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omn.kr/1gx , http://bit.ly/30hOLx
* 좀 길긴 하지만 "팔도땅의 옛 고구려 장성 (1)(2)를 기행문이기 때문에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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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유지 [長城遺址] - 김진광 http://tadream.tistory.com/13103
* 좀 길긴 하지만 "팔도땅의 옛 고구려 장성 (1)(2)를 기행문이기 때문에 하나로 합쳤습니다.
팔도땅의 옛 고구려 장성 (1)
연변 내 고향 여행 (17)
06.02.20 08:26 l 최종 업데이트 06.02.20 08:27 l 리광인(guangren33)
해당 연구자료를 통해 화룡, 용정, 연길을 가로 지난 1000여 년 전 옛 고구려장성이 용정시 구간에서 원 팔도진 서북쪽을 에돌았고 구수하를 건너 쌍봉촌으로 해서 평봉산으로 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구려장성이 잘 보존되었다는 성벽구간이 어딘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일을 두고 고심하다가 일전에 연길에서 팔도출신의 용정 황상박 선생과 얘기를 나누었더니 팔도땅엔 옛 장성흔적이 수두룩하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체면불구하고 70고개를 눈앞에 둔 황상박 선생한테 길안내를 부탁드렸다.
1월 24일 오전 9시, 필자는 약속대로 연길시 서시장 뻐스역에서 황상박선생을 다시 만났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반시간만에 연길서 서쪽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팔도진에 이르렀다. 현재는 용정시 조양천진에 귀속된 팔도촌이었다. 헌데 황상박선생은 팔도~삼도만 갈림길에서 북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쌍봉촌으로 택시를 안내하였다.
“옛 성벽이 잘 보존되었다는 구간이 길성저수지 부근이 아닙니까?”
“글쎄 가보면 안다니까!”
황상박 선생은 사람 좋게 시물시물 웃을 뿐이었다. 잠간 새에 우린 큰 길가 비둘기바위 동쪽가 쌍봉촌에 이르렀고 황 선생의 소시적친구 한재운씨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알고보니 사전에 전화연계가 되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황선생의 소행이 고맙기만 하였다.
한재운씨는 1937년 생으로서 황상박 선생보다 한해 위였다. 황 선생과 더불어 팔도소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한재운씨는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쌍봉촌 회계, 1980년부터 1984년까지 회계에 촌장, 1984년부터 팔도진 경영관리소 회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쌍봉촌 촌지서로 몸을 잠가 온 경력자였다. 한씨는 황 선생을 통해 답사사연을 알았다면서 옛 장성 흔적이 이곳엔 여전하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곤 군소리 없이 필자와 황 선생을 북쪽 산너머로 통하는 부암골 길가로 안내하였다.
날씨가 무척 수그러들었다지만 부암골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여전히 맵짰다. 방한모도 쓰지 않고 엷은 옷차림인 한씨는 가끔 두손을 귓가로 가져갔다. 그러는 모습이 안스러워 필자가 옛 장성구간만 가리켜 달라고 했더니 한재운씨는 마을 뒤 동북쪽 산기슭을 가리키며 저기 밭지경에 보이는 도드라진 부분이 옛 말무덤자리라고 했다. 시야에는 봉긋하게 솟은 흙무덤이 안겨들었다. 보매 2~3리(1리가 500미터)가량 되여 보이었다. 마침 황상박 선생도 신병에 시달리는 몸이라 필자는 두 분을 만류하고는 단신으로 답사행에 나섰다.
말무덤으로 이어진 개울가 오른 쪽은 시골의 밭이었다. 금방 밭머리에 들어섰는데 밭가운데 길이가 200~300미터 되어보이는 도드라진 흙무지가 동쪽으로 곧추 말무덤까지 뻗어있었다. 필자는 대번에 옛 장성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밑변의 길이 3메터쯤 되고 높이가 한두자쯤 되여도 옛흔적은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필자는 흥분에 들떴다.
말무덤에 이르니 길이가 10여m, 너비가 10m 안짝인 흙무덤이 덩실하게 솟아있었다. 높이는 불과 몇 미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쪽 구간 단면으로 보아 생땅이 아닌 인위적축조라는 것이 알리였다. 타원형으로 남아있는 말무덤에는 누군가 드릅나무를 심어놓아 드릅나무가 말무덤을 온통 덮고 있었다. 전혀 관리와 중시가 따르지 않은데서 말무덤의 현실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말무덤에는 돌들이 가끔 섞이었는데 서쪽 면은 파헤친 흔적이 역연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허비었다.
