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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가 (達賈)
(? ~ 292)

1 개요

고구려의 왕족이자 명장.

고구려의 왕인 서천왕의 아우이자 봉상왕의 숙부로, 고구려를 침략해와 백성들을 괴롭힌 숙신족을 무찌른 전쟁 영웅.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명장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본명인 '달가'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서천왕으로부터 받은 벼슬인 '안국군(安國君)'이라는 이름으로도 언급되곤 한다.

2 생애 

2.1 숙신족 정벌 

280년 10월, 숙신족(광개토왕 비문에는 식신이라 나옴 식신?)이 고구려를 침략해와 변경지방의 백성들을 해치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고심하던 서천왕이 신하들을 불러 숙신족을 무찌르고 변경을 안정시킬 능력있는 장수가 누구인지 물었다.[1]

이때 많은 신하들이 왕의 동생이었던 달가를 추천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서천왕은 달가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숙신족을 정벌하게 하였다. 달가는 곧 숙신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는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여 연전연승하였다.

달가는 기습 공격을 단행하여 숙신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단로성을 빼앗고, 숙신족의 추장을 죽였다. 또한 6백여 가구의 숙신족을 남쪽의 오천으로 옮겨가도록 하였으며, 숙신족의 부락 6∼7곳으로부터 항복을 받아 부용(附庸)으로 삼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서천왕은 공을 세운 달가를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뜻의 안국군(安國君)에 봉하였으며, 내외의 군사업무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겼다. 또한 달가로 하여금 고구려에 복속된 양맥족과 숙신족의 부락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2.2 죽음과 사후 

서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봉상왕은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던 달가를 질투하고 의심하였다. 달가는 봉상왕의 숙부로써 상당히 유력한 왕족이었으며, 백성들로부터 받은 인기도 엄청났고, 거기에다가 높은 벼슬까지 지내고 있었다. 즉, 봉상왕에게는 가장 크고 위험한 정적이었던 것이다.

292년, 결국 봉상왕은 음모를 꾸며서 달가를 죽이고 말았다. 이에 사람들은 "안국군이 없었더라면 양맥과 숙신의 난을 면할 수 없었을텐데 지금 그가 죽었으니 이젠 누구에게 의탁한단 말인가?"라며 눈물을 흘리며 달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즉위하자마자 고구려에서 가장 존경받던 사람이었던 달가를 살해한 봉상왕은 이 일로 인하여 민심을 크게 잃은 듯 하다. 이후로 봉상왕은 자신의 아우인 돌고를 살해하고, 궁궐 수리를 위해 흉년 중에도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는 등 갖은 폭정을 일삼다가 창조리에 의해 쫓겨나 자결했다. 그리고 돌고의 아들인 미천왕(을불)이 왕위에 올랐다.

3 평가

고구려군이 오랫동안 정벌하지 못하고 쩔쩔맸던 숙신족을 훌륭한 지략으로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기록으로 보아하니 명장이라 불릴만한 뛰어난 군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죽은 후에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용맹함에 좋은 인품과 덕을 겸비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당시 숙신족 정벌을 지휘할 장수로 달가를 추천해 주었던 신하들은 달가를 가르켜서 '용감하고 지략이 있어 대장으로 삼을만 하다'고 평하였다. 또한 그가 죽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하니 분명 범상찮은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분명 왕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니 암살을 당한 것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역모 혐의를 뒤집어쓰고 죽었을 가능성이 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기록[2]을 보고 있자면 당시 달가가 고구려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인기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인지 알 수 있다.[3] 다만 고구려의 방위는 명장 고노자에 의해서 상당부분 유지되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김진명의 소설 고구려에 등장하는데, 초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미천왕의 정신적 지주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초반에 봉상왕에게 살해당하는지라 큰 비충이 없다.

곽재식의 소설 모살기에서는 뛰어난 인품과 용맹을 겸비한 인물로 등장하나 그 이면에 어두운 면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숙신족을 정벌한 후에는 단로성을 기점으로 하여 숙신족을 극렬히 탄압하여 고구려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려 하는데 그 와중에 고구려의 법도와 어긋나는 행위를 많이 저질러 주인공인 우랑과 충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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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 서천왕이 "과인이 덕이 없어 이런 일이 생겼다."라는 말까지 한 것을 보면 피해가 무척 극심했던 모양이다.
[2] 소설이기는 하지만 곽재식의 소설 모살기에서는 인근의 사람들이 거의 수호신으로 섬길 정도이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묘사되어 있다. 모살기에서는 태후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3] 다만 사람들이 달가를 너무 빠돌이존경한 나머지 봉천왕에게 의심과 질투를 사서 죽고 말았으니 큰 공을 세운 것에 비해서 그 최후는 상당히 씁쓸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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