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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18일, 광주 금남로의 MBC 중계차  

[기자수첩]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승인 2020.05.24 17:08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오늘은 특별히 광주시민 여러분들께 인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시선집중 5·18 30주년 특집, 오늘 저희는 MBC라디오 이동 스튜디오 ‘알라딘’을 타고 이곳 광주에 내려와 있습니다. 옛 도청건물이 보이는 금남로에서 오늘 생방송으로 광주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방송하겠습니다.” 


2010년 5월 18일, 광주는 우울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 이명박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기념식에선 30년간 불려오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제외됐다. 5·18 유가족 대표의 ‘5·18 민주화운동 경과보고’ 순서도 없애버렸다. 심지어 보훈처는 이날 행사에서 ‘방아타령’을 내보낸다고 밝혔다. 잔칫집에 어울리는 민요였다. 


강한 항의 여론으로 ‘방아타령’은 다른 곡으로 대체되었지만, 5·18 주요 단체들이 불참하며 30주년 기념식은 그 어느 때보다 우울했다. 주요 방송은 30주년에 걸맞은 편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17일 옛 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전야제도 비가 흠뻑 내렸다. 이런 가운데 당시 청취율 1위의 MBC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광주로 향했다.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불렸던 80년, 막 피어나던 대한민국 민주화의 꽃은 수많은 광주시민들의 피와 함께 시들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그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 광주에 다시 모였습니다.”(손석희)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말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공영방송 사찰·탄압 문건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에 따르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없어져야 할 프로그램이었다. “안팎의 지탄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파 논리에 경도된 편파 보도로 정부 흠집 내기”, “출근길 민심 호도”라는 대목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적개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제작진도 정부의 ‘감정’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시선집중’은 광주로 향했다. 홀대받고, 고립되어 있던 광주에 대한 ‘예의’였다. 제작진은 전야제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한편 5·18 당시 광주에서 싸웠던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광주를 잊지 않겠노라며, 청취자들을 위로했다. 정부 입장에선 또 한 번 “출근길 민심을 호도”한 순간이었다. 


“비 오는 5·18 전야. 80년 당시에 아드님이 총탄에 맞아서 큰 부상을 입었다는 올해 여든셋 되신 박창식 할아버지. 택시 운전하시면서 차량시위에 가담하셨던 예순다섯 되신 윤 모씨.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를 두고, 남편을 찾아서 바로 이곳, 여기 금남로를 헤매야 했다는 아주머니. 이분들이 입을 모아 탄식하셨던 것이 5.18이 너무 빨리 잊혀지는 것이 아니냐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손석희)


이날 방송에선 80년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했던’ 메시지가 음성으로 전해지며 청취자들의 분노를 더했다. “지금 군이 광주 시내 폭도들을 소탕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침투 간첩에게 알린다. 너희들의 색출은 시간문제다.” “시민은 놀라지 마십쇼. 시민은 거리로 나오지 마십쇼.” “전남도 계엄군에서 알립니다. 6시 현재 작전 결과입니다. 민간인 피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했던 보수 야당 대표까지 모두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장면이었다.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보도를 쏟아낸 방송사들을 보며 문득, 2010년 5월18일 오전 광주 금남로에 있었던 MBC 중계차가 떠올랐다. 당시 ‘시선집중’ 제작진처럼, 험난했던 시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 덕분에 우리는 ‘광주 정신’을 계승하며 오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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