어찌하든 말무덤의 발견은 충격적이었다. 길성저수지 부근이 아닌 쌍봉촌 구간에서도 옛 장성 흔적이 발견되고 말무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사건이 아닐수 없었다. 필자를 보다 흥분시킨 것은 말무덤아래 밭가운데를 가로 지른 옛 장성 흔적이 말무덤을 지나 동쪽 이깔나무 숲사이로 계속 뻗어갔다는 점이다. 한 500미터쯤은 되여 보이었다. 오늘은 전면 답사가 아닌 사전의 고찰이고 마을에서 황상박 선생이 기다리는데서 돌아서야 함이 유감이라 할까.
아쉬운 대로 후일 답사로 미루고 떠나려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때 말무덤 윗쪽 수림쪽에서 웬 사람 하나가 내려오더니 생소한 필자를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당지 농민 같아 필자는 다가가 말을 건네였다.
"이곳 분이십니까?"
"그런데요."
낯선 사람의 시선은 의문에 넘쳐 있었다. 때 아닌 산기슭에 웬 사람이냐는 뜻이였다. 필자는 인차 낯선 사람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저는 연길에서 왔는데요. 황상박 선생이 동행했고, 저 아랫마을에서 기다립니다. 혹 황 선생을 아시는지요?"
"오, 알다 뿐이겠습니까, 너무도 잘 알지요."
그제야 낯선 사람의 의문의 눈길은 풀리고 필자를 반가이 대해주었다. 황상박이라는 존재는 이렇듯 우리 사이를 대번에 가까이 만들어 주었다.
황상박 선생은 1938년생이고 연길현으로 불리운 용정시 원 팔도진 팔도촌 수북천 출신으로서 1958~1974년 팔도향(그때는 향이였음) 우편배달부, 1974~1981년 향서점의 도서발행원, 그다음은 1998년에 정년퇴직하기까지 용정시 방송국의 기자로 근무했었다.
한 때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길림성 로동모범, 전국 선진생산자이고 과외로 문학창작활동을 반세기나 꾸준히 펼쳐온 시인으로서 지난 80년대 이전시기를 거치어온 팔도사람들은 황상박이라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낯선 사람도 마찬가지었다. 뒤미처 필자가 말무덤을 찾은 연유를 이야기하고 옛장성 흔적이 말무덤 윗쪽에도 계속 뻗었더라고 소감을 터놓으니 옛 장성은 이 구간 뿐이 아니라면서 주동적으로 필자를 말무덤 윗 구간에로 안내하였다.
덧붙이는 글 | 리광인 기자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 교류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팔도땅의 옛 고구려 장성 (2)
연변 내 고향 여행 (18)
06.02.20 08:35 l 최종 업데이트 06.02.20 08:36 l 리광인(guangren33)
옛장성은 말무덤 아래쪽과 일직선으로 곧추 동쪽으로 뻗어나갔다. 이깔나무 숲을 지나니 장성은 동북방으로 지른 주가골 골짜기로 떨어졌다. 동행한 분은 옛 장성은 여기에서 골짜기를 너머 저 맞은켠 산꼭대기를 치달았다면서 건너편을 가리켰다.
필자는 크게 놀랐다. 건너편 산꼭대기로 치달은 옛 장성흔적이 너무도 환하게 시야에 안겨들었으니 말이다. 황상박 선생의 소시적 친구한테서는 말무덤만 소개 받은 터에 생각지도 않은 옛장성을 거듭 발견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지금까지의 현존 연구자료에 따르면 연변의 옛 고구려장성은 두 곳으로 알려진다. 하나는 말 그대로 화룡시 토산자 동산으로부터 시작되여 화룡시, 용정시, 연길시 경내에 이르는 장성이고 다른 하나는 훈춘벌 북부를 에워싼 장성이다. 필자가 년전에 연길시 서북부의 외곽산인 평봉산에서 고구려장성의 석성구간을 처음 발견한 후 화룡, 용정, 연길 구간의 300리 옛 장성에 짙은 흥미를 가지고 등산과 역사유적 답사의 하루하루를 이어왔는데 원 팔도향 쌍봉촌구간에서만도 길게길게 뻗은 옛 고구려장성 흔적을 발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변박물관의 원 연구일군들인 박룡연, 엄장록 등 몇몇 분들이 연변의 옛 장성에 대해 고찰조사활동을 펼치고 연구논문들까지 발표했으나 장성 따라 답사는 거의 전무한 상태어서 팔도 쌍봉촌구간에 옛 장성흔적이 그대로 실재한다는 것을 밝혀내지 못하고 성벽이 잘 보존된 곳을 말할 때 팔도일대 길성저수지 부근의 성벽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한데서 말무덤에서 만난 당지 분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60살이고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살아 왔지만 이곳 옛 장성을 답사하고 묻는 분은 처음 봅니다."
