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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32> 제6부 깨어나는 가야 '가야사 이렇게 고쳐 써야'
기고 : 중등 국사 교과서의 가야사 서술방향
국제신문  입력: 2003.06.05 20:32 김태식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


요즘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가야의 위치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확인이 된다. 고대 유물을 전시하는 2층에서 기획전시실, 선사실과 통일신라실을 제외하면 원삼국실, 고구려실, 백제실, 신라실, 가야실이 대등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중에서 원삼국실은 이른바 ‘삼국’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고 있으나, 고구려 초기의 유물은 없고 백제나 신라 지역의 것도 소수일 뿐이고, 실은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3세기 이전 유물 위주로 전시되고 있다. 이제 가야사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고대사 분야에서 가야사 서술을 크게 늘려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교 국사의 서술 현황과 그에 반영시킬 가야사 내용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3장 1절 3항의 ‘삼국의 발전과 통치 체제’ 중 ‘삼국의 정치적 발전’이라는 항목에서 4~6세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발전하는 모습이 서술되었으나, 가야는 생략되어 있다. 

가야는 5세기 전반 이후에 가야지역의 세력 판도가 변하여 5세기 후반에 고령의 대가야 하지왕이 나타나면서 후기 가야연맹을 형성하고, 대외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거기에는 후기 가야연맹의 범위가 전라남북도의 동부 지역 전반에까지 미쳤던 점에 대한 정확한 서술, 후기 가야연맹 전성기의 20여개 가야 소국의 국명과 위치에 대한 기술 및 지도 등이 보충되어야 한다.

그에 이어 ‘삼국 간의 항쟁’ 항목에서는 삼국의 항쟁 사이에 가야의 흥망이 함께 서술되었는데, 여기서는 5세기의 대가야 대두에 대한 기술은 생략하고 6세기 이후 가야연맹의 분열과 멸망과정이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즉, 호남 동부 지역의 영유를 둘러싸고 일어난 대가야와 백제 사이의 분쟁과 그로 인한 대가야와 신라의 결혼 동맹, 그 속에서 가야 제국이 긴밀하게 결속할 수 없었던 상황 등이 드러나야 한다. 

또 당시에 활약한 이뇌왕, 우륵, 구형왕, 도설지왕 등 구체적인 가야 인명들도 나타나야 한다.

제4장 1절 ‘고대의 경제’ 부분에는 가야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 한국 고대 경제의 발전에 미친 가야의 기여는 매우 크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가야의 철 생산 기술의 우월성, 가야의 원거리 해상교역 입지조건의 우월성, 농경 입지조건의 안정성, 가야의 철제 농기구의 발전상 등에 대한 서술이 포함되어야 한다.

제5장 1절 ‘고대의 사회’ 부분에도 가야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가야 관련 기록과 고분군 분포 및 유물 출토 상황을 통해 볼수 있는 각 소국 내부 및 소국 사이의 사회 구조, 계층 발달 상태, 순장 문제의 성격 등이 언급되어야 한다.

제6장 1절 ‘고대의 문화’ 부분의 ‘금속 기술의 발달’과 ‘농업 기술의 혁신’ 및 ‘고분과 고분 벽화’, ‘삼국 문화의 일본 전파’ 항목에도 가야에 대한 서술이 없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의 가야사 및 고고학 연구성과와 비교해 볼 때 허탈감을 안겨 준다.

여기에는 철제 갑옷, 무기, 마구, 토기 등에 보이는 가야 문화의 우수성과 개성, 가야금 음악의 신라 전수, 강수와 김유신 가계와 같은 가야 후손들이 신라 문화에 미친 영향, 일본의 농경, 제철 및 철기 제작, 경질토기(스에키) 제작술 등에 미친 가야문화의 영향 등을 언급해야 한다.

여기서 나아가 가야문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도 적극 게재해야 한다.

다른 문제를 모두 차치하고 일본 검인정 교과서에 숱하게 나타나는 ‘임나일본부설’의 관념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가야의 자주적 발전상은 중등 교육에서 한층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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