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여전히 계엄 포고령 수행 중?
[이진순의 지남철] 기자명 이진순 성공회대 겸임교수
media@mediatoday.co.kr 입력 2025.03.31 21:28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 은밀한 디테일이 악마들의 보물창고다. 일반인의 상식으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견고한 성채, ‘법과 규정’이라는 이름의 철옹성 안에는 소수의 간택된 ‘요원’들만 드나드는 비밀창고 같은 곳이 존재한다. 성채의 깊은 구석, 작고 허름해서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 용도나 목적도 모호한 비밀창고는, 절대권력을 보위하는 위험천만의 무기고가 되기도 하고 비판세력을 가두고 고문하는 밀실이 되기도 한다.
우리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통신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 헌법의 토대 위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위하여”(<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8조 1항) 설치되었고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심의위원은 대통령이 위촉하는데, 3명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추천한 자, 3명은 국회 상임위에서 추천한 자를 위촉한다. 나머지 3명은 대통령 몫이다.
현재 방심위는 9인 정원 가운데 3명만 있다. 모두 윤석열이 위촉한 자들이다. 5명이어야 할 방송통신위가 대통령이 임명한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인 체제로 운영되듯이, 9명이어야 할 방심위도 대통령이 위촉한 3인 독점체제다. 이제부터 무소불위의 방심위 비밀창고를 찾아 나서는 탐험을 시작해보자. 좁은 골목이 굽이굽이 얽혀있는 미로라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더듬어 가야 한다.

▲ 서울의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월29일 방심위는 의사·의대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의 일부 게시글에 대한 삭제 요구를 의결했다. 메디스태프 게시판에,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들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가 떠돈다는 이유였다. 생사가 오가는 의료현장을 장기간 이탈해 국민의 의료권을 침해한 전공의 파업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현장복귀 전공의를 배신자로 낙인찍는 마녀사냥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헌법적 기본권을 무시하고 닥치는대로 ‘처단’하려는 행위는 의료파업보다 더 파괴적이고 위험하다.
방심위가 메디스태프에 적용한 규정은 <정보통신에 관한 규정> 제8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에 관한 조항이다. 8조에는 1항 음란물에 관한 조항이 세부적으로 8개, 2항 폭력/혐오물에 관한 조항이 7개, 3항 사회통합 및 사회질서 저해물에 대한 조항이 10개 있다. 4항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 5항은 패륜적 행위에 대한 내용이다. 메디스태프에 대해 적용된 8조 3항은 도박, 미신, 장애인/노인비하, 차별과 혐오 조장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중 마지막 (차)목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차) 그 밖에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조항들 맨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그 밖에…”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3일 앞두고 뉴스타파에서 보도했던 ‘윤석열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 보도’(속칭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에 대해 방심위가 칼을 빼 들었을 때도 같은 조항을 적용했다.

▲ 김만배-신학림 녹취 전문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그 밖에 사회적 혼란’이란 대체 무엇인가? 누가 어떤 잣대로 규정하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더 황당한 것은 <정보통신에 관한 규정> 제6조가 ‘헌정질서 위반 등’에 관한 조항이라는 점이다. 1항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현저히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정보’ 2항 ‘헌법을 부정하거나 국가기관을 전복·파괴·마비시킬 우려가 현저한 정보’ 등이다. 서부지법 폭동을 사주하고 선동한 유튜버나 인터넷 언론에 대해서나 선관위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근거 없는 중국인 침투설을 퍼뜨린 언론사에 대해서 방심위가 제재를 가한 적은 없다.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이나 내란을 옹호하는 헌정파괴세력은 비호하고 권력의 눈 밖에 난 세력에게만 칼을 휘두르는 방심위를 어찌할 것인가? ‘그밖에…’를 무기로 헌법을 유린하는 윤석열의 친위부대는 여전히 계엄 포고령의 자기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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