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영상 왜곡했다는 경찰·새누리 그래서, CCTV 127시간38분 다 봤더니
[녹취록 전문분석②] 12월 15일 오후~16일, 경찰의 은폐 전말
13.08.01 20:09 l 최종 업데이트 13.08.01 21:14 l 이주연(ld84)
"검찰에서 내용을 축약한 것입니다."
지난 7월 25일,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특위 경찰청 기관 보고에서 '수사결론 짜맞추기'에 나선 분석관들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성한 경찰청장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영상이 축약돼서 내용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검찰 수사 발표 이후에 (동영상을) 봤는데 다 같지 않았다"며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새누리당 소속 국조 특위 위원들은 경찰 변호인을 자처했다. 윤재옥 위원은 "CCTV를 보니 검찰 수사 발표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장우 위원은 "검찰이 필요한 부분만 쓰고 중간 중간 다 잘라 먹었다"고 말했다.
▲ 이성한 경찰청장이 지난 7월 25일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경찰청 관계자의 보고를 받으며 마이크 방향을 돌리고 있다. ⓒ 남소연
그래서, 살펴봤다. <오마이뉴스>는 경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한 지난해 12월 14일 오전부터 16일 밤까지 3일에 걸쳐 녹화된 서울경찰청 디지털 분석실 CCTV 동영상(CD 72장, 127시간 38분 분량)에 대한 녹취록 전문(340쪽 분량)을 모두 읽었다(해당 녹취록은 1일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개한 것).
이에, 경찰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증거를 발견하고도 이를 은폐·축소 하려한 정황이 담긴 12월 15일 오후 이후의 기록들을 정리해봤다. 최종 결론은,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15일 오후] 127시간의 기록... "왜곡됐다"는 경찰, 진실은?
2012년 12월 15일 오후 5시 30분, 경찰 고위 간부로 추정되는 남성은 분석관에게 "언제쯤 끝나? 내일 오후나 늦은 시간에 국민들에게 뭘 발표할 수 있나?"라며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그 남성이 자리를 뜬 후 한 여성 분석관이 "실체적 진실을 찾아서…"라고 말하자 다른 분석관은 "실체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며 말을 잘랐다. 여성 분석관은 "그럼 돈이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15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중간 수사 결과에 첨부할 '가짜' 분석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오후 9시에 이르자 분석관들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한 분석관이 "(내일) 오전까지는 끝내서 예상치도 다 내야 한다, 빨리 끝내야 한다"며 닥달했고, 다른 분석관은 "토론회도 시작되고…"라며 '빠른 결과'를 내야 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16일 오전 8시, 이틀 밤을 새가며 수집한 자료들을 파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분석관들 사이에서는 "무조건 파쇄하겠다" "파란 박스에 넣어 봉인한 후 2~3달 후 세상에 별일 없으면 뜯자"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곧 "1~2달이면 우리가 불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표출됐다. 이에 "2~3달은 보관하고 (불려 가면) 기억 안 난다고 하자"는 의견이 튀어나왔다.
한 분석관이 상황을 정리했다.
"국정감사 연말에 한다, 무조건 날려버려."
[16일] 경찰 수사결과 발표문 가안 작성 "삭제됐다고 하면..."
▲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7월 29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찰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지난해 12월 16일 새벽 폐쇄회로(CCTV) 영상을 추가로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2012년 12월 16일 오전 9시, 분석관들끼리 경찰 수사 발표문 가안 작성에 돌입했다. 문구 작성에는 "최대한 명확하면서도 모호해야 한다"는 모순된 주문이 이어졌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주로 활동한 4개 누리집을 확인했음에도 분석관은 "수사발표 때, 아예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오늘의 유머에 이 사람(국정원 여직원)이 자주 들락날락거렸다고 발표하는 순간, 국정원에서 오유를 사찰하고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발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였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분석관들은 "찾아낸 닉네임이나 그걸 통해 검색된 글들은 봤는데, 삭제 정황이 있다" "자료 삭제가 시도되었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주고 받았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정황"이라는 한 분석관의 말에 다른 분석관은 "댓글을 달았거나 글을 삭제한 게 중점 사안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일단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위쪽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황'을 강조한 분석관은 "삭제를 얘기하면 '삭제했네'로 된다, '같습니다' 그런 건 안 된다"고 일축했다.
