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영방송, ‘내란 왜곡 다큐’ 비판 커지자 “저널리즘 기준 어긋나”
피닉스·ARD·ZDF 온라인·TV 모두 삭제 “편집 검토 결과 기준 부합하지 않아”
기획 의도는 항변…“내 인터뷰, 내란 왜곡에 쓰일 줄 몰랐다” 비판도 나와
기자명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입력 2025.03.08 16:06 수정 2025.03.08 16:20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 이들이 운영하는 채널 피닉스가 온라인 공개했다 삭제한 ‘인사이드 코리아-중국과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 위기’ 다큐멘터리.
독일 양대 공영방송이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극우 세력 음모론을 일방으로 담아 거센 비판을 부른 다큐멘터리를 웹사이트에서 모두 삭제했다. 방송사는 언론 질의에 ‘다큐멘터리가 저널리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당초 기획 의도는 항변하면서 또다른 비판을 불렀다.
독일 양대 공영방송인 ARD와 ZDF가 공동운영하는 TV채널 피닉스 측은 7일(현지시간) 문제의 다큐 방영 경위를 묻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이메일을 통해 “피닉스는 ARD와 ZDF의 미디어 라이브러리에서 해당 영화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피닉스는 당초 지난 6~7일에 걸쳐 해당 다큐를 편성했으나,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거센 비판과 항의가 일자 프로그램을 TV 편성에서 삭제했다. 7일 기준 피닉스와 ARD와 ZDF 웹사이트에 공개했던 해당 영상도 모두 삭제했다.
피닉스 측은 에디터 팀이 해당 다큐멘터리를 두고 자사 저널리즘 기준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피닉스 측은 “시청자들로부터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에디토리얼(편집)팀이 이 다큐멘터리를 재검토하게 됐다”며 “편집 검토 결과 이 필름은 한국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피닉스의 저널리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가 공개했다 삭제한 ‘인사이드 코리아-중국과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 위기’ 다큐멘터리에서 전광훈 목사 인터뷰 장면. ARD와 ZDF가 운영하는 피닉스 온라인 웹사이트.

▲피닉스 측의 이메일 답변서.
피닉스 측은 “이 필름은 윤 대통령에 대한 보수적인 국민의힘의 관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균형과 요구 사항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다큐멘터리 내용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당초 내란을 일으킨 윤 대통령과 이를 옹호하는 국민의힘 주장을 주로 다룬 기획 의도를 감싸는 태도를 보인 셈이다.
한편 피닉스 측은 앞서 문제의 다큐멘터리를 ZDF의 법무 부서로 전달했다고 밝혔는데, 그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또한 △제작진의 소속과 이들에게 제작을 맡긴 경위 △본사가 다큐 내용 검수를 거쳤는지 △한국 시민사회와 한국-독일 학계의 사과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도 답하지 않았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8일 통화에서 “어떤 이슈로 법무부서로 전달한 것인지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독일 방송사들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피닉스 측 입장은 다큐의 독일 국내법 저촉 여부를 검토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홀로코스트 역사를 지닌 독일은 정치적 이유에 의한 민주주의 체제 부정, ‘빨갱이’ ‘중공’ 등 특정 이념이나 민족 등을 이유로 혐오나 폭력을 조장하는 행위를 형법상 민중선동죄 등으로 강력하게 제재한다.
신 교수는 피닉스 답변을 두고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의 관점을 조명하는 것을 의도했다’는 것을 인정한 답변이다. 그것 자체를 문제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뜻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만약 독일 공영방송이 다른 민주국가에서 평화기에 정치적 목적으로 전쟁법(Kriegsrecht)을 선포한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관점을 조명할 의도를 지닌 영상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 결과 편파적 제작물을 걸러내지 못한 것이라면 제작진뿐 아니라 ARD, ZDF, 피닉스의 윤리적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가 공개했다 삭제한 ‘인사이드 코리아- 미국 , 중국 그리고 북한’ 다큐멘터리 엔딩크레딧. ARD와 ZDF가 운영하는 피닉스 온라인 웹사이트.
국내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반발도 커지고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에 내란사태를 규탄하는 인터뷰이로 포함된 박다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기획국장은 미디어오늘에 “인터뷰 당시는 목적을 물으니 독일 방송이고 ‘계엄 뒤 한국의 광장’을 다루려 한다고만 했다. 고사했는데도 거듭 요구해 공익 목적으로 응했다”고 말했다.
박 기획국장은 “당시는 1월 초로 서부지법 폭동 전이었고 극우 세력 부상은 생각 못할 때였다. 주요 외신도 계엄이 친위 쿠데타라는 논조로 보도할 때라 인터뷰가 극우 세력 동조에 쓰일 거라 상상도 못했다”며 “정확한 취지도 설명하지 않은 채 인터뷰하고, 독일 공영방송사 이름으로 친위쿠데타 왜곡에 이를 활용한 데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참여연대 등 1700여 시민사회노동단체가 결성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7일 “ARD와 ZDF는 독재와 폭력을 옹호하는 편에서 내란세력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나치 파시즘의 악몽을 한국에서 되살리려는 것인가”라며 “심각한 왜곡을 정중히 사과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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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 참여하고 있는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과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도 각각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ARD·ZDF의 공식 사과와 보도 경위 해명을 요구했다. 독일에 주재하는 한인 사회에서도 ‘재독 한인 민주시민 모임’ 명의로 독일 공영방송사에 항의하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앞서 독일 제1·2공영방송이 운영하는 피닉스 채널은 ‘인사이드 코리아-중국과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 위기’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공개하고 TV에도 편성해 한국 시민사회·언론단체와 한·독 전문가들의 비판에 휩싸였다. 다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 측 주장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그의 담화 영상과 전광훈 목사·극우 유튜버·극우 집회 참가자·부정선거 음모론자·극우 성향 연구가 인터뷰로 대거 전했다. 내레이터가 계엄군의 국회 침탈이 ‘충돌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는 등 내란을 직접 옹호하기도 했다. 반면 12·3 내란사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인터뷰는 28분 넘는 영상에서 2분 미만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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