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한국 보수지와 美보수지의 차이
<뷰스칼럼> "한국 보수지, <WP>가 왜 워터게이트 터트렸는지 아나"
2012-04-02 11:16:36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사찰 의혹이 대통령 하야까지 필요한 중대 사안이라고 봤다면, 노무현 정부 때 벌어진 똑같은 일에 대해서도 당시 최고 책임자들이 정치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총리를 지낸 민주당 한명숙 대표, 이해찬 고문,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고문 등이 그 당사자일 것이다."
4월2일자 <조선일보> 사설이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이 'MB 하야'를 촉구하고 나서자, 청와대 주장대로 참여정권의 불법사찰을 기정사실화하며 우회적으로 하야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선 셈이다.
사설을 접한 전우용 역사학자는 트위터에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2004 노무현). 그는 '합법적인 것을 하고 싶다'는 말만으로 국회에서 탄핵당했습니다"라며 "그런데 누구는 '불법적인 것을 했음'에도 하야는 언어도단이랍니다"라며 8년전 '노무현 탄핵' 때와는 180도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조선>을 정조준했다.
그는 또한 "일본 언론들이 '한국판 워터게이트 발발'이라고 보도한답니다"라며 이미 이 사건이 국경을 넘어 국제적 추문으로 번져가고 있음을 지적한 뒤, "'미국판 워터게이트'는 '수문(水門)'이지만, '한국판 워터게이트'는 '물문(勿問, 묻지마)'일 겁니다. 한국 보수언론들은, 각하에게는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라며 거듭 보수지를 질타했다.
그는 이어 "무엇이 잘못인지 알면서도 언론이 제대로 알리지 않는 건, 사람들에게 죄를 지으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그런 짓은, 범죄 교사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전우용씨 외에도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상에서는 불법사찰 내부문건이 공개됐을 때는 아예 사실 보도조차 하지 않고 외면하던 보수지들이 청와대가 물타기 주장을 하고 나서자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는 행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한국 보수지를 질타하기에 앞서 40년전 미국에서 발발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개과정을 되돌아보자.
'워터게이트 사건'은 누구나 알듯,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라는 두명의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세기적 대특종이다.
1972년 6월17일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됐다. 이틀 뒤인 그해 6월 19일, <워싱턴포스트(WP)>는 다섯 명의 침입자 중 미국인인 제임스 매코드는 전직 CIA 요원이며 닉슨 재선 운동본부의 경비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고 보도하면서 마침내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 11월, 닉슨은 민주당의 맥거번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집요한 추적으로 닉슨 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 부정·수뢰·탈세 등이 속속 드러났으며 1974년 8월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탄핵결의가 가결됨에 따라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임기 도중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워터게이트를 터트린 <WP>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언론이라는 사실이다. 라이벌 <뉴욕타임스>가 민주당을 지지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WP>는 워터게이트 발발 4년전, 닉슨이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를 지지했었다.
그러던 <WP>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트렸다. 자신들이 지지해온 공화당 정권에 치명타가 될 것인지 알면서도, 닉슨 정권의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터트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불법도청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범죄라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 정치세력을 계속 감쌌다가는 민주주의 자체가 붕괴 위기를 맞고, 그 결과 '공화당의 재집권'이 영원히 물건너갈 것이란 냉철한 판단을 한 것이다.
"보수지는 보수권력이 집권했을 때, 진보지는 진보권력이 집권했을 때 더욱더 감시의 눈길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언론은 정론(正論)이 아닌 정파지(政派紙)에 불과할 뿐"이라는 언론의 기본원칙에 충실했던 셈이다.
불법도청보다 몇배나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중차대한 범죄행위가 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보도조차 외면하고 있는 한국 보수지들이 심각하게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런 자성조차 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언론이라고 자처해선 안된다.
워터게이트 사건때 또하나 간과해선 안될 대목은 <WP>의 영원한 경쟁지 <뉴욕타임스(NYT)>의 대응이다. <NYT>는 다음날, "<WP>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분명히 밝히며 <WP>의 특종을 그대로 받았다. 세기적 특종을 물 먹었으니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는 미뤄 짐작이 가나, 경쟁지 특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NYT>는 그 다음날부터 독자적 취재망을 총동원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언론의 자세다. 미국인들이 각자의 정파성에도 불구하고 <WP><NYT>를 양대 정론으로 인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 보수지의 이번 행태는 왜 한국이 아직 선진국으로 불리기엔 까마득히 먼 지점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하나의 반증이다.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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