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6221030011
왜 극우가 개신교의 얼굴이 됐을까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입력 : 2019.06.22 10:30 수정 : 2019.06.22 11:00
6월 11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와 한기총 소속 목회자·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막말 파문’ 이후 개신교계 안팎에서 전 목사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교계 내 보수적인 교회와 교단, 목회자들조차 전 목사의 잇따른 ‘극우’ 성향 정치행보에 반발하는가 하면, 자칫 전 목사를 위시한 극우적 움직임이 전체 개신교계를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목사가 정치적 돌출 발언을 일삼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장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보수 개신교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강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이 전 목사에게 있어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튀는 정치 목사’쯤으로 분류되던 그가 본격적으로 교계 연합기구를 등에 업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기총 안에서 극우세력이 전면에 부상하는 주요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올해부터인데, 전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뽑힌 것이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의 분석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만 해도 한기총 대표회장은 종교지도자 청와대 초청 자리에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참석할 정도로 입지가 탄탄했다. 때문에 한기총의 과거 위상을 등에 업으면서 전 목사의 최근 행보도 더욱 부각된 셈이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한기총이 현재 개신교계 내부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지난 수년 동안 크게 낮아졌다. 2012~2014년 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장로교의 3대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합동·고신)이 연달아 한기총을 이탈했다. 그밖에 각 교파별 대표 교단들도 속속 대열을 이탈했다.
장로교 3대 교단 연달아 한기총 이탈
핵심적인 이유는 교권정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과열된 경쟁이었다. 개별 교단 내부에서도 총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금권선거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보수 개신교계를 아우르는 연합기구의 대표 자리가 걸린 만큼 대표회장을 노리는 대형교회 목사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빠지지 않은 것이 이단 의혹이 있는 교회를 용인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었다.
당시 한기총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중견교회 목회자는 “사실 이단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문제가 바로 교권수호 문제와 얽혀 있다보니 총연합회(한기총) 주도권을 잡으려는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대결이 교단 간의 반목으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기총을 탈퇴한 교단들이 새로운 연합기구를 만들려 할 때도 알력이 벌어진 것을 보면, 지금 전 목사와 같은 극우세력이 소수의 충성도 높은 세력을 결집해 얼굴을 내밀려는 시도는 그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전 목사가 한기총의 대표회장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이단을 용인했다는 시비는 어김없이 재연됐다. 위상이 낮아졌을지라도 여러 기성교단의 모임이라는 기구의 성격은 이단 시비가 있는 특정 교회나 목회자를 구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권력으로 이어진다. 특히 시비의 당사자가 전 목사처럼 특정 정치이념에 치우친 인사일 경우 교권의 문제가 세속정치의 권력문제와도 결부된다. 김진호 연구실장은 “금권선거의 폐해와 이단 시비가 얽혀 내분이 일어나자 대형 교단들이 이탈했고, 전 목사는 교계 안팎 극우세력과 손잡았던 정치적 이력을 내세워 군소 교단만 남은 한기총에 영향력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논란은 전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행보다. 한기총 내부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나오며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전 목사의 대표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한기총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전광훈 목사는 운영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불법과 독단으로 한기총을 정치세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한기총은 공식 성명까지 내며 ‘문재인 하야를 위한 국민소환 청원 서명운동’을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한기총은 이미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었다. 과거에 비하면 소속 교단·단체 교인 수로만 70% 이상이 이탈했다. 전 목사 막말 파문 이후 남아있던 교단 중 가장 큰 규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단체로는 가장 큰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등을 돌렸다. 한기총 소속 교단의 교인이 전체 개신교인 중 10%에도 못미칠 정도로 축소된 것이다.
전 목사 “원래 교회는 정치하는 집단”
전 목사가 막말과 대통령 하야 주장 등으로 여론의 관심을 모으면서 개신교계에서는 극우 정치세력과 강한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는 인상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특정 정치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교계 개혁운동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을 비롯해 교파를 초월해 모인 교계 원로들까지 전 목사와 한기총에 대해 자제와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교회 장로인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목사가 교회의 성직자 자격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에 적어도 교회와 교회 대표의 이름으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며 전 목사의 정치적 언행을 비판했다. 신경하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도 “교회가 권력을 쟁취해 사회를 지배하거나 힘을 가지고 세상을 끌어가서는 안 된다. 복음과 정치는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하면서 “원래 교회는 정치하는 집단”이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보수 개신교계의 불문율에 가까운 ‘정교분리’ 입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목사는 2004년부터 기독교 정당을 표방해 만든 신당을 내세워 기성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네 차례 총선에서 전 목사가 주도한 개신교계 정당은 국회 진출을 시도했지만 비례대표 1석도 얻지 못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전 목사는 지난 5월 한기총을 통해 전국의 총선 지역구 수와 같은 253개 지구에 지역연합을 조직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한기총을 종교적 기구를 넘어 정치활동을 벌이는 데 동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에 비해 실제 입지는 축소돼 있을지라도 특정 종교와 이념을 결합해 정당정치에 동원하려는 움직임이 외부에 비치는 개신교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해방 후 월남한 개신교인 세력이 모인 서울 영락교회가 서북청년단의 주요 활동배경이 됐던 것처럼 극우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정치 선전과 가짜뉴스 기반 선동이 재연될 여지가 없지 않다는 비판이다.
손승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간사(한국교회사 박사)는 “한국 교회가 보수정권과 결탁해 거짓 정보를 전달하며 약자들을 억압하는 한편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았던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면서 “지금 한국은 권위와 신뢰가 무너진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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