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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손(金慶孫)
? ~ 1251(고종 38)

여몽전쟁 때 대활약한 고려시대의 명장. 전대의 유금필, 양규, 척준경이나 후대의 최영, 이성계 못지 않은 고려의 용장 중 한 사람이다.
 

1. 어린시절 

어릴때 이름은 김운래(金雲來), 본관은 경주지만 전주 김씨가 된다.[1] 평장사(平章事) 김태서(金台瑞)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때 그의 어미가 오색의 구름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푸른 옷을 입은 아이 하나를 둘러 싸고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를 가졌다고 한다.

외모가 몹시 빼어났고 머리위에 용발톱 처럼 튀어나온 뼈가 있었다고 고려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성품은 장중하고 온유했으며 지혜와 용기가 다른 사람보다 빼여났다. 다만 한번 화가 나면 수염과 머리털이 꼿꼿히 선다고 기록한다.

常處室 必著皂衫如對賓 怒則鬚髮輒竪。
방에 있을때도 반드시 조삼을 입고 손닙을 대하듯 예를 차렸으며 화가 날 때면 수염과 머리텃이 꼿꼿이 일어섰다. - 《고려사》 김경손 열전
 
처음 음관(蔭官)으로 관직을 시작했다. 그의 형인 김약선은 바로 최우의 사위이며, 아들로는 김혼이 있다.
 

2. 활약

2.1. 몽고 1차 침략 

高宗十八年 爲靜州分道將軍 蒙古兵渡鴨綠江 屠鐵州 侵及靜州。
고종 18년(1231) 정주(靜州)[2]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몽고군이 압록강을 건너 철주(鐵州)를 짓밟고 정주까지 침범해왔다.
 
몽고의 1차 침입이 있던 해인 1231년 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인 정주에서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근무했다. 몽골군의 선발대가 정주까지 침입하자 김경손은 결사대 12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와 힘껏 싸워 몽골군을 격퇴 시켰다. 하지만 본대가 침입하자 정주의 모든 사람들이 숨거나 도망가버렸고 김경손이 성에 돌아왔을때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단 12명의 병사들과 함께 정주성을 탈출, 7일간 몽골군과 조우하지 않고[3] 인근 귀주[4]로 이동하여 서북면 병마사 박서와 함께 귀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귀주성 전투에서는 12명의 용사와 함께 몽골군 진지를 크게 들쑤시고 귀환했으며, 몽골군의 투석기에서 날아온 바위가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 뒤의 병사가 그 바위에 맞아 죽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부하들이 자리를 옮기자고 했으나 김경손은 태연히 문루에 앉아 병사들을 지휘했다고 한다. 척준경 못지 않은 소드마스터용력과 상당한 담력의 소유자였던 듯.

"외로운 성에서 약한 군졸로 천하의 사납고 날랜 강성한 오랑캐를 막아 동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를 산악처럼 우뚝 서게 하였다. 우리 동방에서 성을 잘 지킨 것은 안시성 이후 또 귀주가 있으니, 박서와 김경손의 공은 작지 않은 것이다" - 《동국통감》의 저자 서거정
 
그덕에 1232년 몽고 1차침입이 끝나고 최씨일가의 칼바람에서 벗어 날수 있었다.[5] 이후 대장군(大將軍)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임명되었다.


2.2. 이연년의 난

몽고의 2차 침입 당시 몽고군과의 대적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1237년 봄. 전남 담양의 이연년 형제가 일으킨 반란이 세가 커져 광주까지 넘어가게 되자 조정에선 그를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에 임명해 파견하는데 그때 딸려보낸 군사는 30명...나주에 도착해 나주 군현의 사람들을 모아 금성산신(錦城山神)[6]에게 제사지내고 향리들을 선별해 30명의 별초를 뽑은후 "너희 고을은 어향(御鄕)[7]이니 다른 고을처럼 적에게 항복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이연년의 난을 진압했다. 《고려사》에는 이연년이 김경손을 붙잡기 위해 부하들에게 짧은 무기만 쓰도록 했고 그 틈을 타 김경손이 돌격해 대승을 거뒀다고 씌여있다. 이공으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승진하였다.


3. 이후 이야기 

1245년 최우의 숙청이 시작되었을 당시 어떤 사람이 그를 모함했으나 거짓으로 밝혀져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전직되었다.

