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34421

아차산성[阿且山城]

크기(높이, 길이, 둘레, 깊이) 둘레 약 1,000m
규모(면적) 10만 3375㎡
소재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산16-46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234호
문화재 지정일 1973년 5월 25일

 아차산성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사적 제234호. 지정면적 103,375㎡, 둘레 약 1,000m. 아차산(峨嵯山)의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쌓은 테뫼식산성으로 현재 동·서·남쪽에 문지(門址)와 수구(水口)터만 있을 뿐, 다른 방어시설은 확인할 수 없다.

일명 아단성(阿旦城) 또는 아차산성(阿嵯山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으로도 불린다. 축성연대는 백제가 광주(廣州)에 도읍하였을 때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여 쌓았다는 견해가 있다.

산성은 표고 200m의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동남의 한강변 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부분을 둘러쌓았는데 규모가 매우 커 성안에 작은 계곡이 있다.

성벽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삭토법(削土法)에 의하여 대체의 형태를 축조한 뒤 그 윗부분을 따라 돌아가면서 낮은 석루(石壘)를 구축하였던 것 같다. 현재는 석축 부분이 무너져 토석혼축(土石混築)과 같은 외형을 이루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밖에서 보면 평균 10m 정도이지만 그보다 더 높은 곳도 있다. 내부에서는 1∼2m 내외인데 수구 부근은 평탄해져서 내벽은 남아 있지 않다. 성 밖으로 강변 나루터에 이르기까지는 좌우 양편의 지형을 이용, 흙을 깎아 내어 성벽을 대신하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나, 지금은 주택들이 들어서서 그 원형을 잃게 되었다.

특히, 이 산성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 사적 제11호)과 함께 백제 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도하처(渡河處)를 수비하기 위하여 쌓은 중요한 성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시대의 유명한 아단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한편, 백제의 수도 한산(漢山)이 고구려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이 성 아래에서 피살되었으며,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온달(溫達)이 죽령 이북의 실지 회복을 위하여 출정, 신라군과 싸우다가 역시 이 성 아래에서 전사하였다는 역사적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의 성곽』(반영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8)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 -사적편(史蹟篇)-』(문화재관리국, 1976)
「전도이전(奠都以前)의 서울지방(地方)」(장도빈, 『향토서울』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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