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eons.com.ne.kr/b-min.html 
* 오래전의 글이라 충파가 나오긴 하는데 충파는 판옥선이나 거북선의 전술이 아니라는 학설이 근래에는 정설화되고 있습니다.

판옥선 출현의 의의

한국해군 최초의 순수 전투함

판옥선은 우리나라 해군 최초의 전투함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 시대의 맹선이나 대선, 중선등은 모두 평화시에는 조운을 겸하도록 제작된 수송/전투 겸용의 다목적 전함인데 비해 판옥선은 오직 전투만을 목적으로 제작된 최초의 본격적인 전함이다. 즉 임진왜란 이전 조선초의 대맹선은 그 이름과는 달리 평상시에는 조운에 사용하고 전투시에는 뱃전에 방패를 늘여 세우고 함포를 싣고 싸움에 임하는 그저 단순한 무장수송선에 불과 했으나 판옥선은 처음 부터 전투용으로 제작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판옥선은 적의 장기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대비와 아울러 우리측의 강점을 분석하고 이를 더욱 발전 시키기 위해 최적화 된 전함이다.
 
지피지기
 
동양의 병법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저 그의 저서가 영역되어 서양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안뒤 충분히 방비 하면 100번 싸워 100번 이길 수 있다'라고 하였다. 즉 적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아군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하여 충분한 대비를 하는 것이 전쟁이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판옥선은 바로 이 손자의 원리에 충실한 전함이다. 그리고 손자의 말대로 지피지기 한 연후 충분한 대비를 한 판옥선은 임진왜란 모든 해전에서 100전 100승의 신화를 일구어 냈다. 
 
즉 판옥선은 조선의 제 1 가상적인 일본 해군의 전법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한뒤 여기에 대한 대비를 한 전함이다.
일본은 원래 해전에 특별한 전술을 사용 할 줄 몰랐다. 다만 원래 야만적이라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고 오직 칼 한자루만을 들고 배에 뛰어 들어 난동을 부리는 것 밖에는 특별한 전술이 없는 해적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조선은 전통적으로 궁시와 화포에 의한 원거리 포격전술및 화공법과 충파 작전등 다양한 해전술을 활용 하고 있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데로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해전에 익숙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역사적으로도 항상 우리 해군에게 절대적인 약세에 있었다. 게다가 알려진 것과 달리 왜구역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이외에 별다른 전술이 없어 오히려 해상에서 격멸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여말 왜구가 극성을 부린데는 저들이 섬나라이므로 육전에 능하지 못할 것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지에 상륙한 왜구를 상대하려 한 전술적인 잘못도 큰 원인 중 하나 였으며, 우리가 다시 전통적인 해전으로 복귀 한뒤 왜구 역시 그 세력이 현저히 감소 하기도 했었다.
 
거함거포주의
 
거함거포주의라고 하면 일단 무적함대와 영국간의 해전 이후 또는 대한 해현 전투(쓰시마해전)이후 나타난 해전의 전술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조선 시대에 적의 전술인 단병 접전을 막고 우리의 장기인 화공을 위하여 높고 장대한 전함을 만들것을 생각 했다. 게다가 여기에 다수의 거포를 탑재하는 것을 가장 기본 적인 전술로 삼았으며, 이렇게 탑재된 거포의 일제 발사를 통한 순수 함포전으로 해전의 양상을 바꾸는데 판옥선이 가지는 의의는 크다고 할 것이다.
 
무적 함대와 영국간의 해전에서 영국은 개전 초 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고 특히 극심한 탄약 부족을 겪고 있던 68척의 주력적함중 겨우 24척만 격침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영국의 탑재 함포가 소구경이어서 그 위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후 "대구격포 다수를 현측에 장비하여 일제 방사 하여 적선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야 한다"라는 현측 일제방사(bordside firing) 새로운 전술이 해전의 기본 전술로 채택되었는데, 무적함대와 영국함대와의 결전 4년뒤인 임진년 조선의 전라좌수영 함대에 의해 바로 이 전술이 실제 전투에서 얼마나 위력적인지 입증 되었다. 
 
물론 조선의 좌수영 함대는 영국함대의 전술 체험으로 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조선 자체적인 연구에 의한 독자적인 전술 개념의 발전을 따랐을 따름 이다.
 
중종 16년 서후와 중종 39 판중추부사 송흠에 의하여 높고 장대한 거함으로 적을 내려다 보며 제압 하는 거함 거포 주의가 제안 되었고 이후 명종 10년(1565년) 한강의 마포에서 판옥선이 시험 되었다.

전술개념의 완성
 
판옥선은 조선의 일본 해군 및 왜구에 대한 전술 개념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조선의 전통적인 사술을 발전 시킨 포격전을 위한 해상 포대로서 또한 적의 장기인 접전을 방지 하기 위한 높고 장대한 보루로서 설계된 판옥선은 조선의 일본에 대한 전술 사상을 완벽하게 실현한 조선 최초의 전함으로 임진왜란시에 그 진가를 밝휘하게 된다.


참고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정광수
한국의 배 :이원식
우리 배의 역사 :김재근
거북선의 신화 :김재근
조선왕조군선연구 :김재근
우리 배의 역사 :김재근
귀선고 :최영희, 사총
징비록 :유성룡(이민수 역)
임진정왜도 :신동아(78.12)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 :역사스패셜


판옥선 관련글
임진왜란 군사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1518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