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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답사기 4 : 집안 (국내성, 장군총) - 백유선" 중 국내성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고구려답사기 4 : 집안 (국내성) 
2005.09.14 13:35:15 백유선  

          고구려답사기 4 : 집안 (국내성) - 백유선  http://tadream.tistory.com/1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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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
 
어젯밤 약속대로 5시에 일어나 씻고 호텔을 나서니 거리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녁이면 일찍 일을 끝내서 인지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참 부지런해 보였습니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조용해서 국내성을 차분하게 살펴보기는 더없이 좋았습니다.
 
압록강을 마주하고 있는 국내성은 서기 3년 졸본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후, 427년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길 때까지, 425년 동안 고구려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 온 곳입니다. 즉,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이죠. 우리 교과서에는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는 환인보다는 넓은 지역이어서 농업과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고구려가 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국내성을 기반으로 해서이었으며, 광개토왕이 엄청나게 영토를 확장하며 국력을 과시할 때의 수도도 국내성이었습니다. 따라서 첫 도읍지였던 졸본 즉, 환인보다는 국내성이 있는 이곳 집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구려 유적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국내성은 총길이 2,686m로 일제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성벽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심하게 파괴되었다가,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대규모로 복원되어 지금은 제법 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정비 과정에서 수백 호의 민가를 헐어냈다고 하니 사회주의 국가의 추진력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중국이 이렇게 한 것이,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집안 시내 모습. 환인에 비하면 이곳은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국내성 북벽입니다. 2000여 년 가까이 된 성벽이라기보다는 마치 아파트 사이의 잘 정돈된 화단이나 정원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쪽에서 본 북벽입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죠?>
 

<국내성 북벽 서쪽 성문. 안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국내성 북벽 서쪽 성문, 바깥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2003년에 처음으로 발굴해 냈다고 합니다. 성문 바깥쪽의 양쪽에 돌출 시킨 치성을 쌓아 성문을 향해 공격하는 적군을 양쪽에서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성문 양옆에 쌓은 치성은 적대라고 합니다. 수원성에서도 적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그려본 적대입니다. 적군이 성문에 다가서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내성 서벽. 본래 지금 잔디밭으로 보이는 곳에는 민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는 세계 문화유산유산 등재를 위해 불과 1,2년 사이에 수백 호의 민가를 헐어내고 서벽을 복원하였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대편에서 본 서벽입니다. 보수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보수한 흔적이 더 잘 보이지요?>
 

<서벽 바깥쪽 압록강의 지류인 통구하입니다. 아래쪽으로 조금 가면 압록강과 만납니다. 예전에는 성벽 밖의 해자의 역할을 했을 이 강의 안개 낀 아침 풍경은 신비로웠습니다. 생각보다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진 기술이 부족해 잘 표현이 되지 못했습니다.>
 

<서벽의 치성입니다. '치'라고도 하는 치성은 성벽의 일부를 돌출 시켜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입니다. 중국의 성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기 때문에 고구려 성, 나아가 우리나라 성의 독창적인 시설물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림으로 그려본 치성입니다. 가운데 성벽을 오르려는 적을 양옆에서 공격할 수 있겠죠? >
 

<서벽의 치성 흔적입니다>
 

<서벽과 남벽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런 모퉁이에 설치된 시설물을 각대라고 합니다. 각대 위에는 건물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각루라고 합니다.>
 

<각대를 그림으로 그려본 것입니다.>
 

<조금 남은 남벽의 마지막 부분. 성벽 위에 집이 지어져 있는 이곳부터는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주변 민가에는 성벽으로 사용되었을 돌로 담을 만들기도 하는 등 성의 잔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북벽에서 본 수구로 보이는 시설물입니다>
 

<국내성 서벽으로  가장 독특한 부분입니다. 어긋문, 또는 어긋쌓기라 하여 서로 어긋나게 성벽을 쌓고 문을 낸 곳입니다. 저로서는 다른 곳에서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앞에서 본 오녀산성 동문도 이와 약간은 유사한 형태로 어긋쌓기는 옹성의 효과를 내기 위한 축성법으로 생각됩니다. 이곳도 2003년에 처음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림으로 그려봅니다.
 

<어긋쌓기. 성을 일직선으로 쌓지 않고 어긋나게 쌓아 문을 내는 형식을 어긋쌓기, 어긋문이라고 합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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