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07961
▲ 김홍도 <주상관매도>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바람의 화원>이 보여주는 한국화의 미
[TV리뷰] 역사교사, 역사 논쟁 아닌 그림을 보다
08.11.08 14:45 l 최종 업데이트 08.11.08 21:10 l 김태희(ew4203)
그림 볼 줄 아십니까?
▲ 김홍도 <주상관매도>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다. SBS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매수 수·목 밤 10시) 8회에서 도화서 별제가 이명기의 경쟁 상대들을 말해줄 때, 김홍도를 설명하며 쓱 지나간 그림이기도 하다. 이미 이 그림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도 기억하기 힘들 것이다. 내 동료 하나는 이 그림 프린트본이라도 하나 구해서 집에 걸어두고 보고 싶다고 했다.
김홍도의 그림이라니까, 어떤 안목 높은 이는 집에 걸어두고 싶다고 하니 멋진 그림이려니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종이 한 구석에 쓱쓱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저 밑에 얼굴도 대충 해서 사람 둘 그려 놓은 것이 뭐가 멋있는지 모르겠다는 이도 많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걸어두고 싶다고 했던 그도 처음엔 그랬었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되면서 신윤복이 정말 여자였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역사 왜곡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신윤복의 정체나 역사 왜곡 문제가 아닌 한국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물론 전문가 수준의 해설은 아니다. 나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을, 예술 문외한(!)이니까.
내가 첫눈에 반해버린 그 그림은...
이 그림을 보자. 이것은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 궁전'에 있는 '유디트'라는 작품이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리'라는 생전 처음 듣는 화가가 그렸다.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주 유명한 그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당장 반해버렸다. 처음 본 바로 그 순간에 이 그림이 완벽히 해석되며 내 가슴이 크게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유디트> ⓒ http:/www.palazzopitti.it
주인공 유디트가 파르르 떨면서 서 있다. 방금 적장 홀로페로네스를 죽이고 목을 베어왔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간신히 서 있다. 뒤에는 유모인 듯 보이는 늙은 여자가 주인 아가씨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유디트를 어릴 때부터 키워준 유모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베어온 적장의 머리털을 꽉 잡고 있는 유디트의 손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다잡는 의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 짧은 찰나에 이렇게 느꼈고, 이 그림에 반했다. 그림과 사랑에 빠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렇게 첫눈에 반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나라의 그림으로 돌아오자. 첫눈에 반할 만한 그림으로 강력 추천하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이다. 이 그림은 '리움'에 있다. 사진으로는 아까의 '유디트'처럼 실물의 매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니 꼭 가서 보기를 권한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유리벽 뒤에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면, 손을 뻗어 그림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 손을 대면 내 손에 호랑이의 빳빳하면서도 푹신한 털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져 올 것만 같았다.
▲ 김홍도 <송하맹호도>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바람의 화원> 1회에서 김홍도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하며 그려온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그림을 받아든 정조는 그림이 살아있다며 크게 칭찬하였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호랑이는 살아있었다.
이 섬세한 털 하나하나를 김홍도는 '생 노가다'로 다 표현했을까? 그렇다면 김홍도는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 이 수많은 털을 어찌 그리 섬세하게…. 한 번 이렇게 살아있는 호랑이를 화폭에서 대하고 보니 그 다음부터 웬만한 호랑이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첫 눈에 반한 그림은 이 둘과 고려불화 '수월관음도'가 전부이다. 그런 걸 보면 문외한이 그림에게 반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바로 그림과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앞에서 제시한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는 이렇게 해서 내 동료의 가슴에 남은 그림이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었는데, 이 책에서 한국화를 감상하는 방법과 유명한 작품들의 해설을 접했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짚어주는 해설을 읽어보니 김홍도의 '씨름도'가 왜 극찬을 받는 작품인지,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왜 멋진 작품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 SBS
<바람의 화원>에서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는 시전행수 김조년의 예술적 안목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시청자들도 그의 해설을 듣고 그림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보았을 때는 '고양이 귀엽다. 꽃 예쁘네. 호랑나비구나' 이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패랭이꽃은 어떤 의미요, 제비꽃은 어떤 의미이며, 고양이는 무슨 상징을 뜻한다'라는 말을 듣고 나선 그림에 더 애착이 갔다. 더불어, 그냥 정면을 바라보는 평범한 고양이를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나비를 바라보느라 등이 공처럼 휜 통통한 고양이라서 더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다시보기로 보았다. 역사 왜곡 논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먼저 보고나서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니 역사 왜곡 문제가 아닌 한국화가 눈에 들어왔고, 신윤복, 김홍도의 그림과 드라마의 내용 전개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모습에 탄성이 나왔다.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이 드라마를 보며 처음 접한 그림이다. 원래 그림에는 여인의 귀밑에 붉은 점이 없다고 한다. 어쩌면 수업준비를 하며 이 그림을 한두 번 스쳐 지나갔겠지만, 신윤복의 다른 그림만큼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아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이 그림을 새롭게 발견했다.
