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3650
코로나19, 이쯤하면 언론이 악당
[게릴라칼럼] 오보 이어지며 정치적 의도 의심... 언론개혁 목소리 더 커질 듯
20.03.19 20:07 l 최종 업데이트 20.03.19 20:07 l 하성태(woodyh)
▲ 한국경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자화자찬했다며 작성한 < BBC 출연해 ‘한국식 코로나 대응’ 자화자찬한 강경화 >를 자사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서 모두 삭제했다. ⓒ 한국경제 갈무리
"강 장관의 인터뷰와 관련해 국내 여론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아직 한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진정된 것이 아닌데 벌써부터 정부가 자화자찬에 나서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실제 질병 확산 방지는 의료진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가 격리를 통해 이뤄졌는데 정부가 한 일도 없이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 <BBC 출연해 '한국식 코로나 대응' 자화자찬한 강경화>, 3월 15일 <한국경제> 기사 중
15일(현지 시각) 영국 BBC <앤드루 마 쇼>에 출연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화상 인터뷰에 대해 "자화자찬"이라고 공박한 이 기사는 현재 한국경제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
강 장관은 BBC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의 코로나 대처 현황에 대해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며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검사한 것이 효과가 컸다", "한국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직후 외신과 해외 누리꾼 사이에서 강 장관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줄을 이었고, 우리 언론은 이러한 반응을 소개했다.
<한국경제> 기사 또한 강 장관의 발언을 소개한 뒤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프랑스 AFP 통신 등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호평한 사례를 열거했다. 하지만 제목으로 뽑은 '자화자찬'의 근거는 앞서 소개한 한 누리꾼의 주장뿐이었다.
'자화자찬'이라 공박하기엔 근거 자체가 부실했다. 강 장관의 인터뷰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마저 엿보였다. 결국 기사 자체를 삭제한 <한국경제>는 이에 대해 어떤 언급이나 사과도 없었다. <한국경제> 사례 하나면 다행이다. 최근 코로나19 보도를 둘러싼 국내 언론의 '기사 삭제'가 잇따르고 있다. '오보'에 이은 사과와 정정보도 또한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왜 이러나를 넘어 정말 이래도 될까를 근심해야 할 지경이다.
반복되는 기사 삭제
▲ YTN은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원이 심정지 상태인 김씨를 병원에 이송했다고 발언함에 따라 사망 상태로 이해하고 기사를 작성한 것"이라면서 김씨가 숨진 것이 아니라 위중한 상태임을 확인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 YTN 갈무리
13일 오후 YTN은 <"마스크 빨리 달라" 대기 줄에 '버럭'... 70대 쓰러져 숨져>란 단독보도를 삭제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던 70대 남성이 돌연 쓰러져 사망했다는 이 보도는 몇 시간 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첫 보도 3시간여 뒤, YTN은 <"마스크 빨리 달라" 항의하던 70대 쓰러져 중태>란 후속보도에서 사과와 함께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YTN은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원이 심정지 상태인 김씨를 병원에 이송했다고 발언함에 따라 사망 상태로 이해하고 기사를 작성한 것"이라며 "하지만 병원 응급실에 추후 확인 결과 김씨가 숨진 것이 아니라 위중한 상태임을 확인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YTN 첫 보도 후 <뉴스1>이 이를 따라 보도했고,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디스패치> 등 사이트에는 <뉴스1> 보도가 게재됐다. <한국경제>는 <마스크 사려고 줄 서던 70대 남성 쓰러져 사망 사고>란 자사 기사를 게재했다가 삭제했다. 코로나19 속보 경쟁에 나선 언론들이 한 사람의 목숨을 들었다 놨다 하는 광경이었다.
한편 두 번이나 오보를 수정한 끝에 결국 기사를 삭제한 언론도 있었다. 지난 5일 <'우린 KF94 보냈는데'... 중국이 보내온 마스크는?'>란 기사를 단독보도한 <머니투데이>다. 중국 웨이하이시가 인천시에 보낸 마스크가 불량이었다는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시의 반박과 독자들의 비난이 잇따르자 <머니투데이>는 결국 두 번의 수정 끝에 기사를 삭제했다. 다음은 <머니투데이>의 7일 '알림' 기사의 일부다.