1249년 김미[8]가 반란을 도모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거절하고 그를 고발하기도 했던것을 보아 우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인 1250년 최우의 뒤를 이은 최항이 그의 정권을 다지기 위해 숙청을 시작하였고 그 숙청명단에 포함된 김경손은 백령도로 귀양을 간다. 원래 최항은 어미가 천한 서자였기 때문에 최우가 승려로 만들었고 대신 사위 김약선을 후계자로 공인했으나 최항은 누이, 그러니까 김약선의 부인과 공모하여 김약선을 모함해 죽이고 자신이 후계자 자리에 올랐던 것이고, 따라서 김약선의 동생 김경손은 최항의 숙청 대상 1호격이 된 것이다. 1251년. 바다에 던져진 오승적[9]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그를 죽이고 그 주변인들을 죽이거나 귀향을 보내는데 김경손 또한 오승적의 인척이 된다 하여 배소에 보내어 바닷물에 던져져 죽었다.

몽고 1차친입을 저지한 영웅의 끝자락이 너무 허무하다면 기분탓이겠죠

그의 죽음을 《고려사》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慶孫累立大功 朝野倚重 遽爲奸賊所害 人皆痛惜。
"김경손은 여러 번 큰 공을 세워 조야에서 그를 의지하고 높이 받들었는데, 갑자기 간악한 도적에 의해 살해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였다."
 
참고로 훗날의 김일성이랑 같은 전주 김씨이다. 조상은 외적의 침입을 격퇴했지만 숙청당한 위대한 인물로 남았고, 후손은 외적의 힘을 빌어 같은 민족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4. 창작물에서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창작물에 많이 등장한 사람이다. 그가 나오는 창작물은 만화 살례탑이 있는데 중요한 조연이지만 역사와는 달리 귀주성 전투가 끝나고 전사한다.

몽골 제국이 주역으로 나오는 코에이의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에서 고려의 장수로 등장한다. 3편인 원조비사에서는 시나리오 2에서 고려의 장군으로 등장하는데 전투력과 매력이 B이고 정치력과 지도력이 C. 이 게임에서 이만하면 그럭저럭 쓸만한 장수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어쩐 일인지 고종의 사위로 등장한다.

징기스칸 4에서도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전투치가 67로 김통정이나 이성계가 등장하기 전에는 이 전투력이 고려 최강의 전투력이다. 다른 능력치는 정치 43, 지모 49에 병과적성은 보병, 궁병, 기병, 수군 순으로 각각 B,C,C,C. 전투 특기는 돌격만을 소유하고 있다. 사실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짠 게임이라서 67 정도면 나쁜 능력치는 아니긴 하지만 귀주성에서의 활약을 생각하면 더 높이 평가되었어도 좋았을 무장이다. 그리고 이 능력으로는 몽골군을 상대하기는 역부족. 특히 몽골과 일촉즉발 상태인 PK 시나리오 3에서는 김통정이 등장할 때까지는 김경손으로 버텨야 한다.

MBC 드라마 무신에서 배우 김철기이 연기했다.


주석

[1] 1254년에 그의 아버지와 형제, 자손들이 전주로 이주하면서 전주 김씨가 생기기 때문에 생전에는 전주 김씨가 아니었다.
[2]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
[3] 이때 불타는 정주성안에서 숨어있다 나와서 배가 고프면 살코기(不火食, 익히지 않은 고기)를 먹어가며 버텼다고 전해진다.
[4] 바로 귀주대첩이 일어난 곳이다.
[5] 그런데 이 시기에는 그의 형 김약선이 최우의 후계자로 공인되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패하고 돌아왔어도 칼바람은 안맞았을 것이다.
[6] 나주의 신으로 조선시대에도 신앙이 유지되었다. 여담이지만 금성산신 신앙은 조선시대 지배층에게 심심치 않게 까였다.
[7] 나주는 왕건의 둘째 왕비 장화황후의 고향이었기에 왕의 고향과도 같았다.
[8] 당시 김경손은 그의 백부였다.
[9] 최항의 계모인 대씨의 아들이었다. 대씨의 전 남편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에 재혼은 귀족간에도 일어나는 일임을 알수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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