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52487


이준 열사의 묘소에 가다, 오솔길을 걸으며 열사의 삶을 느끼다

06.08.13 09:36 l 최종 업데이트 06.08.13 09:36 l 이인배(apache630)


▲ 주차금지 팻말과 함께 이준 열사 묘소 입구라고 적힌 비석이 보입니다. ⓒ 이인배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탑에서 호텔 아카데미 하우스로 계속 올라가다보면 왼쪽에 '통일교육원'이 보인다. 통일교육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데, 그 길이 바로 '일성(一醒) 이준 열사 묘소'로 향하는 길이다. 


내리막길 왼쪽에 '일성 이준 열사 묘소 입구'라는 비석이 주차금지 팻말과 함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면 강북구에서 설치해 놓은 '애국선열 일성 이준 열사'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 강북구에서 설치해 놓은 이준 열사 안내판 ⓒ 이인배


민영환, 이용익(1854~1907)의 영향으로 항일 운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이준 열사는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헤이그의 만국 평화 회의에 가서 일본의 만행을 열강에게 알리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반대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이준은 고질병이었던 뺨 종기가 갑자기 악화되어 그만 헤이그에서 분사(憤死)하고 만 것이다. 


고종 황제의 특사로 헤이그의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하려다가 순국한 이준 열사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준 열사가 할복했다고 알고 있다. 공공기관인 강북구에서 설치한 안내 표지판에도 이준 열사가 '할복'해서 죽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준 열사는 할복한 것이 아니라 오랜 여행과 망국의 한을 달래지 못하고 병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쪽의 검열로 헤이그행의 본말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국내에서는 이준이 만국 대표가 보는 앞에서 할복자살했다는 등의 '영웅 전설'들이 1960년대 초까지 거의 사실(史實)로 인정받았다. 물론 할복자살이 영웅적인 죽음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의 선비들의 명예로운 죽음의 방식이 아닌 일본 사무라이 방식의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할복자살을 해야만 열사이고 영웅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인간적인 이준 열사에 대해서 만날 수 있다. 이준 열사는 조국이 침략자들에 의해서 찬탈당하는 상황에 대해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오랜 여행으로 몸이 쇠약해졌으며, 고질병이 악화되어 머나먼 타국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영웅시하는 역사의 왜곡된 표현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 묘소로 향하는 오솔길. 곧고 길게 뻗어 있었습니다. ⓒ 이인배


이준 열사의 묘소를 향한 길은 길고 좁은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이준 열사가 생전에 했던 말을 적어놓은 비석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 이준 열사의 말을 적어 놓은 비석. ⓒ 이인배


오솔길 끝에 도달하면 드디어 이준 열사의 묘소에 도착하게 된다.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한 바퀴 둘러보는 이곳은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 아주 소박한 묘소였다. 묘소 옆에 이준 열사의 부인의 비석이 다소곳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 이준 열사 묘소 ⓒ 이인배


▲ 이준 열사 묘소 왼쪽에 이준 열사 부인의 묘를 가리키는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 이인배


함께 간 동료가 이준 열사의 부인 비석을 보고서 이곳에 자주 왔지만 부인의 비석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한마디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겠지만 이준 열사의 부인의 비석을 미처 못보고 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열사의 부인은 얌전히 그 곳에서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묘소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오솔길은 좀전에 올라온 길이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새롭게 느껴졌다. 그의 삶이 어떠한 삶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한길로 곧게 뻗은 길, 그것이 열사의 길인 것이다.


▲ 내려가는 길. 열사의 삶을 느끼게 해주는 곧은 길이었다. ⓒ 이인배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미디어다음, 시골아이고향, U포터뉴스에도 올립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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