"인천시에 확인한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마스크는 '입체방호 마스크'로 인천시가 받은 일회용 일반 마스크와 달랐습니다. 이 일반 마스크는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기사를 수정했으나 논란이 계속돼 인천시와 협의 후 기사를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사실과 다른 기사로 혼란을 드린 점, 독자 여러분과 인천시에 사과드립니다."
▲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 "감염병을 대하는 언론의 기억상실 화법" 편 ⓒ KBS
<조선일보>도 빠질 순 없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코로나 난리통에... 조합원 교육한다고 딸기밭에 간 서울대병원 노조> 기사가 문제였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민주노총 산하인 서울대병원 노조가 우한 코로나 사태 와중에 노조 교육이라며 단체 휴가를 내고 딸기 따기 체험을 가 논란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보도 당일 서울대병원 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원래 1분기 진행될 조합원 교육은 딸기농장체험으로 예정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진작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었으며, 이로 인해 딸기농장 예약도 모두 취소된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노조는 "어쩌면 조선일보는 전화 한 통이면 되었을, 사실관계 확인조차 거치지 않고 그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검토해야 할 데스크조차 이를 유포한 것"이라며 "언론중재위원회 정정요청 및 손해배상 신청 등을 할 예정이며, 조선일보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강력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온라인과 포털에서 삭제한 뒤 11일자 지면에 '바로잡습니다'란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딸기농장 관계자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선일보> 측에서 전화 확인한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희한테는 연락 온 것도 없었고요. 저도 얘기 듣고 좀 화가 났거든요. 다녀가신 적이 없거든요. 입금한 내역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기사를 낼 수가 있는지 황당하더라고요."
어이없는 사과, 엿보이는 의도
"또한 그린 의원의 발언을 전후 맥락을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해 한국형 진단키트의 신뢰성 논란을 초래했습니다. 본보는 첫 보도 이후 청와대와 당국의 해명 및 관련 업계 입장을 기사에 반영했지만, 언론으로서 사실확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에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기사 수정 과정에서 주된 작성자가 아닌 기자는 기사의 바이라인에서 빠졌으며, 해당 기자는 기사가 작성되는지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 <독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17일 <한국일보> 기사 중
청와대와 방역당국, 유관 학회가 일제히 반박한 기사도 있었다. 위와 같이 "해당 (과학전문)기자가 기사가 작성되는지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납득하기 힘든 사과문을 게재한 <한국일보>의 지난 15일 <미국 FDA "한국 코로나 키트, 비상용으로도 적절치 않다> 기사였다.
발단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 하원 관리개혁위원회 청문회 발언이었다. <한국일보>가 미국 NBC 뉴스의 15일 보도를 인용, 이 청문회에서 마크 그린(테네시·공화) 의원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질의한 발언을 전하며 미 FDA(식품의약국)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 한국일보는 <미국 FDA "한국 코로나 키트, 비상용으로도 적절치 않다 > 보도에 대해 논란이 일자 "그린 의원의 발언을 전후 맥락을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해 한국형 진단키트의 신뢰성 논란을 초래했습니다"라며 사과했다. ⓒ 한국일보
보도된 전체 맥락을 놓고 보면 '미국이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읽히기 충분했다. 앞서 13일 의학전문기자 출신인 홍혜걸씨가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제기한 내용 그대로였다.
<한국일보>의 보도 직후, 공식 반박은 물론 소셜 미디어상에서도 팩트 체크가 쏟아졌다. 즉, 미국(항체검사법)과 한국(유전자검출검사법)은 엄연히 다른 검사법을 채택 중이고, 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유전자검출검사법을 코로나19 환자 진단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
보도 당일 오후 10시께 <한국일보>는 기사 제목을 <한국 진단키트 신뢰성 논란, 미 의원 "적절치 않다" vs 질본 "WHO 인정한 진단법">이라 수정하고 질병관리본부 측 해명을 수정 기사에 반영했지만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 리 만무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각각 반박 입장문을 냈다. 특히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17일 6개 유관단체가 코로나19 진단 검사 전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COVID-19 (코로나19) 진단검사에 대한 담화문'을 재차 발표하기도 했다. 그 사이 <한국일보>를 향해 '코로나19와 싸워야 할 정부와 방역당국이 왜곡 기사와도 싸워야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었다.
