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15738

무솔리니, 히틀러, 차우셰스크나 싱글세 매겼다
"싱글세는 국가주의 독재자들이 도입했던 시대착오적 망상"
2014-11-12 14:06:51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의 '싱글세(독신세)' 발언으로 SNS가 발칵 뒤집히면서, 싱글세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싱글세가 첫 공론화된 것은 2005년 LG경제연구원을 통해서였다. 

당시 LG경제연구원은 <저출산 시대의 경제 트렌드와 극복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과거 로마시대에 저출산으로 고민하다가 독신상태에 대해 불이익을 주기 위해 도입했던 독신세를 도입, 일정 연령이상의 독신 근로자에게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도 이 주장은 지금 못지않게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고 퇴장 당했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싱글세의 역사적 기원은 기원전 18년에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도입한 '정식 혼인법'이다. 

핵심 내용은 독신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상속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부유한 남성이라도 무자식이면 상속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여성은 일종의 '독신세'를 매년 내야 했다. 결혼을 해도 면제되지 않았고 셋째 아이를 낳아야만 비로소 납세 의무에서 해방됐다.

이렇듯 기원전에 도입됐다가 그후 2000년 가까이 자취를 감추였던 싱글세는 20세기 들어 화려히 부활했다. 싱글세를 부활시킨 통치자들의 공통점은 '독재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1927년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남성 독신세를 신설했다. 그 뒤를 이어 독일 히틀러 역시 1933년 집권하자마자 독신세를 통한 결혼의 권장을 최우선 정책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들 파시스트의 전통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크에게 승계됐다. 차우셰스크는 1966년 피임을 불법화했다. 법령에 따르면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하는 여성은 임금의 10%까지 ‘독신세’를 물어야했다. 낙태를 막기 위해 45세 이하의 여성들은 모두 정기적으로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렇듯 싱글세는 '국가주의적 발상'에서 도입됐다가 그후 뭇매를 맞고 도태된 시대착오적 법이다. 더욱이 지금 우리나라의 극심한 저출산은 본인들의 의지가 아닌, 극심한 경제난과 살인적 보육-교육비 등의 복합적 산물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 고위관계자가 저출산 대책으로 "싱글세" "패널티" 등을 거론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정부의 수준을 보여주는 해외토픽감이다.

박태견 기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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