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출처가 언론?..국정원 이상한 수사기법 논란
피의자신문서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 붙여 법조계 "피의사실 공표 회피책", 진보당 "불법 증거 방증"
연합뉴스 | 입력 2013.09.22 10:39 | 수정 2013.09.22 10:59

피의자신문서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 붙여
법조계 "피의사실 공표 회피책", 진보당 "불법 증거 방증"

(수원=연합뉴스) 최해민 최종호 기자 =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 피의자는 RO조직원이 맞지요?"

내란음모 사건을 수사 중인 국가정보원의 '이상한' 수사기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중요증거인 녹취록의 출처가 마치 '언론'인 것처럼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질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선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우려, 언론에 책임을 돌리는 '술수'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내란음모 사건 공동 변호인단은 22일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일부 피의자에게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질의했다"고 밝혔다. 질의내용은 주로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 피의자는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원이 맞지요?', '언론에 알려진 녹취록에 따르면 RO 비밀회합에서 ○○발언을 한 게 사실이지요?'라는 식이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증거에 대한 출처를 거론하면서 질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구나 녹취록의 존재 여부나 그 내용이 수사 주체인 국정원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국정원이 녹취록의 출처로 '언론'을 지목한 것에 대해선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국정원이 추후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언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녹취록은 보도된 시점이나 내용으로 볼 때 수사주체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며 "그런데도 국정원이 굳이 필요도 없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분명 속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측건대 진보진영을 통해 추후 불거질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 선을 긋기 위한 술수가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공안당국 한 관계자도 "공식적인 수사결과 발표 전 녹취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만큼 국정원 입장에선 피의사실 공표 등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수사기법을 사용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진보당 측은 아예 녹취록에 대한 증거능력 자체를 의심한다. 공동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녹취록을 확보했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받기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수식어를 붙이고 조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보당 관계자도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이제와 언론에 책임을 덮어 씌우는 것"이라며 "피의자신문조서에 '언론에 나온 녹취록'이라고 기재돼 있으면 법정에서 정황증거라도 인정받을 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녹취록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등 수사 관련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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