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뉴스공장] 일본군 강제 위안부 동원 새로운 증거 찾아낸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위안부가 번 수익은 관리자가 은행에 예치해 전쟁자금으로 사용”(그리셀다 몰러만스) - TBS
시사 2022. 10. 26. 11:33출처 : https://youtu.be/AQHsqcamYuc
https://tbs.seoul.kr/cont/FM/NewsFactory/interview/interview.do?programId=PG2061299A
관련글 : 일본 전쟁자금 추적한 네덜란드 기자…'위안부'의 몫은 어디로 갔을까 -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81515291901477
일본군 강제 위안부 동원 새로운 증거 찾아낸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위안부가 번 수익은 관리자가 은행에 예치해 전쟁자금으로 사용”
그리셀다 몰러만스 (탐사보도 전문기자)와의 인터뷰
김어준의 뉴스공장 2022-10-26
* 내용 인용 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제3공장] -사전녹음
일본군 전쟁자금 추적해 밝힌 네덜란드 기자..
"'강제 저축'된 일본군 위안부 예금..국가가 갈취"
- 그리셀다 몰러만스 (탐사보도 전문기자)
▶ 김어준 : 한 네덜란드인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평화의 소녀상 설립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이 소녀상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리셀다 몰러만스 탐사 전문 기자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 그리셀다 : 안녕하세요.
▶ 김어준 : 안녕하세요 말고 한국말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요?
▷ 그리셀다 : 물, 옹기종기.
▶ 김어준 :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자,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 그리셀다 : 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그리셀다 몰러만스입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탐사 보도 전문 기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암스테르담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한국을 데는 굉장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도 첫 번째로는 제가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제가 ‘Life-time War’라는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에 대해서 한국의 언론인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전쟁 당시에 일본 군이 강제 위안부를 동원했었던 일들에 대한 새로운 증거물들을 찾아냈고요. 그리고 이 증거물들이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것들을 공유하기위해서 한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 김어준 : 이 평화의 소녀상, 그러니까 지금 책을 쓰셨고 그 책이 전쟁 동안 일본이 저지른 성범죄에 관한 내용을 새로발굴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을 새로 발굴하신 겁니까?
▷ 그리셀다 :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는 35개국이 강제 위안부 문제에 연관이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50만 명의 피해자가 35개국에서 동원이 된 것인데요.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국가들에서 많은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일본에 의해 동원이 된 것이죠. 그리고 당시 일본의 연합국에서도 많은 여성들이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 그리셀다 : 그리고 두 번째 제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요,전쟁 직후에 있었던 법정 사례들을 살펴보면 실제 강간이나 그리고 강제 위안부 사건으로 인해서 유죄 판결을 받은 케이스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22개 이상의 법정 사례가 더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죠. 일본 군들이나 그리고 관련됐던 사람들이 강제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처벌을 받은 사례들인데요.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서 일본이 실제로 당시 전쟁 범죄와 강간 그리고 강제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유죄였다는 것을 제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마도 가장 극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안부들이 벌어들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대한 추적을 해 봤습니다. 위안부가 벌어들인 돈은 매일 아침 수금이 되어서 관리자가 직접 2개의 전쟁 은행에 예치를 했다고 합니다. 이 2개의 은행은 타이완 은행 그리고 요코하마 정금 은행인데요. 그 이후에는 전쟁 자금으로 들어가게 되고요. 이렇게 돈의 순환 구조가 이뤄진 것이죠.
▶ 김어준 : 그러니까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인데 강제 위안부에게 돈이 지급된 게 아니라 그 돈은 다시 전쟁 자금으로 쓰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이야기잖아요.
▷ 그리셀다 : 이 위안소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이 어디로 갔느냐고 살펴봤을 때 이중의 3분의 1은 위안소 운영업자에게 쥐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2는 사실상 위안부 여성의 몫이라고는 하지만 2개의 은행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이은행들에 자금이 맡겨졌고 이렇게 맡겨진 자금이 전쟁 자금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 증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자기 몫으로 책정되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그리고 그 운영 업자들은 사실상 ‘너희들은 지금빚을 졌기 때문에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너희에게 갈 몫은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실제로 할머니들이 받은 돈은없다고 합니다.
