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원성 - wikia

고구려/성 2014. 6. 2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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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원성   

국원성은 고구려의 산성이다.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남한강 서안 일대는 고구려의 국원성이 있던 곳이다. 이를 지표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중원고구려비, 장미 산성, 봉황리마애불상이 있다. 국원성이란 고구려 제2의 수도를 지칭한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확보한 뒤 충주에 '작은 서울' 국원성이 설치됐고, 이어 신라의 '국원소경', 통일신라의 '중원경'이 잇따라 설치된다. 국원성의 배후에는 장미 산성(薔薇山城)과 보련 산성(寶蓮山城)을 거느리고 있다.

고구려 입장에서 반도 남부 통치 거점으로 국원성을 건설한 것이다. 한강지역을 차지하기위해 백제는 한강의 중요한 요충로인 국원성을 차지해 한강지역의 차지와 고구려로 가기위한 보급로 확보까지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진흥왕이 평정하고 국원에 신라의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8년(557) 조>와 <삼국사기 잡지 지리 조>는 전하고 있다. 신라는 역으로 반도 북부를 경영할 거점으로 국원에다 작은 수도 즉 제2의 수도를 건설한 것이다.

대체로 551년 진흥왕이 백두대간 죽령을 넘어 단양 적성을 점령한 후 공취한 죽령 이외 고현 이내의 10군은 남한강 중류 일대이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고구려 국원성까지 함락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헌상으로 국원성이 최종 함락된것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8년(557) 조> 기사이다. 신라가 국원에 소경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 국원성이 함락된 상한은 551년이며, 하한은 557년인 셈이다. 필자는 진흥왕이 설치한 10정의 지명으로 유추컨대 554년 이전에 이미 국원성은 신라가 점령했을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신라가 비록 백두대간 죽령을 넘어 단양 적성을 점령했다고 치더라도 고구려의 부도인 국원성이 곧바로 함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간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을 것이다. 그 유력한 장소가 바로 단양 적성과 대치하고 있던 사열이성과 그 주변의 가은산성 등일 것이다. 이곳이 바로 고구려 국원성의 동쪽 방어성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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