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28375.html?_fr=st1
‘업무시간에 승진시험 공부’ 하는 의원님들
등록 :2020-02-16 09:09수정 :2020-02-16 09:57
표창원의 여의도 프로파일링 ③국회의원들이 일하지 않는 이유
열심히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일 안하고 혈세 축낸다 비판, 의정 아닌 다른 일 ‘올인’ 탓
다선의원일수록 본회의 결석 많고 인지도·영향력 높일 지역활동 활발, 정당에 충성, 재계 만남도 적극
정치철새·위성정당에 철퇴 내리는 선거 혁명으로 21대 국회 탄생하길
지난해 6월24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해 한국당 의석이 텅 빈 국회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4년 전 총선을 앞두고 한국방송(KBS)은 스웨덴 국회를 소개하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국민 평균소득의 1.6배만 받고 수행비서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에 파묻혀 있는 스웨덴 의원들. 반응은 뜨거웠다. 유권자들은 ‘방송 봤냐, 일은 안 하고 정쟁만 할 거냐’고 다그쳤고, 후보자들은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회 개원 후 모든 당선자는 ‘특권 내려놓기’를 외쳤고,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불체포특권 개혁’ ‘세비 동결’ 등 국회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나 임기 만료를 앞둔 제20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참혹하다. ‘사상 최악의 국회’. 고질병을 고칠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비난, 정치 혐오, 냉소주의는 답이 아니다. 옥석을 가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된 관행과 행태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으로 고쳐야 한다.
열심히 하는데 몰라주니 답답?
4년간 의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몰라주고 욕만 하니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다.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와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안 된다’고 한숨을 쉰다. 그런데 왜 ‘일 안 하고 혈세만 축낸다’는 비난을 들을까? 대부분 의원들이 바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중 상당한 부분이 정규 ‘의정활동’이 아닌 ‘다른 일’이다. 가장 많은 부분이 ‘지역구 활동’일 것이다. 행사에 참석하고, 유력 인사들을 만나 식사하면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활동. 상임위원회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게 되었는데, 다수 의원이 ‘지역활동’을 하고 있어서 회의 일정을 못 잡는 것은 ‘일상사’다.
그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은 ‘정당의 일, 당무’다. 많은 의원이 국회 회의보다 당의 회의나 업무, 행사, 활동을 더 중시한다. 국회 본회의는 특정 정당의 의원총회로 인해 몇시간씩 지연 개의된다. 그 밖에도 다수 의원은 항상 누군가와 통화 중이거나 수많은 약속과 만남을 한다. 무척 바쁘다. 다만, 국민이 기대하고 바라는 ‘일’이 아닌 다른 형태의 소통과 만남, 업무로 바쁜 의원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일부 의원들은 ‘지역활동도 엄연한 업무고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2018년 한해 동안 60%가 넘는 본회의 결석률을 기록해 ‘국회 결석왕’으로 꼽힌 의원과 그다음으로 결석이 많은 의원들은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당선되는 다선 의원이다. 전체 의원들의 본회의 결석 빈도를 따져 봐도 2018년 한해 동안 초선은 평균 2.1회, 재선은 3.1회, 3선은 4회, 4선 이상은 5회에 이르는 등 선수가 높을수록, 즉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역 패권을 장악한 의원들일수록 ‘(국회 정규) 일은 안 한다’고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지역주민 전체 또는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주요 정책이나 사건과 관련한 공개적인 간담회(타운홀 미팅)나 지역사무소에서 정식으로 이뤄지는 회의와 면담, 전화와 에스엔에스(SNS) 등을 통한 의견과 민원 접수 처리 등이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해야 할 지역 업무’일 것이다. 기록과 자료 등으로 확인되며, 무엇보다 법적 의무인 국회 공식 회의 참석을 위해 연기나 조정이 가능한 일이다. ‘정상적인 의회’ 운영이 이뤄지는 나라들의 일반적인 실정이고, 우리 국회에서도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행하는 지역활동이 대개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다수의 ‘지역활동’은 대개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 체육대회, 지역 축제, 아파트 운영위원회나 부녀회, 조합이나 산악회, 동호회 등의 회의나 모임에 참석하거나 단체여행 버스에 올라가 인사하고 ‘얼굴을 비치는’ 일이다. 그리고 지역 기관장이나 유력 인사들과 식사하고 술 마시며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엄밀히 따져서 ‘국회의원의 업무’라기보다는 지역 내 인지도와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사전 선거운동’이다.
실제로 선거 기간 동안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을 만나고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의 재연이고 반복이다. 이는 마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업무시간에 ‘열심히’ 승진시험 공부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또한 식사나 술자리로 형성된 ‘지역 유력 인사 권력카르텔’은 채용·승진 등 인사나 인허가 또는 계약 등과 관련한 민원 청탁, 뇌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이 이뤄지는 음습한 토양이 되기도 한다. 특히 대부분 일반 유권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런 ‘지역활동’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이런 활동으로부터 문제 해결이나 갈등 해소 등 어떠한 정치적 효과도 누리지 못한다.
