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60830093008861

<147> 바이칼(Baikal), 우리민족의 기원 (IV)
데일리안 | 입력 2006.08.30 09:30

[데일리안 배강열]'Some where my love'로 시작되는 '라라의 테마'가 귓전에 울리고 여주인공 라라를 태운 썰매가 설원을 미끄러지는 장면이나 시베리아 열차가 지나가면서 눈이 양 길로 흩뿌려지는 모습을 기억한다, 빠스테르나끄의 소설을 영화화한 '닥터지바고'의 한 장면들이다. 또한 시베리아 유형장의 을씨년스러움과 그 얼어붙은 땅에서 카튜샤를 쫓아가는 네플류도프의 모습이 아른대는 톨스토이의 '부활', 그리고 '전쟁과 평화'를 기억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시베리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뿐이랴! 춘원 이광수는 '유정'(1933)에서 눈 덮인 시베리아와 바이칼을 배경으로 남정임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고, 순애보(殉愛譜)의 작가 박계주는 자유시 참변 후 독립군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르쿠츠크로 이동하는 모습을 '대지(大地)의 성좌(星座)'(1957)에서 묘사를 하고 있다. 우리의 문학이 반도적인 협소함에서 벗어나 그 무대를 확장한 소설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베리아라는 환경이 가지는 속성, 즉 황량함과 쓸쓸함 그리고 힘든 노고가 묻어나는 땅의 속성을 소설들은 이겨내지 못한다.

◇ 물은 생명의 시원, 정한수 한 사발이나 바이칼 모두가 같은 것이다 ⓒ 들찔레

또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하게 된 손기정(孫基禎) 선수는 부산에서부터 열차 편으로 평양 신의주를 거쳐 만주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다시 열차 편으로 베를린에 이른다. 한반도는 당시 대륙의 일부였고 부산에서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도 철길로 이어져 있었다.

이런 기억은 이 땅 바이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과 가까운 시간의 이야기이다. 이런 몇 몇 기억들을 제외하면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로 세 시간 조금 넘는 거리임에도 지금까지 시베리아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완전히 잊혀진 땅이었다.

흔히 시베리아 바이칼은 우랄알타이 계열의 민족들의 원류이면서 우리 민족의 원류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 추운 땅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했을까? 아프리카의 인류조상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고 일단이 아라비아를 거쳐 동남아로 가는 길 외에 일부의 인류는 이곳으로 들어온다.


◇ 우리를 닮은 브리야트인들, 생활모습도 많이 닮았다 ⓒ 들찔레

혹독한 추위로 인간이 살기 힘들었다는 바이칼 지역에는 빙하시대 사이의 간빙기에 고대인들이 이동해왔다고 한다. 그 당시 이곳은 빙하 사이의 고립된 오아시스처럼 열수광산이 있어서 거주하기에 합당할 수도 있었다는 추론들을 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 사람들이 이주한 경로는 해빙기 이후 바이칼 지역의 대규모 홍수 등으로 인해 거주 영역을 확장하는 가운데 남방 계열에서 이주한 일단의 부류가 바이칼 지역에서 동남진한 북방인의 계열과 서로 섞여 형성된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사람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나타내는 삶의 형태와 관습들, 문화적 동질성, 언어의 유사성, 도구의 사용에 있어서의 공통점 등등을 기준으로 같은 민족적 계열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인데 해빙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알타이와 중앙아시아 지역 및 극동 아시아 지역으로 고대인들이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가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문화를 이어 주는 원형들을 유사한 형태로 보존하며, 오늘에까지 이르게 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런 개략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곳 바이칼에 남아 있는 브리야트인들과 그리고 아래 몽골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삶의 형태에서 우리는 많은 민족적인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고 그를 통하여 민족의 뿌리를 더듬어 볼 수가 있다.


◇ 몽골 역사 박물관의 암각화, 반구대와 닮았다 ⓒ 들찔레

우선 역사시대가 시작되기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암각화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시베리아-예니세이강 중류, 앙가라강-레나강 상류 지역은 동부유럽평원과 우랄산맥지역과 함께 시베리아 3대 예술의 중심지로서 암각화가 많다. 애초 파손되기 전 그 규모는 20 Km의 거리에 달할 만큼 광대한 것들도 있었으나 지금은 약 2Km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동심원을 주로 표현하고, 사냥장면을 그린 암각화는 연해주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울산의 반구대나 천전리각석 등의 암각화들에 영향을 준 듯하다. 이런 사실은 이르쿠츠크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나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국립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암각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의 사용이 같은 민족적 계열에서는 비슷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 또한 민족의 이동경로를 찾아가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예컨대 흑요석을 이용한 깬돌 문화의 흐름이나 토기의 변천과 이동 경로를 통해서도 사람들의 이주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삶의 형태를 더듬어볼 때 고대인들에게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은 신앙이다. 바이칼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은 불한(칸)신이다. 불한에는 천신(天神)의 의미도 있고, 부처의 의미도 있다. 어쩌면 시오니즘과 같다고 볼 수 있으며 우랄알타이 계통 민족의 이상적 고향과 원류에 대한 믿음이기도하다.