▶ 김어준 :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스스로 매춘부가 된 사람들이 이런 일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지금 말씀대로라면 이것은, 그리고 일본 정부는 아무 상관없다고 그렇게 일본은 주장하고 있는데 말씀대로라면 이건 정부 사업이고 거기에 끌려갔던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는 굉장히 강력한 증거가 되네요.
▷ 그리셀다 : 네, 한마디로 굉장히 시스템적이었다, 체계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당시에 일본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모두가 다 관여가 된 것이었는데요. 그 당시에 얼마만큼의 돈이 위안부를 통해서 벌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군사들이얼마만큼의 시간을 위안소에서 쏟을 수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이 다 계산이 됐던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다시 한번 정의를 하자면 일본의 제국주의 강제 매춘 시스템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제가 모은 모든 증거물들을 한국의 동료들에게 전달을 하고 그럼으로써 이 동료들이 정의를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어준 : 자, 세 가지 모두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위안부가 성적으로 착취당한 것이, 성적으로 착취당한 여성이 35개국 50만 명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22개의 관련 소송들이 전쟁 직후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이게 사실은 일본 정부가 운영했던 국가 시스템. 이 위안부 시스템이라는 건 국가가 직접 개입한 시스템이었다는 것. 이 자료를 어떻게 확보하신 겁니까?
▷ 그리셀다 : 제가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될까를 생각하게 됐는데요. 되게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데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기 전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 보자고 봤을 때 일본의 당시 군인들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서 침략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똑같이 부녀자들 강간이 있었고요. 그리고 위안소들을 설치하는 것들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이러한 일들이 자행이 됐었던 거죠. 조사를 하면서 당시에연합국이었던 런던, 미국, 프랑스, 포르투갈, 또 어디가 있을까요?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들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이 문서들을 살펴보면서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과 그리고 영국이 일본이그 당시 그 어린 소녀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저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왜 이렇게 연합국들을 포함한 미국이 이러한 강제 위안부에 대한사실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침묵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저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리고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미국은 당시에 부상하고 있던 중국의 공산당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선으로 일본을 활용하기 위해 침묵했을 것입니다.
▶ 김어준 : 그러면 기자님이 주로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은 당시 연합군이 보유하고 있던 아카이브에서 나온 거네요?
▷ 그리셀다 : 네, 맞습니다. 특히나 미국의 아카이브는 정말 제가 거의 1년 동안 모든 문서들 그리고 모든 보고서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발견하게 된 증거들에 기반을 해서 기사들을 작성하게 된 거죠.
▶ 김어준 : 그러다가 이 평화의 소녀상으로는 어떻게 연결된 겁니까?
▷ 그리셀다 : 지난 20년 동안이나 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추적을 해 왔었습니다. 소녀상이 전 세계적으로 첫 번째로공개가 됐을 때 굉장히 큰 이슈였었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소녀상 기념물이 건축되는 국가들을 봐 왔어요. 미국을 포함해서 독일 그리고 중국, 타이완, 필리핀, 다양한 국가가 있는데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나도 암스테르담 시정부에 제안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 김어준 :이 이슈를 오랫동안 추적해 왔고 소녀상의 존재도 알았지만 본인이 왜 직접 암스테르담에 이 소녀상을 설립 추진하기로 했는지. 본인이 왜 직접. 그게 궁금합니다.
▷ 그리셀다 : 제가 이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제 경우 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죠. 네덜란드는 식민주의와 그리고 식민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항상 식민주의와 그리고 식민 역사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네덜란드가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브에 있는 자료들이 2028년까지 봉쇄되어 있습니다.
▶ 김어준 : 그러면 네덜란드 아카이브는 2028년까지는 묶여 있다고 하는데 왜 묶여 있는 겁니까, 이게?