‘선당후국’의 이상한 한국 정치
당에 충성하고 당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본 북한 공산당 일당독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공산당 때려잡자고 부르짖으며 ‘자유’를 외치는 보수 정당 의원들에게서도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당’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당 지도부’ ‘당 권력자’에 대한 충성이다. 상임위원회 전체회의 중에도 원내대표가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갑자기 정회를 요구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집단 퇴장 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어떤 법안도 여야 간의 합의나 담합 없이는 법안소위나 상임위 전체회의, 특히 마지막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에 정한 ‘신속처리 대상 안건’(패스트트랙) 절차를 밟다가 국회는 싸움판으로 변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합의해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 전체의 5분의 3이 넘는 찬성 의결로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안과에 내려다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들의 스크럼 앞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옮기지 못했던 그때, 민주주의도 정치도 국회도 처참하게 유린당했다고 느꼈다. 국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법안 접수를 막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설득하고 호소해도, 돌아오는 것은 ‘물러나라’는 고함과 밀어붙이는 물리력이었다. 회의를 개의하려던 사개특위와 정치개혁특위 회의장 앞은 더욱 험악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엉킨 채 밀고 당겨 부상 위험이 커 밀지 말라고 호소하는 목소리는 무시당했다. 비명과 욕설, 부딪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아수라장이었다. ‘이곳이 진정 국회인가’ ‘우리가 진정 국회의원들인가’ 참담한 자괴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더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모든 국회 회의는 반드시 여야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를 해야 열리는 체제이다 보니, 국회는 정쟁이 없는 평화 시기에만 일하거나 예산안 처리, 국정감사 등 필수적인 ‘연례행사 기간’에 주로 무더기 법안처리를 한다. 그것도 대부분 소위 ‘무쟁점 법안’이고, 이 중 다수는 용어 한두개 고치거나 표현을 바꾼 낯뜨거운 ‘실적용 법안’이다.
진짜 국회가 할 일은 이견과 반대, 저항이 있는 ‘쟁점’ 법안들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고 설득하거나 타협과 양보를 끌어내서 ‘처리’하는 것이다. 모든 ‘쟁점 법안’에는 일부 또는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가 걸려 있고, 그 반대편엔 누군가의 기득권이나 비용이라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정당의 ‘사적 집단 이익’에 밀려 ‘일하지 않는 국회’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과 반역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쟁에서 승리하려는 정당은 소속 의원들의 충성과 군대 같은 단일대오를 요구한다. 이탈자에 대해서는 공천, 당직 등에 불이익을 가한다. 일 안 하고 능력 없어도 상대방을 향해 막말을 뱉어내고 볼썽사나운 공격을 해대면 ‘전사’라고 치켜세우고 자리를 보장한다. 물론 이를 역이용하는 의원들도 있다. 탈당이나 경쟁 정당으로의 이적을 행하거나 그럴 가능성을 시사해 그 대가로 자리나 이익을 확보하는 이들이다. 수시로 이런 행동을 하는 정치꾼들을 ‘철새’라고 부른다. 선거에 즈음한 지금 정치 철새들의 날갯짓이 자욱한 ‘정치 미세먼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입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당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거나 정쟁을 이용해 공천이나 당선 등 정치적 이익만을 좇는 이들 모두 본업인 의정활동은 뒷전인 ‘국회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4월30일 선거제도 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오른 직후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 밖에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일하는 국회를 위한 선거 혁명
다수의 의원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또 하나의 일’은 재계, 관계, 언론계, 종교계 등 ‘유력 인사’들과의 만남 등 소통이다. 여론 수렴이나 갈등 조정, 입법 정책 자문 등 ‘바람직한 정치활동’의 연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이들에게서 지지나 후원 또는 인사나 정책 예산 배정 등의 ‘특혜’를 얻고, 이들은 의원들로부터 청탁 입법, 질의, 발언 등을 얻어내는 ‘거래’ 내지 ‘로비 활동’인 경우들도 있다.
밀실에서 이뤄지는 이런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의심스러운 법안이 제출되거나 특정 대상이 원하는 질의나 발언 또는 요구가 행해지는 전후에 이런 만남이나 연락이 있음을 추정하게 되는 것이 한국 정치 현실이다. 아주 단순화하자면, 국회는 파행과 공전을 거듭하며 일하지 않고, 주민 간담회나 강연, 토론회 등 ‘공개된 정치활동’은 별로 없는데 매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올 정도로 ‘너무 바쁜 의원들’, 이 모순이 한국 정치와 국회의 문제요 고질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이다. 국가와 국민을 외치면서 당을 깨고 새로 만들고, 옮기고, 적대하고 공격하는 온갖 기행과 막말이 난무한다. 이들에게 속고 휘둘리면 또다시 ‘일하지 않는 국회 4년’의 반복이다. 거대 정쟁 논리의 선동 속에 장내와 광장에서 극한 대결과 공방이 지속되는 뒤안길에서 사적 이익과 실속을 챙기는 국회의원들의 ‘이상한 지역활동’ ‘당 권력자들에 대한 충성’ ‘로비 활동’이 바쁘게 이루어질 것이다. 대부분 일반 시민들은 의원들로부터 무시와 외면을 당할 것이며, “선거 때만 주인 대접을 받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는 장자크 루소의 경고가 떠오르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이나 여당 프리미엄 또는 그 반대만 외치는 자들과 정치 철새들과 선거용 ‘떴다방’ 정당, 위성정당엔 과감한 민심의 철퇴를 내려야 한다. 국민과 지역주민 전체를 대표할 국회의원으로서의 철학과 소신, 정책, 용기와 의지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생업에 바쁜 나 대신 바르고 공정하고 성실하게 노력할 사람인지를 꼼꼼하게 따지고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선거 혁명’으로 탄생한 제21대 국회는 여야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소환제’ ‘상임위 법안소위 상설화’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 원칙’ ‘법사위 상원 기능 폐지’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 폐지 내지 축소’ ‘국회 윤리제도 강화’ ‘보좌진의 국회사무처 소속·관리’ 등 실제로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국회 개혁’이 가능해질 것이다.
▶표창원: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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