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충암파, 학교 명예 짓밟아…상처 안 받게 해달라” 교장의 호소
이우연 기자 수정 2024-12-05 18:32 등록 2024-12-05 17:30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예비후보 시절이던 2021년 9월8일 모교인 서울 충암고를 찾아 시구를 선보이고 있다. 유튜브 ‘윤석열’ 채널 영상 갈무리
“일명 ‘충암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우리 학교를 거쳐 갔을 뿐, 현재의 충암고등학교와는 무관한 이들입니다. 학교의 명예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이들 때문에 충암고가 계속 언급되면서 학생들이 상처받고 선생님들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윤찬 서울 충암고 교장이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 졸업생으로 꾸려진 ‘충암파’가 비상계엄 사태의 주동 세력으로 지목되면서 학교 구성원들이 뜻밖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호소였다. 윤 대통령은 충암고 8회 졸업생이고 계엄령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7회, 경찰을 관할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2회 졸업생이다. 계엄령이 계속될 경우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을 여인형 중장(17회), 대북 특수정보를 수집하는 777사령부 박종선 소장(19회)도 충암고 출신이라 군내 핵심 정보기관 수장이 충암고 라인으로 채워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계엄이 선포된 다음날인 지난 4일부터 충암고에는 학교 행정실과 대표전화 등으로 약 100통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쳤길래 충암고 졸업자들이 이 모양이냐” “학교 풍토가 원래 그러냐” 등의 전화에 교사들과 직원들은 대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이 교장은 “전화하는 분들의 심정은 이해하나, 지금 학교 교직원들은 1970∼80년대에 졸업한 그들을 가르친 적도 없어 무관하다”며 “선생님들에게는 지금의 학교와 상관없다고 부드럽게 안내해달라고 하지만 괴로운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교장은 충암고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시민에게 한소리를 듣는 학생도 있는 등 학내 구성원들이 많이 위축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애교심이 많이 떨어질까 봐 걱정스럽다”며 “가정통신문이라도 보내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까 고민했지만 어떤 입장을 내더라도 정치적으로 꼬투리를 잡힐까 봐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충암고의 이름이 거론되며 학교의 명예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에 교직원 명의의 성명서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교장은 윤 대통령이 예비후보 시절 무리해 충암고를 찾는 등 모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했다. 이 교장은 “코로나19 상황이고 교육 기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라 안 된다고 했는데도 후보 쪽에서 동문회를 통해 학교에 방문하겠다고 고집했다”며 “결국 와서 야구부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갔다”고 했다.
올해로 30년째 충암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교장은 충암고가 과거 비리재단과 결별하고 정상화 수순을 밟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했다. 충암고의 재단인 충암학원은 2015년 “급식비를 내지 않았으면 밥을 먹지 말라”는 충암고 교감의 발언이 알려지며 각종 비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감사 결과 쌀과 식용유를 빼돌려 급식비를 횡령한 사실 뿐만 아니라 난방비와 창호 공사비 횡령 등의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2017년 충암학원 이사 전원에게 임원 승인 취소처분을 내리고, 임시이사 체제는 4년간 지속했다. 이어 충암고는 2021년 서울 내 첫 공영형 사립학교로 선정돼 교육청이 추천하는 이사와 감사를 이사회 임원으로 선임하게 됐다.
이 교장은 “학생 자치와 민주주의 실현에도 신경을 쓰고 있고, 투명하고 깨끗한 학교로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며 “제발 ‘충암파’라 불리는 이들과 무관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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