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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34·끝> 제6부 깨어나는 가야 ④ 에필로그
국제신문  입력: 2003.06.19 20:14  박창희기자  chpark@kookje.co.kr
 

내달 10일 개관되는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 전시관. 살아나는 가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야사가 좀 보이등교?” 본지의 ‘가야사’ 시리즈가 대단원을 향해 가던 이달 초, 경북 고령에 사는 김도윤(金道允·80) 옹이 본사를 불쑥 방문해 던진 질문이다. 김 옹은 50여년간 줄곧 ‘가야사’와 씨름해온 향토사학자다. “어려울 끼지요. 그러타캐도 그기 우리 삶의 원형이니까 꼭 찾아야지.” 그의 당부는 간절했다.

지난해 9월 ‘가야사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취재진은 가야의 온전한 지도(地圖)를 그리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희망사항이 됐다. 그것이 곧 한국 고대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니 어찌 쉬울 것인가.

가야사는 아직도 드러난 것보다 숨겨진 것이 휠씬 더 많다. 이제야 겨우 복원의 시동이 걸렸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지도든, 도판이든 섣불리 말하고 규정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무리가 있겠지만, 학계의 그간 연구성과를 중간 정리하는 차원에서 가야의 지도 하나를 그려본다. 물론 가설(假說)로서의 지도다. <그림참조>

가야의 최대 판도가 형성된 시기는 후기가야(연맹) 때인 5세기 후반~6세기 초다. 이 때의 영역은 경남과 경북 일부, 호남 동부까지 포함된다. 경상남도에서는 낙동강과 가까운 창녕 밀양 부산까지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가야산과 덕유산을 경계로 삼고, 서쪽은 만덕산-경각산-오봉산-내장산-무등산-천운산-제암산-방장산-존제산 등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서쪽 줄기를 경계로 그 안쪽의 섬진강 수계를 포괄한다. 남쪽은 순천만부터 낙동강 하구까지, 동쪽은 고령 이남을 기준으로 낙동강 중류의 창녕과 영산면이 들어온다.

가야는 시간적 범위로도 한국 역사상 어느 국가 못지 않다. 문헌사료로는 서기 42~562년이다(삼국유사). 고고학적 자료를 종합해 보면 철기를 수반하는 목관묘 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1세기까지 올라간다. 창원의 다호리, 사천의 늑도 유적은 가야의 전신인 변한의 문화를 생생하게 웅변해준다.

이렇게 보면 가야는 최소 500년, 최대 700년간 존속한 셈이 된다. 고려(918∼1392년)·조선(1392~1910년)의 ‘500년 왕업’은 긴 것으로 보면서 ‘700년 가야사’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은 난센스다. 더구나 가야의 시기는 민족문화의 원형이 만들어지던 때다.

가야에 대한 갖은 오해와 편견의 언덕을 비비고 헤집는 사이 성과도 있었다. 시리즈가 계속되던 지난 3월, 교육인적자원부 발간 중학교 및 고교 국사책에는 가야사 지도가 바뀌었다. 종전의 6가야 지도가 사라지고 전기가야(고교), 후기가야(중학교) 연맹을 보여주는 지도가 각각 새로 들어갔다. 주목되는 변화였다. 그에 앞서 본지는 2002년 11월 9일자 가야사 시리즈 9회분에 ‘6가야의 실체’를 다뤘다.

가야는 통념처럼 6가야가 연맹을 형성했던 것이 아니라, 최소 12개국 최대 32개국이 이합집산하며 전기·후기연맹을 만들었다. 따라서 이제 6가야는 ‘가야 제국(諸國)’으로 바꿔 불러야 옳다.

본지는 시리즈와 병행해 가야사 시민강좌 8회, 국내 답사 3회, 일본탐방 1회를 비롯해 심포지엄과 토론회,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다. 가야사 강좌에는 매회 1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가야사 답사는 호응이 높아 앙코르 행사까지 마련됐다.

10개월간의 ‘가야사 항해’를 통해 취재진이 새삼 확인한 것은, 가야문화가 낙동강 문화의 원류이자 영남문화의 맥이었다는 사실이다. 가야의 토양에서 통일신라의 화려한 문화가 움텄다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가야의 옛땅인 부산과 경남·북 지역에 사는 가야의 후예들은 오늘 가야사의 꿈을 되찾고 그 명예를 회복시킬 책무가 있다. 

/ 박창희기자 
 

◇ 가야사 주요 연표
연 대
사   건
근거문헌
BC  39년
변한이 신라에 항복
삼국사기
AD  42년 (2세기경)
수로왕, 가락국 건국
삼국유사
48년 (2세기경)
인도공주 허황옥, 수로왕과 혼인
삼국유사
189년 (3세기경)
가락국 허왕후 157세로 죽음
삼국유사
 199년 (3세기경)
수로왕 158세로 죽음
삼국유사
 209년 (4세기전반)
포상팔국 가락국 공격
삼국사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가야 공격
광개토대왕 비문
 452년
가락국 질지왕 왕후사 세움
삼국유사
 479년
가라왕 하지, 남제로부터 보국장군 본국왕 작호 받음
남제서
 532년
금관국왕 김구해 신라에 항복
삼국사기,일본서기
530년대후반
탁순국이 신라에 병합됨
일본서기
 541년
제1차 사비회의(백제와 가야연맹이 임나 논함)
일본서기
 544년
제2차 사비회의
일본서기
 551년
신라 진흥왕, 망명한 우륵의 가야금 음악을 들음
삼국사기
560년 전후
안라국이 신라에 병합 추정
일본서기
 562년
대가야가 신라공격으로 멸망
삼국사기,일본서기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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