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126.22017201246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1> 최초의 영남인
패총 유적에선 선사시대 때부터 일본과 교류 흔적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1-25 20:16:22/ 본지 17면
부산 강서구 범방동 패총의 발굴 당시 모습. 작은 사진은 부산 동삼동패총에서 나온 가면 모양의 조개껍데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러분은 역사 공부가 재미있었습니까? 혹시 연대나 왕의 이름, 그리고 사건 등을 외우기만 해야 하는 지겨운 과목쯤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는지요? 더군다나 개인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이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신성한(?) 구절만을 외쳐야 하는 부담으로 남지는 않았는지요?
원래 역사란 그렇지도 않은데, 우리의 역사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 것이 되었을까요? 역사소설은 재미있는데, 역사는 재미없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위안을 주고, 문화로서 공유할 수 있는 역사가 적은 우리 현실이고 보면, 이런 불평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선은 역사학자들의 책임이겠지요. 연구 축적의 부족에 학문적 방법과 기술만 중하게 여겨 왔던 잘못입니다. 연대와 사건 이름 정도가 구성된 역사는 X선 사진 같습니다. 이런 사진에서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겠죠.
다행히 이제는 어느 정도 연구도 축적되었고, 근년에는 젊은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쉽게 씌어져 읽히는 역사, 읽혀 즐길 수 있는 역사, 즐기며 느낄 수 있는 역사'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학문적 연구와 대중적 교육의 역사 모두에 동등한 의미를 두려는 움직임들입니다.
이번에 여러분과 함께 떠나는 가야사 여행도 그러한 기획의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함께 떠나는 이야기 가야사 여행은 우리 지역의 역사를 둘러보고 지역적 전통이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가야사가 전개되었던 대강의 줄거리와 함께, 우리 지역에 산재하는 가야의 문화유적을 따라가며, 거기에 얽혀진 가야인 들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 여행을 떠나기로 하겠습니다.
신석기인의 쓰레기장
아직 가야는 아니지만, 영남지역에서 처음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흔적은 7000년 전 이상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근 부곡온천의 아랫동네에서 발굴조사 된 창녕 비봉리유적에서는 통나무배, 망태기, 많은 조개껍데기와 도토리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통영 연대도, 부산 동삼동과 범방동, 김해 수가리 패총유적 등에서는 5000~4500년 전의 삶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던 무렵입니다. 패총(貝塚)은 최초의 영남인들이 버렸던 쓰레기들이 조개껍데기와 함께 쌓인 유적입니다. 잡아먹었던 많은 양의 조개껍데기와 함께 여러 생활도구들이 버려졌습니다. 현대의 쓰레기장에서 우리들의 생활이 잘 나타나듯이, 패총은 최초 영남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2002년 문을 연 영도 동삼동패총전시관에 가면 최초 영남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많은 조개류를 비롯해 뗀석기 간석기 숫돌 같은 석기들, 돋을새김무늬와 빗살무늬 같은 토기들, 동물 뼈로 만든 낚시바늘 같은 뼈연모 들이 있습니다. 40여종이나 되는 조개류는 거의가 바다에서 채집되는 것들로, 지금은 남해고속도로의 개설과 경마장의 건설로 소멸되어 버린 김해의 수가리패총과 강서구의 범방패총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범방패총에서는 130cm에 11~13세 정도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되었습니다. 범방아이라 이름 부쳐진 최초의 영남지역 어린이의 모습일 겁니다.
이러한 남해안의 신석기인들은 수렵과 어로를 중심으로 생활하였고, 아직 본격적인 농사는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 모래밭에 꽂아 쓰기 편리한 뾰족 바닥의 그릇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조개 팔찌와 발찌 같은 장신구로 멋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의 왜인들과 교류하고 있었던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통영 부산 김해의 패총유적에서 발견되는 흑요석(黑曜石)은 까맣고 반질반질한 화산암으로 화살촉 만들기에 좋은 재료입니다.
남해안에서는 나지 않기 때문에 화산이 많은 일본의 큐슈 북부지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5000~6000년 전 최초의 영남인 들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의 왜인들과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동삼동패총에서는 통나무배 모양의 토기와 함께 일본열도의 죠몽토기도 출토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말도 말고 탈도 많은 한일관계사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약력
△인제대 박물관장
△저서 '가야제국과 임나일본부' 등
△가야사 및 고대한일관계사 분야에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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