결국 "발표자가 '삭제'를 얘기한다는 거 자체가 예민하다, 지금은 아무 언급을 안 하고 이게 진짜로 덮어져서… 어떤 것에 의해 삭제 됐든 얘가(국정원 여직원) 진짜로 삭제했든 그건 아직까지는 잘 모르는 것"이라며 발을 빼게 된다. 이에 'delete(삭제) 기록 발견'이라고 정리하려 했으나 16일 밤에 발표된 중간 수사결과에는 이 내용마저 포함되지 않았다.
중간수사발표가 6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분석관들의 입장은 명확해진다. 한 분석관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렇게 써가려 그러거든요"라고 말했다.
오후 8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분석관들은 "12시가 넘어가면 월요일이 된다" "주말에 하는 거랑 월요일에 하는 거랑은… 수요일(19일) 대선이면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다"며 발표를 서두르는 데 대한 '이유'를 댔다.
경찰 발표를 1시간 30여 분 앞둔 오후 9시 40분 한 분석관은 "혹시 이게 다 문제될지 모르잖아, 떼고 지우라는 거 아냐?"라고 말했고, 또 다른 분석관도 "했던 것들을 다 갈아버리라"고 말한다. 한 분석관이 다시 물었다.
"싹 다?"
100여 쪽에 달한 분석관들의 분석 출력물들은 이날 밤 모두 폐기됐다.
결국, 127시간 동안 분석한 내용은 사라진 채 16일 저녁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오후 11시, 경찰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뒷 이야기] 증거물 하나하나에 환호했던 분석관들, 그 끝은...
▲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분석관들의 조사 시작 당시 모습은, 그 끝과는 사뭇 달랐다. 증거를 발견하는 데 촉각을 세웠고, 증거물 하나 하나에 환호했다.
2012년 12월 15일 오전 4시, 분석을 시작한 지 8시간도 지나지 않아 닉네임 등이 발견되자 분석관들은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상황을 축하했다. "고기 사달라"는 요청도 이어졌다. "좋은 걸 찾았다, 파이팅" 등 서로를 격려하는 대화도 오갔다. 당시 '(댓글을 단) 증거가 없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한 분석관은 이를 언급하며 "증거가 없다? 없지만 더 큰 게 있다"며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국정원 여직원이 사용한 아이디 '숲속의 참치'가 올린 댓글을 확인하던 한 분석관은 급히 저녁 주문을 전달했다.
"참치김밥 시켜, 참치를 아작을…"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분석관들은 중압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15일 오후, 한 분석관은 "위에서 누르는 중압감 때문에 사무실을 떠나가면 불안하다, 차라리 뒤에서 서있을까요?"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가 나와야 할텐데" "아 나 죽고싶다"는 등의 얘기도 나왔다. 한 분석관은 "이 정도 되니까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어, 그건 없는 거지, 그 말이 맞는 거지, (중략) 외부 사람들은 극단적이야, 했다고 알고 있겠죠, 그 시선이 무섭다"고 토로했다.
'댓글' 다는 국정원 업무의 고단함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한 여성 분석관은 "(국정원) 업무가 되게 재미없었을 거 같지 않냐, 만날 인터넷 접속해서 게시글… 혼자 가서는"이라며 "게시글 올리고, 자기가 또 자기 꺼 댓글 달고 추천하고…"라고 국정원 직원을 동정했다. 그러자 다른 남자 분석관들 사이에서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오타쿠 기질 있는 사람한테는 최고"라며 의견이 나뉘었다.
그들 자신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한 분석관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공정하게 냉정하게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거, 세상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다른 분석관은 답했다.
"절대 안 믿어 주지. 뭘 해도 안 믿어. 너 같으면 믿겠니."
(*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실 CCTV 동영상 127시간 38분, 총 340쪽 분량의 녹취록은 아래 첨부파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소 많은 분량이지만 <오마이뉴스>는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전문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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