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837
나경원 꺾은 이수진 “왜곡보도는 힘이 없다”
[인터뷰] 이수진 서울 동작구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사법농단 관여의혹 허위…수사과정 따라 법적대응”
“판사 출신이 정치인 된다는 것엔 ‘국민 심판’ 받아”
“소년통합법원·국제상사법원 등 ‘전문법원’이 필요”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승인 2020.04.30 09:33
부장판사 출신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출마 선언부터 당선되는 순간까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처음 도전한 지역구 선거에서 4선의 원내대표 출신 현역 의원인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었다. 민주당 영입인사로 발표될 당시 ‘일본 강제징용 재판 고의 지연 의혹’ 증언 및 인사 불이익을 받은 이력으로 주목 받은 한편, 선거 기간 동안 상대 후보와 언론으로부터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맞느냐’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선거 직후 이 당선인의 당선 소감에서 거의 빠지지 않은 소감은 “왜곡·비방 보도로 힘들었다”는 말이었다. 이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변명을 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다른 사람을 안 다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판사로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에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사법개혁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절감하고 있다”고 향후 의정활동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23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선거사무소에서 이 당선인을 만났다.
-선거 과정에서 당선인에 대한 의혹이 여럿 제기됐다. 그에 비해 대응이 적극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바로 대응하면 이규진 피고인 재판(사법농단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이탄희 후보(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정 당선인) 선거운동에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관련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까봐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서울 동작구을 당선인. 사진=이수진 캠프 제공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사법농단 재판의 주요 피고인이다. 이탄희 전 판사(더불어민주당 경기용인정 당선인)가 사표를 제출했던 계기,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진 당사자가 바로 이 전 위원이다. 나경원 후보는 ‘이규진 전 위원이 진보 성향 판사모임(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저지를 이수진 후보와 상의했다’고 주장했다. 이규진 전 위원이 이수진 후보로 하여금 이탄희 판사가 학술대회를 무산시키도록 종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취지로 이탄희 전 판사의 기록, 현재 법제처장인 김형연 전 부장판사의 법정 증언 등이 나오면서 언론 일각에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중요 인물들이 뭘 하고 있는지 법원 행정처가 보고서를 만들어 공유한 것이다. 그 자체로 ‘블랙리스트’다. 이름을 싹 모아두지 않더라도 인사모 등에서 핵심적인 활동을 하는 법관들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고 교묘하게 인사불이익을 줬다. 앞서 검찰이 ‘인사 피해자로서 수사를 받으라’고 나를 직권으로 불렀다. 그렇게 수사 받은 법관 10여명이 피해자라고 언론의 취재로 보도되었다. 한국일보가 리스트를 표로 만들어 기사(2018년 11월21일자 “[단독] 양승태 사법부, 눈엣가시 법관 인사 불이익 이어 주요업무도 배제”)를 냈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이걸 보고 내가 ‘물의 야기 법관’이라고 영입발표 기자회견문에 넣었다.
내가 인사불이익 받은 건 사실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 동기들 모두 3년 임기인데 혼자만 2년 만에 발령을 내 버리는 건 분명히 불이익이다. 인사 피해가 있었고, 내가 인사 피해자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마치 인사피해자들을 다 빠짐없이 모아놓은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거다. 솔직히 숨겨진 리스트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거짓말 한 게 뭐가 있나. 이걸 갖고 (나경원 후보가) 선거법 위반, 허위사실유포라고 고발했다. 사실 무고죄로 맞대응까지 생각했다. 앞으로 검찰에서 수사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법적 대응을) 하려고 한다.”
-당선인이 겪었다는 ‘인사 불이익’은 업무역량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말이 안 된다. 대법원 연구관은 10년 동안의 근무평정을 보고 뽑는다. 우리 기수에 160명이 있다면 연구관 들어가는 게 25명 정도다. 근태가 안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겠나. 그리고 재판연구관 2년차에 ‘심층조’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보고서를 많이 썼다. 한 달짜리 연구가 있고 2~3주만에 가능한 게 있지 않겠나. 다른 심층조 연구관들 중에서는 건수 실적을 신경 쓰느라 어려운 사건을 처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상훈 대법관이 연구관 퇴임 기념하는 자리에서 보고서 잘 썼다고 내게 공개적으로 칭찬한 일도 있다.”
-이탄희 당시 판사에게 전화해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취소를 종용했다는 건 뭔가.
