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대명사’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화환 보낸 윤 대통령
입력 : 2024.12.05 17:03 수정 : 2024.12.06 07:59 김현수 기자
 
경북도청 앞 동상 제막식
안동 시민들 비판 회견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5일 오전 참석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5일 오전 참석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벌어진 지 이틀 뒤인 5일 경북 안동 경북도청 앞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이 등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비상계엄 하면 떠오르는 인물의 동상도 기가 막히는데 그 제막식에 계엄 선포 대통령 화환에 등장하다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분노했다.
 
이날 오전 경북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 천년숲 앞에서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경북녹색당·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사회민주당 등의 관계자들은 “국민이 비상계엄을 막아낸 이때, 박정희 동상이 말이 되느냐”고 외쳤다. ‘친일 독재자 박정희 우상화 동상 반대’ ‘유신 망령’ 등의 손팻말을 들고 선 이들은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것이 비상계엄 망령을 깨우고 있다고 했다.
 
이날은 박정희대통령동상건립추진위원회(박동추)가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연 날이다. 제막식에 참석한 사람은 3500여명(경찰 추산)에 달했다. 제막식에는 전광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윤 대통령의 축사도 대독할 예정이었으나 비상계엄 후 총사퇴로 생략됐다.
 
김헌택 안동시민연대 상임대표는 “이제는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윤석열이 그제(지난 3일) 선포한 비상계엄을 국민이 막아냈다”며 “비상계엄 하면 떠오르는 논란의 인물을, 독립군을 때려잡고 수많은 노동자와 민주 열사들을 죽이고 탄압한 자의 동상을 이곳에 세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제막식 참석을 위해 온 일부 시민들은 “이북으로 가라” “빨갱이 XX들” 등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경북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 천년숲 앞에서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경북녹색당·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사회민주당 등이 5일 ‘박정희 동산 건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현수 기자
경북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 천년숲 앞에서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경북녹색당·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사회민주당 등이 5일 ‘박정희 동산 건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현수 기자
 
이날 세워진 박 전 대통령 동상은 높이 8.2m에 달했다. 동상 앞면 하단에는 ‘오천년 가난을 물리친 위대한 대통령 박정희’, 뒷면 하단에는 그의 생전 어록이 새겨졌다. 동상 뒤에는 박 전 대통령 업적과 사진 등을 소개하는 배경석 12개를 배치했다. 동상 인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도 놓였다.
 
지승엽 교사(50)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는 것을 보고 구시대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비상계엄이 화신인 박정희 동상에 윤석열 화환이 말이 되느냐”고 비난했다.
 
5·16 군사정변을 소개하는 배경석에는 ‘5·16 혁명 주도’로 표기돼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은 1961년 5월16일 일어난 쿠데타를 ‘군사정변’으로 쓰고 있다. 대법원도 2011년 국가보도연맹사건의 피해자 소송 판결문에서 이 사건을 ‘쿠데타’로 표현했다.
 
이번 동상 건립은 박동추가 지난 3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초 박동추는 대구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려고 했는데, 홍준표 대구시장이 동상 건립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박동추는 동상 건립부지를 받는 등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동상 건립을 위한 관련 행정절차를 모두 마쳤다고 밝혔다.
 
안동시민연대는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독립군 탄압에 앞장섰고 쿠데타로 집권해 3선 개헌, 유신헌법으로 무리하게 권력을 향유 하려다 피격당해 사망했다”며 “이철우 도지사는 민간단체 뒤에 숨어서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 있다. 당장 사퇴하라”고 외쳤다.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5일 열린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화환이 놓여 있다.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5일 열린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화환이 놓여 있다.
 
경북시국행동도 성명을 통해 “지난 3일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직면한 과제는 바로 독재 잔재의 청산”이라며 “지금 당장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현재 전국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수는 10개다. 이 가운데 청도·경주·포항·구미·경산 등 경북에만 8개가 설치돼 있어. 특히 구미에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만 12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앞서 경북도는 지난해 12월 경주 보문단지 안 관광역사공원에도 50억원을 들여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등 동상 8개와 조형물을 설치했다.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5일 오전 참석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김현수 기자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서 5일 오전 참석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을 지켜보고 있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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