漢)의 원제(元帝) 건소(建昭) 2년(前 37)에 즉위해서
成帝鴻嘉壬寅升遐(성제홍가임인승하) : 성제(成帝) 홍가(鴻嘉) 임인(기원전 19)에 승하했으니,
于時漢亦未見貝葉(우시한역미견패엽) : 그때라면 한나라에서도 역시 패엽(貝葉)을 보지 못했는데
何得海外陪臣(하득해외배신) : 어떻게 해외(海外)의 배신(陪臣)으로서
已能識梵書乎(이능식범서호) : 범서(梵書)를 알아본단 말인가.
然稱佛爲蒲圖王(연칭불위포도왕) : 그러나 불(佛)을 포도왕(蒲圖王)이라고 했으니
似在西漢之時西域文字或有識之者(사재서한지시서역문자혹유식지자) : 서한(西漢) 때에도 필시 西域文字를 아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故云梵書爾(고운범서이) : 범서라고 했을 것이다.
按古傳(안고전) : 고전(古傳)을 상고해 보건대,
育王命鬼徒(육왕명귀도) : 아육왕(阿育王)이 귀신의 무리에게 명하여
每於九億人居地(매어구억인거지) : 인구 9억 명이 사는 곳마다
立一塔(입일탑) : 탑 하나씩을 세웠다고 한다.
如是起八萬四千於閻浮界內(여시기팔만사천어염부계내) : 이렇게 해서 염부계(閻浮界) 안에 8만 4,000개를 세워서
藏於巨石中(장어거석중) : 큰 돌 속에 감추어 두었다고 한다.
今處處有現瑞非一(금처처유현서비일) : 지금 여러 곳에서 그 상서로운 징조가 한두 번 나타난 것이 아니니
蓋眞身舍利(개진신사리) : 대개 진신(眞身)의 사리(舍利)란
感應難思矣(감응난사의) : 그 감응(感應)되는 것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讚曰(찬왈) : 찬(讚)해 말한다.
育王寶塔遍塵寰(육왕보탑편진환) : 야육왕의 보탑(寶塔)은 속세 곳곳에 세워져,
雨濕雲埋蘚纈斑(우습운매선힐반) : 비에 젖고 구름에 묻히고 이끼마저 아롱졌도다
想像當年行路眼(상상당년행로안) : 생각건데 그때의 길손들의 보는 눈은
幾人指點祭神墦(기인지점제신번) : 몇 사람이나 제신(祭神)의 무덤을 가리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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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성(遼東城)의 육왕탑(育王塔) 육왕은 아육왕(阿育王). 아쇼카 왕을 말한다.
<삼보감통록(三寶感通錄, 불교 관련 사실을 기록한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고구려 요동성(지금의 만주 요양(遼陽)) 옆에 있는 탑은 고로(古老)들의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러하다. 옛날 고구려 성왕(聖王)이 국경 지방을 순행하던 중에 이 성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오색구름이 땅을 뒤덮는 모습을 보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웬 스님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멀어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곁에 세 겹으로 쌓은 토탑(土塔)이 있었는데, 위는 솥을 덮어놓은 것 같지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가서 스님을 찾아보니, 거친 풀이 무성하게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을 한 길 남짓 파보았더니 지팡이와 신이 나왔고, 더 파 들어가니 명(銘)이 나왔는데, 명 위에 범서(梵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글)가 쓰여져 있었다. 시신(侍臣)이 글을 알아보고 말하였다.
“아것은 불탑(佛塔)입니다.”
왕이 자세히 물어보니 시신이 대답하였다.
“한(漢)나라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이름은 포도왕(蒲圖王, 휴도왕(休屠王)이라 쓰여 있었는데, 하늘에 제사지내는 금인(金人)이다)이라 합니다.”
성왕은 이때부터 불교에 대한 믿음이 생겨 칠중목탑(七重木塔)을 세웠다. 뒷날 불법(佛法)이 전해지자 전후 사정을 상세히 알게 되었다. 지금 그 탑의 높이를 줄이려고 하다가 본탑(本塔)이 썩어 무너졌다. 아육왕이 통일하였다는 염부제주(閻浮提州, 수미산 남족 바다 가운데 있다는 삼각형의 섬 이름. 인도를 말하기도 한다)에는 곳곳에 탑이 세워져 있다니 괴이할 것도 없다.
