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indiadream.net/menu/62-2-8.htm


무굴제국 시대


    바부루 초상

무굴제국은 몽고의 후손들이 세운 우즈베크 공화국에서 태어난 바부르로부터 시작한다. 바부르는 원래 인도보다 사마르칸트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티무르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어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시도에서 오히려 고향까지 잃어버린 그는 차선책으로 유명한 파니파트 전쟁을 통해 당시 쇠락해 버린 델리의 로디왕조를 물리치고 무굴제국을 세운다. 바부르의 인도 진출은 인도 역사상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훌륭한 군인이며 정치인이고 동시에 예술애호가로서 시인이기도 했던 바부르는 세계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인 동시에 인도 역사에서 무굴제국이라는 새 장을 탄생시킨 인물인 것이다. 바부르는 한편 인도에 새로운 전쟁의 기법을 소개했다. 대포와 같은 화기를 이용한 전술적 효과를 확연하게 입증(실지로 파니파트 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상대를 불과 3시간만에 초토화시킴)시킴으로써 코끼리를 주로 이용했던 인도권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또한 뛰어난 설득력과 통솔력의 소유자로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터키어 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이었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가 직접 저술한 자신의 회고록은 오늘날 세계고전 문학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뒤를 이은 후마윤은 선왕때 거듭된 전쟁으로 중앙집권적인 행정조직을 갖추지 못한 제국을 계승 받았다. 또한 강력한 저항세력인 아프가니스탄계를 물리치고 영토의 확장을 꾀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쫓겨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도망간다. 후마윤을 중심으로 한 무굴인들은 비록 영토는 바부르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지만 수적으로는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생들마저 호시탐탐 형의 지위를 노리는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여기에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방심을 보였던 후마윤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의 패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도망간 사이 델리에는 후마윤을 물리친 쉐르 칸이 스스로 '쉐르(호랑이) 샤'(아프가니스탄계의 지배자라는 뜻)라고 부르면서 델리에 수르 왕조를 건립한다.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무굴제국의 전반적인 국가조직에 중요하 토대를 제공했다. 관료조직을 정비하고, 화폐개혁을 통해 물가안정을 취하고, 토지를 측량하여 토지세 징수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면서 국가경제의 안정을 이루었다. 그는 북인도의 서쪽과 동쪽을 잇는 그랜드 트렁크 로드를 건설하고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8킬로미터마다 숙소를 세우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은 후예 무굴제국의 악바르에게 계승되어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수르 왕조는 겨우 15년만을 유지한 뒤 이란의 도움을 받은 후마윤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악바르대제 초상
 
후마윤의 뒤를 이은 악바르는 북인도 전역을 차지한 뒤 남부의 데칸 지역까지 차지하면서 마우리야 왕조 이후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국가를 이룬다. 그는 영토 확장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분야에서도 무굴제국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했고, 인재의 등용에 있어서도 힌두교도에게도 평등하게 기회를 주었다. 악바르는 델리 술탄 시대의 문제가 왕권의 약화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왕권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활용했다. 종교적으로도 이전의 이슬람 왕조와는 달리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포용하는 융화책을 취하였다.구체적으로 차이타냐, 카비르, 나낙 등과 같은 성자를 통해 수피즘과 박티 신앙 사이에 상호소통의 길을 열어 적극적인 양자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의 종교적 융화책은 제항기르와 타지마할로 유명한 샤자한으로 이어지지만 아우랑제브가 다시 종교적 억압책을 실시하면서 제국의 분열은 심화된다. 악바르는 사회와 교육분야에도 개혁의 손길을 미쳤다. 우선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뒤따라 목숨을 버리는 인도인의 전통적 관습인 사티 제도를 금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과부의 재혼을 합법화시켰으며, 출산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시키고, 조혼풍습을 개선하였으며, 술의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 모든 법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제항기르 초상화 
 
악바르의 뒤를 이어 제항기르가 제위를 이어갔으며, 그는 부친 악바르의 유업을 계승하여 무굴제국의 기반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계승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의 생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누르 자한과의 결혼으로 더 알려져 있다.

    샤자한 초상
 
제항기르 이후 샤 자한이 형제간의 분쟁을 통해 승리하면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샤 자한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인도 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 전반에서 왕위를 놓고 잦은 세력 다툼이 발생했던 이유는 제도적으로 왕위 계승에 관해 정해진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샤 자한은 즉위하자마자 무굴제국의 지배를 벗어나 있던 데칸 지역 등 여러나라를 정복하는 일에 착수하였으며, 그 결과 악바르 시대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샤 자한은 정통적인 이슬람교도로서 건축과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 분야에서 페르시아풍을 강조하였다. 낭만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는 특히나 건축광이라 불릴 정도로 건축에 관심을 많이 쏟아 타지 마할, 델리 성, 자미 마스지드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아그라 성을 재건축하기도 하였다. 이 건축물들은 모두 후세에 무굴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타지 마할은 특히나 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결부되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관광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샤 자한의 뒤를 이어, 형제들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에, 심지어 아버지마저 유폐시킨 뒤 왕위에 오른 아우랑제브는 처음부터 무굴제국을 철저하게 이슬람 세계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궁정 안의 힌두교적 요소를 없애고, 사원을 파괴·폐쇄하고, 힌두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차별 부과하는 등 편협된 타종교 억압정책을 썼다. 이는 결국 많은 힌두교도의 반항과 반란을 야기시키고 결과적으로 무굴제국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본격적인 인도 침입이 시작되면서 네덜란드프랑스를 거쳐 영국이 인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델리술탄 시대와는 달리 무굴제국에서는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특권을 소유할 수 있는 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실제로 무굴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족의 귀족화가 이루어졌다. 무굴제국에서 귀족계급의 급성장은 한편으로는 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대에 많은 산업들이 발전했지만 그 중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유럽 상인들의 인도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곳의 무역항을 통해 곡물과 직물류를 수출했으며, 금과 은을 수입해 들였다.
 
무굴제국의 문화는 굽타 시대 이래 북인도 문화의 제 2의 정통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시대에 형성된 건축, 문학, 음악 등은 힌두 문화와 터키-페르시아계 문화의 융합으로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적 특성은 전통의 힌두 문화와 터키-이란계 문화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건축분야의 두드러진 발전을 가져왔으며, 미술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공헌을 했다. 주로 페르시아 양식을 종래의 힌두 양식과 접목하는 가운데 무굴제국의 미술은 제항기르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음악 역시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결합이 주를 이루었다.


    자미 마스지드 이슬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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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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