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고령 ‘위헌적’이라고도 못해” KBS 기자들, 제작자율성 침해 반발
시사프로그램의 尹 임명 ‘강행’ 자막, 제작진도 모르게 빠져
기자명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입력 2025.04.08 18:54 수정 2025.04.08 19:53
 
▲2025년 4월 6일 방영된 KBS ‘더 보다-또 파면된 대통령’ 편 가운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대목 중 ‘(임명) 강행’ 자막이 제작진도 모르게 지워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해 비상계엄 직후 자사 보도 논란을 비판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집회 사진 배경으로 삭제된 자막을 표현한 이미지. 그래픽=이우림 기자
▲2025년 4월 6일 방영된 KBS ‘더 보다-또 파면된 대통령’ 편 가운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대목 중 ‘(임명) 강행’ 자막이 제작진도 모르게 지워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해 비상계엄 직후 자사 보도 논란을 비판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집회 사진 배경으로 삭제된 자막을 표현한 이미지. 그래픽=이우림 기자
 
KBS 현직 기자들이 12·3 내란사태(비상계엄) 및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의 자사 보도를 비판하며, 내부의 제작 자율성 침해 사례가 반복됐다고 털어놨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인사 문제에서 지워진 ‘강행' 자막
 
지난 6일 방영된 KBS 시사프로그램 ‘더 보다-또 파면된 대통령’ 편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내용의 자막 일부가 제작진 모르게 지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 보다’ 제작진인 A기자는 7일 KBS 보도정보 게시판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이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31명을 임명했다’는 대목 중 임명 ‘강행’ 자막이 제작진도 모르게 빠졌다고 밝혔다.
 
A기자는 기존 ‘임명 강행’ 자막에 ‘야당 반대에도 임명’이란 설명이 붙었다가, 결국엔 ‘강행’이 아예 지워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방송분에는 “정부 장·차관급 인사 31명 임명 vs 민주당 탄핵소추안 22번 발의” 자막이 나갔다. A기자는 이 자막 대로라면 윤 정부에서 장차관급 인사를 31명만 임명했다는 내용이 되기에 “내용 자체도 틀리다”고 했다.
 
이를 두고 A기자는 “실질적으로 제작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종편이 시작된 상황에서 또 누군가로부터 수정 지시가 내려와 급하게 수정하려 했던 건 알겠다. 마지막까지 챙기지 못한 저에게도 책임은 있다”며 “제작진을 패싱하고 직접 자막감독에게 수정을 지시하는 건 괜찮은지, 또 이게 그렇게 급하게 수정했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단어였는지 묻고 싶다”고 물었다.
 
▲2025년 4월 6일 KBS 1TV에서 방영된 KBS 시사프로그램 '더 보다-또 파면된 대통령' 편 갈무리
▲2025년 4월 6일 KBS 1TV에서 방영된 KBS 시사프로그램 '더 보다-또 파면된 대통령' 편 갈무리
 
이날 A기자에 앞서 KBS 사회부의 B기자가 같은 게시판에 “지난 3개월, 사회부 법조팀에서 저와 후배들이 겪은 지난날은 어렵게 물어 온 단독 하나 내보내는 것도 온갖 용을 써야 가능했고 상식적인 리포트 발제는 번번이 무시되었으며 기사 안에서도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표현은 나노 단위 수준으로 들어내지는 날들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포고령 ‘위헌적’이라고, 尹측 ‘여론전’ 한다 비판 못해
 
B기자는 올해 1~4월 겪은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로 △국회·정당 등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는 포고령 내용을 ‘위헌적’이라 말하지 못했고(1월20일) △탄핵심판 첫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장관이 짜놓은 듯한 문답을 주고 받은 날 초고 전체가 지워졌고(1월23일) △일반 시민을 ‘국민 변호인단’으로 모집한다는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에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하고(2월1일)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여전히 내놓지 않고 있다는 문장마저 사전 제작 리포트에서 도려내진 일(3월23) 등을 밝혔다. ‘경고성 계엄이었다, 의원 아닌 인원을 끌어내라 한 것’이라는 등의 윤 전 대통령 주장을 주요 내란 혐의자 진술조서와 비교하는 아이템의 경우 온갖 이유로 밀리다 ‘사인난 지 너무 오래돼서 애매하다’(4월1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B기자는 “어떻게든 아이템 개수 자체를 줄이고 싶어 한다, 그게 저와 후배들이 계속 받은 느낌이었다”며 “대형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사의 기본 태도가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또한 “헌정사상 두 번째로, 그것도 계엄을 저질러 대통령이 탄핵 당한 어마어마한 일을 겪고도 선고 다음날 우리 9시 뉴스에 꽂힌 사회부 아이템은 셋,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6일)은 두 개”라고 했다. 그는 “더 나은 보도를 위해 더 빨리 더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련다”고 했다.
 
나아가 B기자는 “후배들의 청에 내일에, 다음에, 주말에, 이런 표현을 즐겨 쓰시던 사회부장은 그간 자기는 위에 최선을 다해 설득했으나 닿지 않았다는 말을 매번 들려주셨으니 이제 그 위가 답을 했으면 좋겠다”라며 “계엄과 탄핵 정국을 무력하게 보낸 KBS가 앞으로 열릴 새로운 사회에서 국민의 신뢰를 찾아오기 위해 보여줘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인지 보도국 수뇌부들도 깊은 고민과 반성을 하고 계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2025년 1월 14일 KBS1TV '시사기획 창-대통령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영상 갈무리.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차용한 제목에 기존 편집본에는 없던 '혐의' 자막이 추가됐다.
▲2025년 1월 14일 KBS1TV '시사기획 창-대통령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영상 갈무리.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차용한 제목에 기존 편집본에는 없던 '혐의' 자막이 추가됐다.
 
KBS ‘시사기획 창’ 편성, 보수단체 성명 뒤 미뤄졌나
 
이런 가운데 비상계엄을 다룬 KBS ‘시사기획 창’ 관련해 외부로 공개되지 않은 정보가 보수 성향 단체 성명에 등장했고, 이후 실제 편성이 미뤄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1일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는 성명에서 “오는 4월8일 방송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미뤄진 ‘시사기획 창-계엄군: 항명과 복종’ 편성은 작년 12월부터 이어진 일련의 계엄 관련 방송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동안 KBS는 ‘계엄’ ‘부정선거’ ‘군 개입’을 연이어 다루며 특정 진영의 시각을 끊임 없이 부각시켜 왔다”고 썼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는 7일 “시사기획 창은 방송 특성상 해당 주 방송을 전담하는 제작진 외에는 방송 제목이나 내용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도 잘 알지 못한다”며 “성명이 나온 이후 실제로 이재환 보도본부장과 김철우 시사제작국장의 결정으로 8일 방송 예정이던 ‘계엄군: 항명과 복종’ 편은 이달 22일로 방송이 미뤄졌다. 이게 다 우연인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지난 1월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당시 때처럼 보도본부 수뇌부가 방송을 인질 삼아 취재진의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수정을 강행하려 든다면 KBS본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작진과 함께 저항할 것이며, 무도한 제작자율성 침해를 시도한 수뇌부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시사기획 창-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편은 방송을 앞두고 박장범 KBS 사장 관련 내용 등을 덜어내라는 사측 요구가 거듭되며 불방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KBS 사측은 기자들의 사내 게시글 및 KBS본부 성명 등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에 대해 8일 현재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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