악당이 되지 않으려면
대표적 사례만 꼽아도 이 정도다. 명백히 사과하거나 사과를 인정하듯 삭제한 기사 외에도 어이없는 사실 왜곡 보도, 불안과 혐오 조장 보도, 정파적 시각에 의한 '오보 아닌 오보' 등도 부지기수였다. 이에 대해 조수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는 이렇게 평했다.
"이런 기사들이 계속되면서 오보가 의도적이지 않으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점들이 생기는 거지요. 이미지 조작도 있었고요."
- <코로나를 둘러싼 의도적인 오보들>, 14일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 YTN> 중에서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정확한 정보 전달 대신 소모적 논쟁을 택한 언론 보도>(653호) 기사는 소셜 미디어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시사IN>이 '우한 폐렴 명칭(고수)', '중국 봉쇄론', '비선 전문가' 보도 등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인터넷 매체의 '보도 참사'에 가까운 기사들을 총망라하며 기사 제목과 언론사 명을 그래픽 뉴스로 박제해 놨기 때문이다.
오보와는 양상이 다르지만, 감염병 보도에서 우리 언론이 즐겨 쓴 '나쁜 표현'을 한 번쯤 접해 봤을 것이다. 바로 "뚫렸다"란 표현 말이다. 한국기자협회가 마련한 재난보도준칙이나 코로나19 보도 준칙을 스스로 깨뜨리는 듯한 이 표현을 지적한 이가 있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16일 본인의 페이스북과 '이상민의 틀린뉴스 바로잡기'(<마스크 매점매석보다 더 나쁜 언론의 코로나19 보도>)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코로나+뚫렸다'란 단어가 함께 들어간 기사들의 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주요 포털에서 지난 한 달간 '코로나+뚫렸다'로 검색된 기사량은 총 1300건이 넘었다. 개별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양도 상당했다.
"중앙 일간지는 신천지 비판과 정부비판으로 물 만난 국민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가 '탑티어'(Top-Tier)를 형성한다. 한국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그 뒤를 잇는다. 11건의 경향신문도 반성하자. 내일신문과 한겨레는 칭찬할 만하고(중략).
인터넷 언론은 편차가 심하다. 노컷뉴스, 뉴데일리는 건수가 많다. 다만 민중의소리,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뉴스톱은 단 한 건도 없다. (KBS, 미디어오늘은 검색되는 기사가 있지만 모두 내용상 그런 보도를 하지 말자는 기사다) 그래도 진보적 성향의 인터넷 매체는 KBS와 더불어 단 한 건도 뚫렸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기레기'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세월호 참사 보도나 역시나 재난보도준칙이 강조됐던 메르스 사태 당시 보도 양상보다 훨씬 더 악화된 양상이다. 속보 경쟁에 따른 부실한 팩트 체크, "뚫렸다"와 같이 공포를 조장하는 선정적 보도, '중국인 혐오' 등과 같은 혐오성 보도에 더해 4.15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의 정부 대응을 어떻게든 실책과 실패로 연결 지으려는 정파적 보도가 난무 중이다.
오죽했으면,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 한국 언론뿐", "외신이 민족정론지"란 비판 여론이 공감을 얻었을까. 특히 최근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면서, 외신이나 각국 정부가 공히 인정하고서야 못 이기는 듯 정부 비난을 멈춘 우리 언론의 보도 행태는 '한국 언론이 맞느냐'는 비판을 받아 마땅해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를 예견한 듯한 영화 <컨테이젼>의 주인공 중 한 명은 '개나리꽃'이 바이러스 치료제라는 가짜뉴스를 퍼트린 '음모론자' 프리랜서 기자다. <컨테이젼>은 전 세계적인 전염병 사태 와중에 이 기자가 '떼돈'을 번 것으로 그리면서, 음모론이나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미디어나 언론인이 악당 중 하나란 결론을 낸다.
영화 속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 기자는 전염병이 가라앉은 이후 결국 경찰에 체포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돈과 제 이익만 좇는 언론인들이 사태 해결을 막는 악당이라는 결말이었다. 부디 우리 언론 종사자들이 그런 악당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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