“이탄희 판사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이규진이 나를 수차례 부른 건 맞다. ‘공개토론을 막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서 ‘못 막는다, 막을 수 없다’고 분명 얘기를 했다. 그 뒤에 여러 판사 후배들에게 전화해서 ‘(학술행사를) 막으려고 난리가 나 있더라’ 전했고 이탄희 판사에게도 마찬가지로 알렸을 뿐이다. 최근 공개적인 대화방에서도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언제 종용했느냐, 팩트를 전달한 것 아니냐’고. 당시 오래전부터 같이 인권법에서 일했던 인권법 회원들은 내가 정보를 전달한 걸로 알고들 있었다.”
선거기간 제기된 또 다른 의혹은 이른바 ‘이수진 수고비’ 논란. 지난 2일 조선일보는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위원의 업무수첩에는 이 후보 관련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이 수첩엔 ‘이수진 생일’ ‘이수진 상담’ ‘이수진 연락’ 등과 같은 내용뿐 아니라 ‘이수진 수고비’라는 말까지 나온다. 양승태 행정처의 고위 간부였던 이 전 위원이 이 후보와 수시로 연락하며 그의 생일까지 챙겼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는 뜻”이라 보도했다.
이 당선인은 이와 관련해 이규진 전 위원과 나눈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언제 내가 수고비를 받은적 있느냐’는 이 당선인 항의에 이 전 위원이 “조선일보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기재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분노가 있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이다.
“이규진씨에게 내가 ‘수고비’가 무슨 말씀이냐고 물어봤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물었더니 답이 이거다.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할 말이 많은데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에도 다 해명을 했나.
“다 했다. ‘선거 기간 동안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 해명을 해도 안 써줄 거다. 끝나고 하자’ 그렇게 된 거다. 언론이 많이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선거기간 내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건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내 변명을 하는 것보다 참고 있는 게 다른 사람을 안 다치게 하는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끝까지 믿었던 건 국민 다수는 보수언론 비판이나 왜곡 보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권력 기관이나 주체들끼리의 결탁이 이렇게 심했던 건지 몰랐다.”
▲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서울 동작구을 당선인. 사진=이수진 캠프 제공
-결탁이란 뭘 말하는 건가.
“나에 대한 편파보도를 하면서 상대 후보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증) 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 포털로 뉴스를 많이 봐 왔는데 보수언론 기사가 내 삶에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언론 피해를 본 초선 당선인들과 모여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한 재선 의원이 와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미 대부분은 신경 안 쓰는 기사’라고 조언해줬다.”
-왜 자꾸 본인에 대한 의혹 보도가 이어졌다고 생각하나.
“그들이 쓰는 기사를 일반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팩트 전달이 언론의 힘인데 왜 스스로 힘을 빼는지 모르겠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신뢰해야 힘이 생기는데 자꾸 조직을 앞세우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너무 중요한 걸 간과하는 거다. 자기 힘에 도취가 돼서. 상대 후보도 그랬던 것 같다. 국민은 전혀 보수언론이나 검찰에 속지 않았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국민들을 보면 관련 보도들에 개의치 않더라. 국민은 상대 후보가 국회에서 억지 쓰는 걸 지속적으로 보지 않았나.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다.”
-사법개혁 공약 중 약자, 소수자를 위해 전문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소년통합법원이 있다. 지금은 소년범에 대해 법원이 재판하고 집행·관리는 법무부가 한다. 보호 능력이 없는 부모를 만난 아이들이 작은 절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집에 갔을 때 또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범행으로 이어지고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 지금처럼 이원화가 아닌 법원이 전체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왔다. 국제상사법원도 중요하다. 이미 중국에도 있는데 우리나라가 뒤진 상태다. 상사법원은 인프라를 먼저 확충할 수록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된다. 지금은 분쟁 해결을 위한 기관이 미흡하다.”
-법원 자체에 대한 신뢰가 선행돼야 할 텐데.
“법관들이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길 바란다. 일반인들과 소통하지 않는 법관들이 내는 결론이 의아할 때가 많다. 특히 재판에 걸리는 시간도 짧고 법관들 일이 너무 많은 문제도 있다. 법정에서의 소통, 법원 바깥에 대한 법관들의 관심 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국회에 법조계 각 직군 출신이 많아서 이해관계가 맞물려 개혁이 막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사법개혁, 법원개혁은 법원 내부를 잘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판사가 정치인이 되겠다고 한 것에 국민 심판을 받지 않았나. ‘그래 네가 법원 안을 잘 아니까 바꿔줘’라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정치권 직행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판사들은 정치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도 나와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법전 대로 판결하면 되고 여론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인기에 영향을 받지도 않고, (제가 받은 것과 같은) 언론의 비판도 없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굉장히 특수하다. 사법개혁이라는 중요한 의제 때문에 선거에 나왔고, 국민도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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