▷ 그리셀다 : 1991년도에 故김학순 할머니께서 공개 증언을 하게 되셨죠. 그 당시에 그 증언으로 인해서 전 세계적인 충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네덜란드의 얀 루프 오헤르너라고 하는 할머니께서도 자신 또한 일본 위안부의, 위안군의 피해자였다고 나섰는데요. 그렇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의 옛 식민지인 동인도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느냐는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자 네덜란드 정부가 공식 입장을 발표했는데요. 300명의 위안부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고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네덜란드 정부가 발표했었던 300명이라는 숫자를 믿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300명 중에 대다수가 백인들 또는 유라시안 혼혈들이라고 발표한 바가 있었는데요. 1994년도 무렵에 제대로 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는 만약에 제대로 사실들이 밝혀진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대다수의 피해자가 동인도, 말라카섬 그리고 파푸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찾은 바로는 약 7만 명의 위안부피해자가 식민지였던 동인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네덜란드 정부가 이 사실들을 은폐하려고 했었던 이유는이 모든 국가들의 전쟁 연금을 지급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피하려고 했었던 거죠.
▶ 김어준 : 다 듣고 나서도 왜 굳이 내가 직접 평화의 소녀상을 암스테르담 한가운데 세워야 되겠다, 내가 나서서. 그 부분은 좀 더 듣고 싶거든요.
▷ 그리셀다 : 사실 예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에서 피해를 입었던 위안부 할머니들, 얀 루프 오헤르너 할머니를 비롯한 다양한 분들이 공개 증언에 나서기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서 위안부들과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죠. 한국의 경우에는 정의연이 있고 그리고 관련한 연합들이 존재하지만 네덜란드에는 사실상 그런 연합이라든가 또는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이러한 증거들에 기반을 해서 새로운 것을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역사상 첫 번째로 시도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피해를 입었던 다양한 인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을 직접 소녀상에 새기는 것입니다.
▶ 김어준 : 그러니까 여러 인종의 얼굴을 하고 있는 여러 명의 소녀상을 생각하시는 거죠, 지금은? 이게 그러니까 한국의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것이고 그걸 이 소녀상 군상으로 표현하시려고 하는 거구나.
▷ 그리셀다 :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군상을 만드는 건데요. 여러 명의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손을 잡고 원을 그리고있다든가 또는 반원을 그리고 있는 형태의 군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도 우리가보고 있죠. 전쟁과 관련한 범죄라든가 또는 여성의 연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김어준 : 잘 이해했고요.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벌어지고 있는일인데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서 전 세계 어디서든 평화의 소녀상 설립을 추진하려고 하면 반드시 일본 현지 대사가 등장한다든가 외교관이 등장해서 설립을 방해하거든요. 네덜란드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까?
▷ 그리셀다 : 사실 지금 주신 질문이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한 가지 사례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몇 년 전에 네덜란드 신문에 위안부 관련한 문제를 기고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제 동료 기자가 전화가 와서는 실제로 일본의 대사가 뉴스룸에 찾아왔다 이 문서들을 봐라, 그리셀다가 이야기하는 것은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거짓이고 사실상 한국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 위안부들은 강압적으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는 게이 문서에 보면 다 나와 있다고 말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지금 암스테르담에는 사상 첫 번째로 당선된 여성 시장님이 역임하고 계십니다. 굉장히 똑똑한 정치인이자 똑똑한 여성분이세요. 그래서 제가 그 시장님의 비서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사실 암스테르담 도시에 소녀상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리고 여성의 인권과 사람의 인권 그리고 정의 구현을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일본 대사관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간에 저희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 김어준 : 그러면 우리는 언제쯤 완전히 새로운 버전의 그리셀다 몰러만스가 제안한 소녀상을 암스테르담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겁니까?
▷ 그리셀다 : 일정을 정확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2년 안에는 완성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겠고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김어준 : 알겠습니다. 혹시 한국에서 도와줄 일은 없습니까?
▷ 그리셀다 : 네, 물론이죠. 암스테르담이랑 서울시는 자매 도시라고 하기도 하기 때문에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고 도와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정의연에서도 좀 도움을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 김어준 : 여기까지는 정의연과도 공식적으로 같이 일하신 게 아니라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뉴스공장도 알게 됐으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주십시오. 저희가 가능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겠습니다.
▷ 그리셀다 : 감사합니다.
▶ 김어준 : 대단한 일을 해내신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 그리셀다 : 영광이죠.
▶ 김어준 :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 2년 동안 아마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정의연에 연락 주시고 그리고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연락을 받을 때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평화의 소녀상 설립을 추진하고 계신 그리셀다 몰러만스 탐사 전문 기자였습니다. 그리고 통역에는
◑ 통역 : 박지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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