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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21> 가야·신라 격전지 황산진
국제신문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가에는 가야진나루가 있다. 1900년 초반까지 이곳이 ‘하서면’으로 불릴 때에는 면소재지가 있었을 만큼 흥성했던 포구였으나, 지금은 배도 사공도 떠나고 모래언덕만 남았다.

이 나루의 기원은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루 앞에 세워져 있는 ‘가야진사’라는 사당은 나루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 등의 사료를 보면 가야진사는 신라 19대 눌지왕(서기 450년)이 강 건너 가야를 공격하기 위해 왕래하던 자리로, 후에 낙동강 수신(水神)에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삼국사기’ 제사조에는 신라의 지방 제후가 왕명에 따라 국가제사를 지내는 중사(中祀)가 있고 4독(瀆)을 두어 그런 제사를 행하게 했는데, 그 중 한곳이 ‘황산하’라고 돼 있다. 이곳의 제사전통은 오늘날 용신제로 바뀌어 이어지고 있다.

가야진사는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용당나루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고, 용당나루 뒤편에는 용산(龍山)이 있다. 가야진사에 용신(龍神)이 모셔진 것도 특이하다. 기록에는 조선 태종때 사우(祠宇)를 세웠다고 하나 없어졌고, 지금의 것은 지난 1990년 재축조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황산진(黃山津), 황산하(黃山河)는 바로 가야진 일원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야·신라의 교전도 여기서 벌어졌을 것이다.

이곳을 왜 ‘가야진’이라 했는지 알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없다.

가야진 용신제 기능후보자인 김진규(72)씨는 “신라 통일 전에는 가야세력이 이곳까지 미쳤을 것이고 후대에 전승되면서 그리 이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민 정순진(52·양산시 원동면 용산리)씨는 “신라가 (강건너) 가야를 치러가는 나루란 뜻에서 가야진이라 하지 않았겠는가”하고 말했다. 가야진사 재축조때 직접 참가했다는 정씨는 “건물 주변에서 주춧돌과 토기편이 나왔다”며 발굴을 촉구했다.

이런 역사적 전통을 살려 주민들은 ‘가야진 용신제’를 행하고 있으나 최근 맥이 끊길 위기라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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