◇ 불한(칸)신은 하늘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다른 이상향에 대한 희구다 ⓒ 들찔레

불한신은 몽골의 시조와도 관련이 깊다. 볼테치노(푸른늑대)와 아내인 고아바랄(고운 사슴)은 큰물을 건너서 오논강의 근원지인 불한산 속의 초원에서 바다치한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불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밝음, 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한 또는 칸은 칭기즈칸 계민가한(돌궐의 왕), 거서간, 마립간(신라의 왕)에서 나타나듯 왕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도 이런 민족사적 유서성과 공통점에서 출발을 하며 한편으로 불한(칸)은 브리야트 인들에게 부처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방종족들은 거의 대부분이 하늘과 해를 숭배하고 있다. 특히 겨울이 길고 추운 나라에서 해는 작물을 얻거나 인간이 활동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 푸른 하닥이 나부끼는 오부, 인간의 염원은 어디나 같다 ⓒ 들찔레

동명(東明)이라는 말 자체가 해와 밝음을 의미한다. 부여와 고구려 초기의 왕들의 성이 해씨다. 그들은 국동대혈에서 해를 맞이하는 동맹의식을 거행했고 스스로를 일월의 아들, 천제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백두산은 흰 산, 즉 해가 있고 빛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신라의 박혁거세, 왕의 칭호인 불구내 혹은 불거내(弗矩內) 등은 다 빛을 의미하는 말이다.

더불어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숭배는 그 외연을 확대하여 이곳 바이칼의 타이가에 사는 독수리를 비롯한 곰, 호랑이 등의 동물이나 땅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숲 또한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런 동, 식물이 자라는 필수조건은 햇빛과 더불어 물이다. 물은 모든 생명이 태동하는 근원이고 이렇게 생긴 생명은 햇볕을 받고 자라난다. 따라서 숲을 이루는 나무는 물과 하늘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 말을 묶는 기둥, 사실 이것도 하늘과 인간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 들찔레

브리야트인들이 사는 곳이나 몽골의 초원에서 우리는 집 뜰에 나무기둥을 깎아 세우고 천을 매달아놓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말을 묶을 때 사용하는 곳이지만 때로 이것의 의미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교신자 혹은 안테나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높이는 2m 가량인데 상층부를 3단으로 깎았다. 맨 위 마름모꼴은 하늘을 뜻하고 중앙 역삼각 뿔은 땅을, 맨 아래 역삼각 뿔은 지하세계를 뜻한다.

고조선 역사의 시발점인 환웅의 탄생은 이런 토테미즘혹은 자연숭배 사상의 영향으로 발생한 이야기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은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다. 그리고 웅녀가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정한수 떠놓고 빈곳도 신단수 앞이다. 곳곳에 솟대가 서 있는 것도 역시 나무신앙의 한 변형이다. 신라고분 천마총에서 발견된, 흰말에 그려진 말다래도 신단수인 바로 자작나무 껍질이다. 당시 경주인근은 자작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곳도 아니었고 자라지도 않았음을 볼 때 이런 사실은 바이칼의 끝없는 자작나무를 다시 보게 만든다.


◇ 나무는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매개체, 천마도가 그려진 자작나무 ⓒ 들찔레

또 박혁거세는 나정 옆의 수풀 사이에서 백마가 낳은 알에서 깨어나 신라의 시조가 됐다. '담쟁이넝쿨 샘' 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이곳은 박혁거세가 붉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신라의 창건 설화가 남아 있는 성소(聖所)다. 청정한 지역을 상징하는 담쟁이와 생명의 근원임을 상징하는 물의 결합이 왕조의 창건 설화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주김씨의 시조인 알지는 수도의 시림에서 발견된 궤짝에서 나왔다. 국호이면서 수도 이름이기도 했던 계림은 바로 이 시림의 알지신화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신화가 영남지방에서는 골매기 신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또 있다. 겨울 바이칼 인근 시베리아 설원에 피는 홍류(紅柳)라는 붉은 가지의 버드나무는 물가에 자라는데 이 홍류는 다른 말로 '조선류.라 부르는데 이렇게 조선류가 자라는 땅은 고주몽의 어머니인 버들꽃엄마(유화=柳花 부인)과 직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태회귀신앙의 속뜻이 숨어있다.