이 말이 필자한테는 좋게만 들리련만 그렇지가 못했다. 낮다란 흔적이나마 눈에 확연히 안겨드는 이곳 고구려장성을 지금까지 전면 답사한 분이 없다니 가슴은 일시에 숨이 턱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용정시문물지>에도 이것이 고증되고 올라야 하지만 보이지가 않았으니 가슴이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안내자가 이 기분을 다소나마 풀어주었다. 연길시 평봉산으로 뻗어간 산속구간 답사는 후일로 미루고 돌아서는데 안내자는 말무덤에서 쌍봉촌 서남쪽의 두루봉을 가리켰다.
"저길 보십시오. 옛 장성은 말무덤 아래서 골안 따라 쌍봉촌을 지났고 저렇게 두루봉 북쪽가로 뻗어 산을 넘었습니다."
필자는 또 한번 놀랐다. 옛 장성은 쌍봉촌을 지나 산기슭에 대이었고 두루봉 북쪽가로 산을 넘어간 것이 환히 보였으니 그 시각의 흥분점은 절정에 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할진대 쌍봉촌 구간의 고구려장성은 근 10리나 뻗었고 흙으로 쌓아올린 것이었다. 이 옛 장성의 수축녀대를 기원 4세기 쯤으로 본다고 할 때 1000년도 훨씬 뛰어 넘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도 그 흔적이 용케도 남아있으니 모진 것이 세월이라지만 역사속 기나긴 세월도 고구려 장성흔적을 가뭇없이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쌍봉촌 귀가길에서 필자는 낯선 사람이고 안내자인 분은 1947년생이고 이름이 김동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문화대혁명 때인가 여기 마을사람들이 말무덤에 뭔가 있으려니 여기고 일부를 파헤쳤는데 활촉과 말뼈 등이 나오더란다. 그래서 당지에서 말무덤이라고 불리운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보건대 말무덤은 사실 말무덤이 아니라 고구려시기 봉화대가 아니면 장성을 지켜선 주요한 군사주둔시설이었다.
마을에 이르니 황상박 선생과 한재운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북쪽 산기슭에서 말무덤 외에도 몇 리나 뻗어간 옛장성을 발견했다고 하니 그들은 마을 서남쪽의 두루봉을 가리키며 옛 장성은 두루봉 북쪽으로 산을 치달아 올랐다고 설명해 주었다. 말무덤에서 이미 보았다고 하니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그네들이었다. 그러는 두 분이 돋보이기만 했다.
한재운씨한테서 필자는 또 쌍봉촌 이곳마을은 개울가를 사이두고 3~4대가 자리 잡았고 말짱 조선족 80여세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화룡시 원 토산진 동산에서 시작되어 서성 이도구간을 지나 북으로 뻗혀오던 고구려장성은 팔도촌 북쪽 소팔도구 두루봉에서 방향을 동북쪽으로 접다가 말무덤 웃쪽 구간에서 방향을 다시 동남쪽으로 돌리며 근 10리나 수축되어 있었다.
반나절의 성과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때는 오전 11시 반. 귀로에서 필자는 황상박 선생을 모시고 팔도촌에 이르러 선생의 고향집터인 팔도촌 12대—수북천과 두 번째 살림집을 돌아보고 선생의 숙모댁에서 점심상에 마주 앉았다. 필자 기획 중의 조선족 노작가 자료고 거창한 건설이 황상박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된다. 황상박 선생의 처녀시가 1956년 1월 26일에 연변일보에 발표되여 장장 반세기로 이어졌으니 선생은 자료고에서 취급할 수 있는 당당한 노작가였다.
황상박 선생이 고마웠다. 신병 속에서 먼 길을 떠나기 불편한 몸이면서도 추운 겨울에 필자의 청을 선뜻 들어 주었고 고구려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조건을 지어 주었으니 후일의 전면답사는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고마운 일은 이 뿐이 아니었다. 마침 황 선생 숙모댁에 이른 숙모님의 남동생 리중범(64살)씨가 팔도촌~길성저수지 구간 답사안내를 나서기로 했으니 고마움이 한가슴 들먹이었다. 팔도땅의 옛 고구려 장성이 이제 세상에 알려질 것도 역시 시간문제일 뿐.
덧붙이는 글 | 리광인 기자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 교류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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