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04954
아카데미도 주목한 29분, 그리고 김관홍 잠수사의 '당부'
[하성태의 사이드뷰] 아카데미 단편 부문 후보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하성태(woodyh) 20.01.19 12:39 최종업데이트 20.01.19 12:39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지명된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의 한 장면 ⓒ 이승준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여성의 음성, 세월호 참사 당시 선내에서 울려 퍼졌다던 "가만히 있으라"의 현실 버전이다. 휴대폰 영상 속 둘러앉은 남학생들이 걱정스레 말한다. 도저히 자신들 앞에 닥친 위험을 현실로 받아들였다고는 볼 수 없는 무심한 목소리로.
"진짜, 그런데 갑판에 있는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니까."
"선장은 뭐 하길래."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각, 이 장면 속 이 아이들은 곧이어 닥칠 비극을 예상이나 했을까. 아이들이 선장의 행방을 물었던 바로 그 시각, 이준석 선장은 세월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선장이 구출되는 그 시각에 자녀와 통화를 했다는 세월호 유족 유안실씨는 후회되는 게 한 가지 있다고 했다.
"그때 선장이 구출되는 시간에 (아이와) 통화를 했는데, 선생님 말 잘 듣고... 그게 제일 후회스럽더라고요. 빨리 나오라고 했어야 했는데 배 상황을 모르겠어서 무조건 선생님 말 잘 들으라고. 그 이후엔 전화가 안 되더라고요."
앞선 8시 56분, 세월호 탑승객 중 한 명이 119 구조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하던 그 시각.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여학생도 있었다. 친구들과 객실에 앉아 "미쳤나봐"라며 어이없는 상황을 한탄하던 한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막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있으라고.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다고 좀 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좀 있으니까 진짜 죽고.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살고."
2014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단원고 아이들의 눈에도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은 박제된 것처럼 보였던 셈이다.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최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지명된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 보는 것은 이렇게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하는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면으로 마주하는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 긴박했고, 또 참담했던 순간들과 아픔의 증언들은 분명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었을지 모를 바로 그 기억들을 고스란히 소환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카데미 위원회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공개된 이승준 감독의 29분 여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을 왜 주목했을까.
세월호 참사를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29분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지명된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 속 고 김관홍 잠수사의 모습 ⓒ 이승준
"뒷일을 부탁합니다."
2016년 8월 17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김관홍 잠수사의 유언이었다. 그가 '뒷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싸워나갔고, 그 뒷일은 박근혜 탄핵 촛불로 이어졌다. 세월호 유족들도 어김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김관홍 잠수사. 세월호의 민간잠수사였다가 몸과 마음을 다쳤고 지금은 저세상으로 가버린 사람. 차가운 바지선 위에서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잤고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두 팔로 끌어안고 나왔던 사람. 잠수사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은 '뒷일을 부탁합니다'였습니다."
그렇게 '박근혜 탄핵' 국면이 한창이던 2016년 말,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연이어 고 김관홍 잠수사를 소환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를 거치며, 손 앵커에게 자괴감을 던져줬던 말 한 마디가 바로 그 고 김관홍 잠수사의 "뒷일을 부탁합니다"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부재의 기억>은 이렇게 생전 김관홍 잠수사의 입을 빌려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슬픔을 기록해 나간다.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과 살아남은 생존자의 분노와 더불어 그날의 참사를 잊지도 못하고 잊을 수도 없었던 잠수사들의 트라우마까지 폭넓게 담아낸다. 참사 직후 차디 찬 바다 속을 헤집으며 아이들을, 희생자들을 찾아 헤맨 이들이야말로 그 고통과 가장 가깝게 마주한 이들일 터.
"하루에 한 번 들어가야 하는 현장을 대여섯 번씩 들어가고 그랬어요. 다른 잠수사들이 저한테 그렇게 말을 해요. 왜 그렇게 일을 하느냐고. 아니 사람이 없는데 그럼 어떡할 거야. 진짜 중요한 건,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살렸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을 필요가 없었는데, 제대로 구할 수만 있었으면. 근데 그 누구도 구하진 않고 상황(만) 보고 보고 보고."
