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017_0010
고구려의 담비 교역
其國無鐵, 取給於高麗. 多貂.
『隋書』卷84, 「列傳」49 北狄 南室韋
異苑曰. 貂出句麗國. 常有一物共居穴, 或見之, 身貂類人, 長三尺, 能制貂, 愛樂刀子. 其俗人欲得貂皮, 以刀揷穴口. 此物夜出, 皮置刀邊, 須人持皮, 去乃取刀.
『太平御覽』卷912, 「獸部」24 貂
그 나라[남실위(南室韋)]에는 철(鐵)이 없어 고구려로부터 취득한다. 담비가 많다.
『수서』권84, 「열전」49 북적 남실위
『이원(異苑)』 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담비는 구려국(句麗國 : 고구려)에서 산출된다. 항상 한 존재[一物]가 [담비와] 함께 구덩이[穴]에서 생활하는데, 혹 그를 보면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고 키는 3척이며 담비를 잘 다루고 손칼[刀子]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고구려) 습속에 사람이 담비 가죽[貂皮]을 얻고자 하면 손칼을 구덩이 입구(穴口)에 던져 놓는다. [그러면] 이 존재가 밤에 구덩이를 나와 담비 가죽을 손칼 옆에 놓아두며 사람이 [담비 가죽]을 가지고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이 가고 난 후 손칼을 가져간다.”
『태평어람』권912, 「수부」24 초
이 사료는 고구려와 주변 종족의 담비 교역에 관한 것이다. 먼저 『수서』 「북적전」은 남실위(南室韋)의 교역 및 생산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남실위는 거란의 한 종족으로, 지금의 눈강(嫩江)과 흑룡강(黑龍江) 주변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철(鐵)이 없어 고구려로부터 제공받았다고 하며, 특산물로는 담비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태평어람』 은 『이원』을 인용해 읍루와 고구려의 담비 교역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원』은 5세기 후반 남조 송(宋)의 유경숙(劉敬叔)이 진(晉)⋅송대(宋代)의 괴이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지괴소설(志怪小說)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이 사료의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어떤 존재[一物]와 고구려의 물물 교환은 침묵 교역[silent trade]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동아시아에서 침묵 교역의 사례가 종종 확인되므로 『이원』의 기록은 어느 정도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존재는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읍루(挹婁)로 파악된다. 읍루는 후대의 말갈로 산림에 거처하며 땅 속에 굴을 파고 거처하였는데 그의 특산물 중 하나가 읍루초(挹婁貂) 즉 담비 가죽이었다. 그러므로 『이원』에 보이는 어떤 존재는 읍루이며, 담비 가죽은 읍루초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원』에서 고구려인은 담비 가죽을 얻기 위해 손칼(刀子)을 건넸다고 한다. 고구려와 읍루는 손칼-담비 가죽을 교역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와 읍루의 교역 양상을 보면 고구려는 남실위에 철기를 제공하고, 대신 담비 가죽을 공급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와 남실위의 철기―담비 가죽 교역이 생각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고구려는 읍루나 남실위와 같은 주변의 여러 종족과 교역하였는데, 이들로부터 얻은 교역 물품은 다시 중국이나 백제・신라 혹은 왜와의 교역에 활용되었을 것이다. 가죽제품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귀족의 사치품이었다. 그런데 남조와 백제・신라・왜는 가죽제품이 생산되는 북방의 종족들과 직접 교역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고구려는 그를 얻는 통로의 하나였으리라 추정된다.
참고문헌
「고조선의 모피무역과 명도전」,『한국고대사연구』 64,강인욱,,2011.
「고구려 초⋅중기의 대중 교섭과 교역」,『신라문화』 24,김창석,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2004.
「고구려의 성장과 철」,『백산학보』1,이용범,,1966.
『한국고대의 동아시아 교역사』, 박남수, 주류성, 2011.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ko_033_0580_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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