당나라 용삭(龍朔) 연간(661-663)에 요동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 때 행군(行軍) 설인귀(薛仁貴)가 수양제(隋煬帝)가 정벌했던 요동의 옛 땅에 이르러 산에 있는 불상(佛像)을 보았는데 텅 비고 훼뎅그레 하여 아주 쓸쓸한 데다 사람의 왕래가 끊어져 있었다. 고로(古老)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불상은 선대(先代)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불상을 똑같이 그려 서울로 왔다.(모두 약함(若函, 약자함(若字函). 불경을 함에 담아 넣고, 순서를 천자문의 차례로 표시한 것)에 쓰여 있다) 전한(前漢)과 삼국(三國)의 지리지(地理地)를 살펴보니, 요동성은 압록강 너머에 있고, 한나라 유주(幽州)에 속한다 하였다. 다만 고구려의 성왕이 어느 임금인지는 알 수 없다. 동명성제(東明聖帝)라고도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동명제는 전한의 원제(元帝) 건소(建昭) 2년(기원전 37)에 즉위해서 성제(成帝) 홍가(鴻嘉) 임인(任寅, 기원전 19)에 승하하였다. 그 시기라면 한나라에서도 아직 패엽(貝葉, 불경(佛經))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외(海外)의 배신(陪臣)이 범서(梵書)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부처를 포도왕(蒲圖王)이라 한 것을 보면 전한 때에도 서역문자(西域文字, 인도 문자. 산스크리트 어)를 아는 자가 있었고, 그 때문에 범서라 했을 것이다.
고전(古傳)을 살펴보건대, 아육왕이 귀신들에게 명하여 인구 9억 명이 사는 곳마다 탑 하나씩을 세우게 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염부계(閻浮界) 안에 8만 4,000개를 세워 큰 돌 속에 감추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 곳에서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개 진신사리(眞身舍利)란 그 감응(感應)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다.
찬(讚)한다.
아육왕의 보탑(寶塔)이 세상 곳곳마다 세워져
비에 젖고 구름에 묻혀 이끼마저 아롱졌네.
생각하니 그때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몇이나 제신(祭神)의 무덤을 가리켰을까.
三寶感通錄載 高麗遼東城傍塔者 古老傳云 昔高麗聖王 按行國界次 至此城 見五色雲覆地 往尋雲中 有僧執錫而立 旣至便滅 遠看還現 傍有土塔三重 上如覆釜 不知是何 更往覓僧 唯有荒草 掘尋一丈 得杖幷履 又掘得銘 上有梵書 侍臣識之 云是佛塔 王委曲問詰 答曰 漢國有之 彼名蒲圖王(本作休屠王祭天金人) 因生信 起木塔七重 後佛法始至 具知始末 今更損高 本塔朽壞 育王所統一閻浮提洲 處處立塔 不足可怪 又唐龍朔中 有事遼左 行軍薛仁貴 行至隋主討遼古地 乃見山像 空曠蕭條 絶於行往 問古老 云是先代所現 便圖寫來京師(具在若函) 按西漢與三國地理志 遼東城在鴨綠之外 屬漢幽州 高麗聖王未知何君 或云東明聖帝 疑非也 東明以前漢元帝建昭二年卽位 成帝鴻嘉壬寅升遐 于時漢亦未見貝葉 何得海外陪臣 已能識梵書乎 然稱佛爲蒲圖王 似在西漢之時 西域文字或有識之者 故云梵書爾 按古傳 育王命鬼徒 每於九億人居地 立一塔 如是起八萬四千於閻浮界內 藏於巨石中 今處處有現瑞非一 蓋眞身舍利 感應難思矣 讚曰 育王寶塔遍塵寰 雨濕雲埋蘚纈斑 想像當年行路眼 幾人指點祭神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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