고 김관홍 잠수사의 살아생전 인터뷰는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그가 겪은 고통을 어렴풋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터. 이승준 감독은 잠수사들의 목소리와 구조 영상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담아낸다.
당시 정부나 해경은 잠수사들을 구조 현장에서 쫓아냈고, '프레지던트 박근혜'의 진도 방문 당시 '잠수 쇼'를 벌이도록 종용했고, 노후된 장비를 들이밀었다. 그 해 7월까지 서른 구 가까이 시신을 수습했다는 전광근 잠수사는 수습 과정에서 본 바다 속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했다는 물증들이 많아요. 2인 객실에서도 78명이 나왔으니까. 그 족은 공간에서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살려고 노력을 하는 흔적들이죠."
<부재의 기억>은 이 잠수사들의 기억을 통해 구조 자체를 포기해버렸던 정부와 해경의 무능을, 아이들을 누가 죽였는가하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콘트롤타워는커녕 국가 자체가 부재했던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간결하게 되짚는다.
동시에 그 기억을 분노와 슬픔을 자아내는 영화적인 클라이맥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전히 참사가 끝나지 않았다는듯, 암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잠수사들의 호흡 소리가 대표적이다. 영화 후반부, 고 김관홍 잠수사가 정부 조사에 증인으로 출석, 카메라 앞에 서 뱉어낸 이 일성도 다르지 않다.
"고위 공무원들한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들은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
<기생충>과 <부재의 기억>의 동반수상을 바라며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지명된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의 한 장면 ⓒ 이승준
<부재의 기억>은 이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다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회의 영상을 포함해 참사 당일과 이후의 각종 영상과 뉴스 화면, 해경과 청와대 관계자 등의 통화 기록과 유족과 생존자를 포함한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재구한 29분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로서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거나 독창성이 넘치는 영화라 단언할 순 없다. 물론 첫 번째 '세월호 다큐'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참사 당일부터 2017년 3월 세월호 인양의 순간까지를 담아낸 이 단편은 전 세계인들에게 '세월호 참사'의 일단을 알리는 교육적 작품으로 소개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짜임새 있는 구성과 미학적인 요소, 영화적인 울림을 두루 갖췄다는 얘기다.
"아까 (세월호 유족) 한 분하고도 통화를 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서로 축하해주자, 일단. 저희가 이거 만들 때 그랬거든요. 유족 분들이 감독님이 만들어서 전 세계에 많이 알려주세요, 그랬거든요. 이번에 노미네이션 되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저희가 원하는 것이 돼서 서로 축하하자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 소식이 알려진 지난 14일 한 라디오 매체와 인터뷰한 이승준 감독의 말이다. 이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유독 유족들과의 "약속"을 강조하고 있었다.
앞서 <부재의 기억>은 2018년 열린 제9회 뉴욕 다큐멘터리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제31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9년 열린 제17회 AFI 다큐멘터리영화제 등 해외에서 소개됐고, 제16회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국내에도 선보였다.
아카데미 후보 지명과 함께 미국에서도 서너 차례 상영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 알려졌다. 6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세월호를 알려 달라"고 말하는 세월호 유족들과 이승준 감독과의 약속은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만으로도 이미 지켜진 듯하다. 수상 소식까지 더해진다면, 그 누구보다 세월호 유족들과 생존자들, 잠수사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선물일 테고.
그리고, 이미 수상이 유력시되는 봉 감독과 함께 이승준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 단상 위에서 '세월호'를 발음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전 세계 관객들이 공감하는 '계급 문제'를 다룬 <기생충>과 세월호 참사와 정면으로 대면하는 <부재의 기억>이 나란히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된 것 자체가 101주년을 맞은 한국영화의 경사이자 꽤나 상징적이고도 '대한민국'스러운 장면으로 기록될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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