▲ 신윤복 <기다림> ⓒ SBS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처럼 정순왕후에게 정인이 있었고, 그를 만나러 궁 밖으로 나간다는 설정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드라마의 재미와 극적 전개를 위한 설정일 뿐이다. 그러나, 송낙을 들고서 소녀 같은 눈망울로, 그리움을 가득 담은 채 서 있는 정순왕후의 모습은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웠고, 과거의 신윤복도 그런 모습으로 서 있던 어떤 여인을 그렸을 것이다.
비록 드라마적 설정이지만 이런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보니, 뒤편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 그리움이 함박 담겨 있다는 말도 수긍이 가고, 보면 볼수록 애잔하게 가슴에 남는다. 게시판에 이 그림이 좋다는 의견이 많은 걸 보니, 그들도 또 한 편의 그림을 알고, 보고,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주인공과 그림이라는 씨줄, 허구라는 날줄
신윤복은 고령 신씨이며, 화원인 신한평의 아들이다. 태어난 해는 아버지의 나이와 활동을 고려해 1750년∼1760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는데(1758년에 태어났다고 적은 간송미술관 도록도 있다) 죽은 해도 언제인지 미상이다. 8대조가 서얼(庶孼)이어서 중인 가문이 되었고, 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가 고령 신씨 족보를 통해 파악되었을 뿐, 부인과 자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림은 남아 있으나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없다. 이렇게 베일에 싸인 신비의 화가이기 때문에 그가 혹시 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소설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는 '단오풍정(端午風情)'을 신윤복의 화원 취재 출제작으로 설정했고, 정조의 밀명으로 김홍도와 동제각화(同題各畵-같은 주제로 서로 다른 그림 그리기)를 하며 현재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실려있는 그림들을 그린다고 설정했다. 이 설정들은 현실적으로 보아 모두 사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림과 주인공이라는 원재료에 그림을 그리게 된 상황이라는 허구를 절묘하게 잘 버무려 놓았다.
드라마 및 원작 소설은 신윤복과 김홍도가 같은 주제임에도 서로 다른 분위기로 그린 그림이 여럿 있다는 데에 착안하여 동제각화 에피소드를 만든 것 같다. 신윤복의 '주사거배'와 김홍도의 '주막도'를 이렇게 서로 연결시켰고,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조가 이를 자신의 통치에 활용한다는 상상력까지 더했다.
'빨래터'를 그리게 되는 상황은 더욱 절묘하다. 드라마는 그림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노론 세력(신윤복의 '주사거배'에 낮부터 양반에게 술대접을 받는 관리들의 모습이 표현돼 있기 때문)이 도화서 화원들을 허드렛일로 내몰고, 김홍도와 신윤복에게 가장 힘든 빨래 업무를 맡겼다고 설정했다. 그래서 그들이 빨래터에 가야 했기에 '빨래터'라는 그림을 그려서 왕께 올렸다는 그럴싸한 한 편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제는 여인들의 빨래터를 웬 엉큼한 남정네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훔쳐보는 그림도, 활을 든 해사하게 생긴 남정네가 빨래터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그림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빨래터 여인들에게 돌 맞는 상상을 하며 그린 그림이라는 이야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 신윤복 <계변가화> ⓒ SBS
▲ 김홍도 <빨래터> ⓒ SBS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전통 회화 감상
여기에 드라마는 덤으로 전통 회화 이론도 지겹지 않게 슬쩍슬쩍 강의해 준다. 김홍도 그림의 특징과 신윤복 그림의 특징도 주인공들의 대화와 성격, 고뇌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것이다.
