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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산성
반월산성 위치
반월산성 원경(직두리에서)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산 5-1번지 일대, 해발 283.5m의 청성산(靑城山) 정상부에 위치한다. 반월산성은 백제에 의해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사이에 처음 축성되었고 이후 고구려와 신라에 의해 주로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원래 포천은 예성강 중·상류나 원산만 일대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며, 아차산과도 직접 연결되는 곳이다. 이와 같이 그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반월산성은 고대 삼국의 세력 판도에 따라 조영주체가 여러 차례 변화를 맞이하는 등 당시 고대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성의 구조는 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1,112m이며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긴 반달 모양을 취하고 있다. 문지3개소와 치성5개소, 장대지, 제사유적을 비롯하여 다수의 건물지가 성내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사용주체에 따라 여러 차례 증·개축이 이루어졌는데, 지형 여건에 맞추어 편축과 협축(夾築)의 두 가지 방식이 모두 사용되었다. 완만한 주 능선에 조성한 남문 및 서문의 경우, 통행의 편리를 도모하고 취약한 방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성문 옆에 치성을 유기적으로 설치한 것이 특징적이다.
한편 고구려 유구는 주로 남벽에서 조사된 치성시설과 일부 주거의 흔적에서 확인된다. 일종의 적대(敵臺)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서치성(西雉城)은 고구려가 출입시설로 사용한 남문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했던 것으로, 기저부에 장대석을 두고 상부로 갈수록 작은 석재를 들여쌓은 전형적인 고구려의 치성 축조방식을 따르고 있다.
고구려가 반월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점은 6세기 후반부터 시작되는 한강 이북지역에 대한 신라의 압박과 관련하여 깊고, 고구려 대(對) 신라 방어체계 속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출토유물로는 성 안에서 수습된「馬忽受解空口單」銘 기와가 대표적인데,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 포천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주로 동이와 파수 등 생활용 토기와 연질의 적갈색 기와 등 고구려유물이 수습되었고, 6세기 중반을 중심연대로 하고 있다. 수량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또한 출토범위가 서치성과 헬기장 주변 건물지를 중심으로 편중된 것으로 보아 고구려는 서치성 주변만 보수하고 소규모 주거지를 설치한 후 일종의 보루처럼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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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성 전경 | 남문지(밖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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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벽 1,2,3차 외벽 | 내성 외벽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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