여기서 조선(朝鮮)은 '아침의 나라'란 뜻이 아니란다. 한 번 뜯어먹으면 3-5년이 걸려야 재생하는 순록의 주식인 이끼가 나는 선(鮮=유라시아대륙 고원건조지대 몽골리안 루트상의 작은산, 小山)을 따라 떠도는 '순록유목민'을 가리키는 유목종족의 이름이라 한다. 그리고 고려(高麗)는 순록 자체를 가리키는 고대 투르크-몽골어 '코리아크'와 '오로치'등 시베리아 원주민어로 유목민족을 가리키는 부족명 임을 밝혔다 한다.

이런 유사성은 비단 종교적인 면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 외의 수많은 설화에서도 공통점을 나타낸다. 바이칼에서는 상인에 의해 바이칼의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되는 희생 처녀가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을 하여 신들의 세계인 바이칼에서 살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이는 '심청전'의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 바이칼 호수는 인간의 본성 , 자궁과 같은 곳이다 ⓒ 들찔레

바이칼을 무대로 한 브리야트인의 설화에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유사한 것이 있다. 호리도리라는 노총각이 어느 날 바이칼에 가서 말없이 너른 물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때 오리, 갈매기, 백조 등 물새들이 어울려 놀고 있는 파란 물결 위에 유난히도 곱고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서 내려오더니 물위에 사뿐히 앉아 어여쁜 선녀로 변하였다. 그러더니 찬란한 옷을 훨훨 벗어 호숫가에 놓고, 눈부신 알몸으로 물속에서 즐겁게 헤엄을 쳤다. 호리도리 청년은 바위 뒤에 숨어서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곤 살금살금 기어가 선녀의 옷을 훔쳐서는 풀숲의 은밀한 곳에 숨겨버렸다. 선녀는 당황하고 놀라 어쩔 줄 몰랐다. 부끄러운 몸을 감추면서 울면서 옷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이때다 싶어서 선녀에게 다가가 달래면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 선녀는 다름 아닌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원 세조)의 미희인 텡그리고아(天美)가 변해서 된 선녀였다. 정을 나눈 선녀와 호리도리는 결혼해서 아들을 열 하나나 낳고 잘 살았다. 그래서 호리라는 성을 가진 11지파의 선조가 되었다. 호리는 고구려의 선주 국가인 고리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언어의 유사성도 빼 놓을 수 없다. 일본학자 시미즈 기요시에 의해 몽골족들과 유사한 어근을 가진 단어들이 이미 300개 넘게 확인되었다. 이런 단어들은 동물이름, 신체에 관련된 것, 친족어, 생활어, 사물의 성질에 대한 표현 등에서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말 곰( Gom=bear)은 알타이 옛글로 쿰(Kum)이고, 달(dar=moon)은 타르(tar)로 읽는다. 살(sar=skin)은 살(saar)로 발음하며 아가씨(agassi)는 아카스(akas)로 읽는다.

◇ 테무친의 어머니가 그린 그림, 그녀는 브리야트인이었다 ⓒ 들찔레

역사시대 이후 이곳 바이칼에 브리야트인들이 집중하여 들어오게 된 건 몽골족들이 나라를 세우고 징기츠칸 테무친이 세계정벌을 나서기 직전이다, 동 몽골에 속했던 테무친의 부족이 그들보다 위세가 컸던 어머니의 부족 즉, 현재의 브리야트 족들에게 복속할 것과 같이 군사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테무친이 직접 그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지정학적으로 서 몽골에 해당하는 지금의 바이칼호 주변으로 옮아와 살게 되었다.

이후 세계를 대상으로 기마민족의 유리함을 이용하여 영토를 넓히던 몽골족들은 급기야 고려를 침범하게 되는데 이 기간은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외세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은 시기이다. 13세기 이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그들의 삶과 문화가 우리와 닮아 있었음을 당시 사람들도 재확인하였을 것이다.


◇ 징키즈칸의 세계공략도, 우리도 그 아픔을 알고있다 ⓒ 들찔레

지금 시베리아 바이칼과 몽골의 초원은 21세기의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그 가치를 다시 조명하게 된다. 몽고반점으로 상징되는 민족적 기원의 원류를 재확인 할 수 있는 곳이 지정학적으로 그다지 먼 곳이 아니라는 것과 의식 속에서의 거리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는 때이다. 시베리아횡단 열차가 부산으로부터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진다면 그곳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역동성과 우리 민족의 잠재력이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솟대가 하늘을 나는 새를 불러 좋은 기운을 만들어내고 자작나무 숲 속, 신들이 사는 신령스러움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이고, 바이칼의 맑은 물과 자연이 숨 쉬는 일 하나라도 온전하게 하여 인간 본성이 그 근원을 찾아 더 맑아질 것이다./ 배강열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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