신윤복이 생도 시절 몰래 그려서 판 '소년전홍'과 '춘색만원'에 대해 조선의 남정네들이 흥분하며 평가했던 말은 조선회화사 관련 서적에서 본 전문가들의 그림 해설 그대로다. 그러나 딱딱한 전문 서적에 써있는 글귀가 아니라 시정잡배(市井雜輩)들의 입을 빌어 나오니, 더 쉽고 편안하게 귀에 들어온다.
여기서 사족을 하나 달자면, 조선의 평범한 남성들의 예술적 안목이 높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인의 속살 한 부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그림인데도 야한 느낌을 받고, 주변에 풍경으로 그린 바위와 나무를 보고도 음란한 기색을 단박에 눈치채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한국 남성들의 예술적 안목이 조선의 필부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신윤복 <소년전홍> ⓒ SBS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는 전신(傳神-내면의 정신까지 표현하는 초상화)이라는 용어를 듣고, 그것이 인물을 그릴 때 그 사람의 정신까지 그림 속에 담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것이 한국화 인물화의 특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보니 정말 그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두 사람이 주막을 그릴 때 논쟁하는 장면, 빨래터를 그릴 때 갑론을박하는 장면을 보면, 배경도 중시하는 신윤복과 주제를 중시하는 김홍도의 화풍의 차이도 대충 감 잡을 수 있다. 드라마를 보고 다시 그들의 그림을 보니, 신윤복은 유려한 산수 배경 속에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김홍도는 과감하게 배경을 생략하고 주제에 집중한다는 점을 문외한인 나도 느낄 수가 있다.
드라마는 어진화사(御眞畵史) 장면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내 모습과 다르다면 그것은 내 초상화가 아니라며 징그러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렸다. 점, 얽은 자국, 기미, 상처, 사마귀 등 요즘 사진이라면 이른 바 '뽀샵질'로 다 제거해 버렸을 부분들도 전혀 빼놓지 않고 그렸다(그래서 조선시대 초상화를 오늘날의 의사들이 보면 주인공이 어디가 아픈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진화사에 참여할 화원을 뽑는 경합에서 번암 채제공의 눈을 정확하게 그린 김홍도 팀이 승리하고, 채제공도 그 초상화를 보며 기뻐했던 것이다. 어진화사 장면은 조선의 초상화 관련 자료를 아직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여 이 정도만 언급하고자 한다.
<바람의 화원>은 팩션 드라마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역사 교사라는 이유로 가끔 사람들이 내게 물어온다. 정말 신윤복이 여자냐고. 당연히 아니라고는 말하지만, 사실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도 충분하지는 않다. 김홍도의 자료는 수십 권의 연구 서적이 나올 만큼 충분한데 반해 신윤복과 관련된 자료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윤복의 성별이 아니다.
<바람의 화원>은 드라마일 뿐이다. 그래서 매회 시작 부분에 '드라마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써 놓고 있다. 시청자들이 이것을 역사드라마로 생각하지 말고, 즐거운 조선회화 감상 시간으로 활용해 주었으면 한다. 아직까지는 드라마를 보는 재미와 한국화에 대해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동시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바람이지만, 드라마가 '월하정인(月下情人)'에게도 멋진 이야기 한 편을 담아주었으면 한다. 수줍어하며 함께 있는 두 연인의 자태가 애틋하면서도 어여쁘기 때문이다. 아직 소설은 읽지 않았기에 '월하정인'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살며시 미소 지을 수 있게 해 줄 이야기를 '월하정인'에게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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