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7257

정도전 영웅화, 이런 건 왜곡이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 드라마 <정도전>, 첫 번째 이야기
14.01.13 11:54 l 최종 업데이트 14.01.13 12:11 l 김종성(qqqkim2000)

▲  드라마 <정도전>. ⓒ KBS

천재적인 건국 설계사 정도전(1342~1398년)을 다룬 KBS <정도전>이 지난 4일 첫 방송을 탔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정도전 영웅화'란 목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정도전(조재현 분)의 삶을 극적으로 포장할 목적으로 그의 초기 관직 생활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다. 그가 젊은 시절인 공민왕(김명수 분) 때부터 숱한 핍박을 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 성향의 청년 관료인 드라마 속의 정도전은 공민왕 때 항상 찬밥 신세였다. 번번이 승진 심사에서 탈락한 탓에 7품 벼슬에 머물러 있는데도, 그는 출세에 전혀 개의치 않고 '무모한' 일만 벌인다. 그는 보수파 실세인 이인임(박영규 분)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린다. 상소의 내용은 이인임을 내쳐달라는 것. 

이 와중에 정도전이 명나라 사신의 비위를 건드려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제야 정도전이란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공민왕은 은밀히 그를 만나러 감옥으로 간다. 이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밀약을 맺는다. 밀약의 내용은 이인임을 실각시키고 국정을 일신하자는 것.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이인임은 역공을 준비한다. 때마침 공민왕의 부인인 익비가 왕의 동성애 파트너이자 보좌관인 홍륜의 아이를 임신하자, 공민왕은 환관(내시) 최만생에게 홍륜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이를 파악한 이인임은 홍륜이 공민왕을 암살하도록 유도한 뒤, 홍륜을 대역죄인으로 몰아 참수형에 처한다. 이를 계기로 이인임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자, 정도전과 공민왕의 개혁 밀약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드라마 <정도전>의 초반부 줄거리를 요약하면, 정도전이 공민왕 때부터 고난의 길을 걷다가 공민왕이 죽기 직전에 왕의 신임을 받았지만 며칠도 안 돼서 왕이 죽는 바람에 정도전의 개혁 열망이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그럴싸하지만, 실제 역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물론 청년 정도전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외할머니가 노비 출신 첩이라는 이유로 혈통상의 콤플렉스를 가졌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으로 고려시대를 봐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에는 첩과 첩의 자식인 서얼을 심하게 차별했지만, 고려시대에는 그렇게까지 차별하지는 않았다. 

첩과 서얼을 차별한 것은 일부일처제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조선시대 법제의 산물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일부다처가 허용됐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정도전이 스물한 살에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일반적인 승진 코스를 밟았다는 사실은, 서얼 혈통이 그의 앞길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우울한 청년기 보낸 정도전? 사실은...


▲  드라마 <정도전>. ⓒ KBS

사실 정도전에게는 그런 약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는 지금의 법무장관에 해당하는 형부상서 정운경의 아들이었다. 또 그는 당시의 최고 학자인 이색의 제자였다. 정도전·정몽주·권근을 비롯한 이색의 제자들은 신진사대부(개혁 성향의 신진관료 그룹)의 주체세력으로 고려 사회의 신진 엘리트들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정도전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관료였다. 

더구나 정도전은 출중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사회에서는 신분 못지않게 능력도 강조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려나 조선왕조는 상당 정도는 능력제 사회였다. 고려나 조선은 대한민국에 비하면 신분제 사회이지만,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분명히 능력제 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정도전의 혈통 못지않게 능력에도 주목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은 정도전의 혈통 콤플렉스를 상당 정도 상쇄했다. 물론 첩의 피가 몸에 흐른다는 약점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생에 지장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 청년 정도전의 행적을 지나치게 우울하게 묘사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분명히 배치된다. 물론 청년 시절에 그가 남긴 시 속에 우울한 장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지 그가 처한 객관적 환경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잘 나가는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가 내면적인 아픔을 간직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또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정도전이 공민왕 치하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공민왕이 죽기 직전에 비로소 왕의 신임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공민왕이 죽기 3년 전인 1371년부터 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고려사> '정도전 열전'에서는 "왕이 그를 매우 총애했다"고 기술했다. 

정도전이 왕의 신임을 받은 것은 신돈의 죽음을 종묘에 고하는 의식을 잘 준비했기 때문이다. 공민왕은 신돈을 앞세워 구세력을 척결하다가 신돈이 왕의 권력을 능가하기 직전에 신돈을 전격 제거했다. 신돈을 실컷 이용하다가 죽였으니 공민왕은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돈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의식을 잘 준비한 정도전이 공민왕에게는 고맙고 대견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정도전의 나이는 30세였다. 젊은 관료가 나이 서른에 왕의 신임을 받는다면, 이것은 주변 관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다. 

공민왕 시대의 정도전, 그렇게 비참하지 않았다


▲  공민왕(김명수 분). ⓒ KBS

서른 살 때부터 3년간 정도전은 공민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공민왕 치하에서 정4품 벼슬까지 올라갔다. 드라마에서는 그가 그때까지 7품 벼슬밖에 못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꽤 괜찮은 벼슬까지 승진했다. 

따라서 드라마 <정도전>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공민왕 시대의 정도전은 꽤 잘 나가는 청년 관료였다. 그룹 2NE1의 노래 <내가 제일 잘 나가>처럼 "나 정도전이 제일 잘 나가!"라고 자랑할 수는 없었지만, "나도 꽤 잘 나가"라고 말할 수는 있었다. 

공민왕 시대에 정도전이 아무런 아픔도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스물다섯 살 때인 1366년 초반에 부친상을 당한 데 이어 11개월 만에 모친상마저 겪었다. 삼년상 중에 삼년상을 또 당했으니, 그의 관직 생활은 '올스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약 5년간 물러났다가 1371년에야 관직에 복귀했다. 그렇게 복귀한 뒤에 신돈의 처형에 관한 의식을 잘 준비해서 공민왕의 신임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민왕 시대에 정도전이 겪은 최대의 아픔이라면, 삼년상을 연달아 당한 것과 약 5년간 관직을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가 보수파에 맞서다가 왕따를 당했다고 묘사한 드라마의 내용은 이런 실제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다.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주인공의 삶을 훨씬 더 영웅적으로 묘사할 목적으로 그가 이미 공민왕 시대 때부터 핍박과 고난을 겪었던 것처럼 묘사했지만, 적어도 공민왕 시대의 정도전은 그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다. 

공민왕은 상당히 개혁적인 군주인데다가 정도전을 수년간 총애했기 때문에 정도전이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아픔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정도전의 고난은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 때에 생긴 것이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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