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142.html

왜 ‘백제’인가? 
[한가위별책-백제 깨어나다] - 프롤로그
[2010.09.17 제828호] 

왜 ‘백제’인가?. 사진 교육방송 제공

왜 지금 ‘백제’인가?

이 물음은 즉답을 어렵게 하는 물음이다. 답이 어렵기 이전에 물음부터 어렵다. 물음 안에 무척 넓은 괄호가 쳐 있어서다. 괄호를 풀면 이렇다. ‘신라·고구려를 제쳐두고 왜 하필 백제인가?’ 여기서 백제는 신라의 지략과 고구려의 웅혼함, 그 어느 것도 없는 ‘결여의 백제’다. 다시 말해 ‘의자왕과 삼천궁녀’라는 질펀하면서도 남루한 기억만 즉자적으로 격발시키는 바로 그 나라.

그러나 이 물음은 이미 스스로 답을 내포하고 있는 물음이기도 하다. 답 역시 물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백제가 삼국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실제 백제의 모습은 의자왕과 삼천궁녀만으로 상징될 수 있는가? 백제에 대한 후대의 역사 기록이 훼손되거나 왜곡된 집단기억이라면, 그 훼손과 왜곡이 오늘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그리고 역사가 온전히 복원된다면 오늘 우리에게 다시 어떤 지적·정서적 영감을 줄까?

백제의 역사는 패자의 역사다. 같은 패자이면서도, 고구려는 호전성에서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압도한다. 승자의 역사와 남성성의 역사는 승패를 떠나 서로 우호적이다. 백제는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다. 한민족 역사에서 승자독식·우승열패의 신화가 에누리 없이 적용되는 타자 중의 타자다. 백제의 역사는 훼손과 왜곡을 넘어 의도적으로 말소됐고, 파편적 사실에 덧씌워진 이미지만이 역사인 양 그 빈자리를 채워왔다.

하지만 승자도 땅속의 유물과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세계의 기록만큼은 어찌하지 못했다. 1400년 동안 잠자던 역사는 지금 화려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1970년대 무령왕릉에서 90년대 금동대향로를 거쳐 2009년 미륵사지 금제사리호까지,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백제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지극히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 남아 있는 숱한 백제 유물과 기록들은 뒤틀리고 삭제된 역사를 바로 펴고 복원하는 밑절미가 되고 있다.

백제가 당대 한반도에서 가장 우수한 문물과 문화를 꽃피웠을 뿐 아니라, 고대 ‘한류’ 바람을 일으켰던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중심축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묵은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백제인들은 협애한 지역 관념을 넘어서 동아시아를 무대로 왕성하게 교통하던 세계시민 디오게네스였다는 사실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 신라와 고구려뿐 아니라 한민족 역사를 통틀어 이런 국가 공동체가 또 있었던가.

그러나 이런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건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산다는 우리가 백제(인)만큼도 폐쇄성과 배타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우리는 승자가 기록한 역사에 젖어 여전히 갈등과 대립, 패권의식에 매몰돼 있지는 않은가. 왜 지금 ‘백제’인가? 그래서 지금 백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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