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afe.daum.net/alhc/51q2/1721?docid=183883883

고구려에서의 근친혼에 대해서

고구려의 혼인관련 기록은 많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겨우 왕 중심의 혼인관계일 뿐입니다. 일반 개인이 혼인한 사례에 대해서는 온달과 평강공주 정도, 전설로 전해지는 것을 포함하면 을밀과 안학공주 정도겠지만, 모두 다 왕실과 관계가 있는 것 뿐입니다. 

8대 신대왕이 왕위에 오를 때 도움을 주었던 명림답부의 연나부는 이후 9대 고국천왕과 10대 산상왕, 그리고 12대 중천왕, 13대 서천왕의 왕비를 연속으로 배출하면서 확실한 고구려의 왕비족으로 등장합니다. (11대 동천왕과 14대 봉상왕의 경우도 연나부에서 왕비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기록이 없읍니다) 

따라서 왕실내에 족내혼을 이것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 25대 평원왕의 딸인 평강공주의 경우 상부 고씨와 혼인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후기에 고씨는 고밀-고문의 집안의 사례에서 보듯 왕실에서 국가에 공을 세운 집안에서 성씨를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왕실과 같은 성씨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평강공주도 족내혼의 대상자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구려의 결혼풍습은 매우 자연스러워서 동맹행사 등에서 눈 맞으면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민간에 족내혼이란 표현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본래 족내혼은 혈통의 순수성을 통해 한 집단의 영속적인 이익을 창출하자는 목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 집단이 커지고 나면, 대개는 지배 집단의 풍습으로만 남게 됩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지배 집단의 폭이 상당히 넓었습니다. (왕실은 존재하되, 국상, 대대로 등의 신하들의 최고 지위는 고씨가 아닌 다른 집안에서 차지할 수 있었다. 신라의 경우에는 최고 벼슬조차 왕실 관련 집단이 장악했다.) 

따라서 족내혼 보다는 귀족들간에 일종의 혼인이 가능한 집단을 형성하는 계급혼(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지금 적당한 용어가 생각이 안나서 임시로 씀) 정도가 있었다고는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재벌과 정치, 관료 집단에서 폐쇄적인 혼맥이 존재하고 있듯이) 

다만, 형사취수제의 풍습이 오늘날과 다른데, 형이 죽은 후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풍습은 족내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자료 때문에 고구려의 족내혼 문제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 있는 자료로는 족내혼이 있었다고 밝힐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이점은 신라와는 아주 다른 점입니다. 

족내혼이 같은 혈통을 가진 사촌내지는 8촌 이내의 혈족간의 결혼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고구려의 경우는 이러한 족내혼에서 벗어난 혼맥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사실에 가깝지 않는가 추정을 해볼 수는 있겠습니다. 물론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단지 추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족내혼이 있었다고 보는 것보다는 훨씬 없었다는 족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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