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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해 [後勃海]

발해(渤海)의 부흥국가로서 929년경 건국한 발해유민의 왕조.

발해가 멸망한 926년 이후에도 929년에 고정사(高正詞)가 발해사신으로 후당(後唐)에 사신으로 파견되는가 하면, 송대(宋代)에는 ‘오사성발해왕(烏舍城渤海王)’이란 칭호가 공식적으로 송나라에서 사용되어 후발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오대(五代) 및 송대에 외교활동을 벌였던 ‘발해’를 ‘후발해(後渤海)’ 또는 ‘오사성발해(烏舍城渤海)’라 부른다. 자료 부족으로 후발해의 건국 연대 및 지속기간, 그리고 권력기구 및 통치세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견해들 모두 후발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후발해의 건국세력에 대해서는 929년경, 대씨(大氏) 등의 어떤 세력 혹은 대인선(大諲譔)의 아우였던 대아무개 세력에 의해 건국된 것으로 본다. 그 존속 혹은 멸망 시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들이 제기되어 왔다. 후발해의 뒤를 이어 정안국(定安國)이 건국되었다고 한 점으로 보아 정안국의 건국시점인 938년 무렵에 멸망하였다고 보아 10여 년간 존속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다음으로 올야(兀惹) 정권이 거란(契丹)의 공격으로 붕괴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1007년으로 보기도 하며, 발해라는 이름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1003년경에 후발해가 소멸되었다고 보거나 『요사(遼史)』기록에 근거해 1114년경을 그 소멸 시기로 보는 견해들도 있다.

중심지는 후발해·정안국이 모두 자리잡은 압록강 유역으로 비정하기도 하고, 과거 대발해(大渤海) 수도였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지역 혹은 옛 부여부(扶餘府)에 가까운 곳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후발해의 건국은 동단국(東丹國)의 이주와 관련이 있다. 발해가 멸망한 후, 발해의 옛 수도인 상경용천부에 거란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동단국은 발해유민의 끈질긴 저항으로 요양(遼陽)으로 옮겨갔다. 이는 후발해 정권이 설 수 있는 세력이 발해가 멸망한 뒤에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후발해의 수도는 옛 발해 수도가 있던 홀한성(忽汗城)이었으며, 그 시조는 발해국의 대씨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후발해의 대씨정권은 곧 그들의 실질적 권력을 올야 출신의 오씨(烏氏)에게 빼앗겨 ‘오씨발해(烏氏渤海)’를 탄생시켰다.

후발해의 발전은 군사·외교적인 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975년 거란에게 반기를 들고 도망온 발해유민 출신의 장수 연파(燕頗)와 함께 발해의 옛 부여부를 탈환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펴기도 하였다. 또한 발해의 옛 장령부(長嶺府) 지역이었던 휘발하(輝發河: 回跋河) 유역에서의 싸움에서도 원군 7천명을 보내기도 하였으며 979년경에는 정안국의 일부 세력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한편, 외교적인 면에서는 고정사, 성문각(成文角) 등을 후당에 7차례나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발해와 중국과의 관계는 954년 7월 발해 호족〔酋豪〕 최오사(崔烏斯) 등 30인이 후주(後周)에 귀화했던 기록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의 후발해는 주로 내정과 거란과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던 것 같다.

후발해인들은 주변국가로 정치적 망명이나 이주도 했다고 생각되는데, 934년 고려에 내투한 대진림(大陳林)과 938년에 내투한 박승(朴昇) 등과 같이『고려사(高麗史)』에 나타나는 ‘발해’인들의 상당수도 후발해인일 개연성이 크다.
 

[참고문헌]

『송사(宋史)』
『책부원귀(冊府元龜)』
『오대회요(五代會要)』
『오대사기(五代史記)』
『발해 유민사 연구』(이효형, 혜안, 2007)
『발해의 대외 관계사』(한규철, 신서원, 2005)
「발해유민(渤海遺民)과 후발해(後渤海) 및 대발해(大渤海)」(김위현, 『고구려연구(高句麗硏究)』6, 고구려연구회(高句麗硏究會), 1998)
「발해유민(渤海遺民)의 고려투화(高麗投化)」(한규철, 『부산사학』33, 1997)
「발해부흥국 ‘후발해’연구(渤海復興國 ‘後渤海’硏究)」(한규철,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62, 1995)
「고려(高麗)와 발해(渤海)」(이용범, 『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後渤海の建國」(日野開三郞, 『帝國學士院紀事』2-3, 1943)
「定安國に就いて」(和田淸, 『東洋學報』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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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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