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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이순신 이야기-24, "지기지피(知已知彼) 손자를 누르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ilyo@ilyoseoul.co.kr [1038호] 승인 2014.03.24  14:49:54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싸워도 백번 승리한다!” 《손자병법》은 몰라도 이 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보았음직한 말이다. 《손자병법》이 가르쳐주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전략의 첫걸음, 기업 세계나 일상생활에서의 성공의 첫걸음은 모두 같다. 지피지기(知彼知己)가 가장 중요하다.
   

▲ <한산해전도>
 
지피지기(知彼知己)? 
지기지피(知已知彼)!

《난중일기》에도 《손자병법》에서 언급한 ‘지피지기知彼知己’가 두 번 나온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已知彼, 百戰不殆. 지기지피, 백전불태)’고 하지 않았나!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생각하니 나랏일이 위태롭지만 안으로 구제할 계책이 없다. 어찌해야 하나. 
(1594년 9월 3일).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고(知己知彼, 百戰百勝. 지기지피, 백전백승),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질 것이다(知己不知彼, 一勝一負. 지기부지피, 일승일부).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不知己不知彼, 每戰必敗.&#160;부지기부지피, 매전필패).” 이는 만고의 변함없는 이론이다. (1594년 11월 28일 일기 뒤의 메모)

그런데 이순신의 일기에 기록된 것을 《손자병법》과 자세히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다.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知彼知己)’”라고 했지만, 이순신은 “나를 알고 적을 아는 ‘지기지피(知己知彼)’”라고 했다. 사람에 따라 ‘지피지기(知彼知己)’와 ‘지기지피(知己知彼)’가 뭐 크게 다르겠느냐고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적을 먼저 고려하느냐 아니면 나를 먼저 고려하느냐의 우선순위 차이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중요도에 따라 순서의 앞뒤가 있다. 그러면 이순신이 《손자병법》을 잘못 읽었거나, 일기를 쓸 때 오기(誤記)를 한 것일까.

이순신이 잘못 읽거나 오기를 한 것이 확실히 아니다. 특히《손자병법》은 조선시대 무과시험의 필수과목이었고, 무인들의 필독서였다. 심지어 문신들은 물론 왕까지도 공부를 했던 책이다. 이순신은 《손자병법》의 중요한 원칙을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도 인용했고, 실제 전투를 할 때도 작전을 할 때도 《손자병법》을 충실히 따랐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장수들의 필수 학습 병법책들인 <무경칠서(武經七書)>에도 통달했고, 응용력도 대단했던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임진왜란 중에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사책까지도 읽을 정도였다.

그는 또한 《난중일기》나 《임진장초》를 쓸 때 글자 한 자 한 자 언제나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생각을 상황에 맞게 정확히 표현할 글자를 찾아 썼다. 잘못된 정보를 듣고 쓴 일기의 경우는 사실이 확인된 후에는 일기도 수정했다. 명량해전 직전의 일기에 들어 있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그가 상황에 따라 고전 원문을 변형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말은 본래 《오자병법》의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는다)”를 바꾼 것이다. 13척으로 수백척의 일본 전선과 맞서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장졸들의 분발을 촉구하려고 보다 ‘幸(행)’ 대신 ‘必(필)’로 강력하게 바꿨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글자 중 오자(誤字)를 살펴보면, 대부분 사람 이름이나 지명의 오자이다. 사람 이름의 경우는 한문으로 이름을 제대로 짓지 못할 상황에 처한 노비나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지명 역시 오늘날처럼 확정적으로 지명을 한문으로 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해의 수많은 섬들을 한문으로 하나하나 표기하는 것은 지금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오자도 불과 몇 십자 되지 않는다. 노승석 교수가 초서본 《난중일기》에서 찾은 오자를 분석해 보면, 전체 약 7만5천자 중 63개 정도이다. 사람 이름이 20회, 지명과 숫자는 각각 2회이며, 나머지는 비슷한 글자의 오기이다. 이순신이 고전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글자의 경우는 한문 글자 자체가 뜻을 현저히 바꿀 수 있는 오자는 없다. 이순신이 다른 책의 문구를 변형해 인용한 것은 대부분 특정한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경우에 한정된다.

현실 직시 
지기(知己)의 시작

때문에 《난중일기》에 기록된 ‘지기지피(知己知彼)’는 잘못 쓴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순신이 의도적으로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다. 이순신은 손자와 달리 ‘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순신도 손자처럼 상대를 아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이순신이 적보다 먼저 ‘나’를 강조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침략자인 일본군에 비해 모든 것이 열세인 상황에서 조선군의 장점을 발견해 키우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본군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 전투력의 우위로 무장했다. 반면 조선군은 오랜 평화에 젖어 겁쟁이로 전락해 있었다. 또한 자기 땅을 빼앗긴 입장, 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입장에서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는 먼저 장점을 찾아 개발해야 했다. 

이는 이순신의 무한 긍정주의 사고방식인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나 있습니다”와 마찬가지 관점이다. 적선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군사와 백성들의 자신감의 회복, 죽을 각오로 싸울 용기가 더 절실했다. 때문에 이순신은 ‘지피(知彼)’ 보다 ‘지기(知己)’에 먼저 초점을 두었다.‘지기(知己)’를 ‘지피(知彼)’보다 우선하는 사고법은 자신의 단점과 상대의 장점을 먼저 고려하는 마이너스 사고가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해 장점을 확대하는 플러스 사고이다. 그런뒤 적의 단점을 찾는 방식이다.

그러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인 자신을 알고 적을 아는 것은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자신을 아는 것은 상대를 아는 것보다 때때로 더 어렵다.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고, 스스로는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자신의 친구, 자신의 가족을 보면 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도 아니다. 늘 가까이 있고, 함께 하며,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동반자이고, 또 다른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장점이 나의 장점이고, 그들의 단점이 나의 단점이다. 장점은 더 키우고, 단점은 함께 반성하며 고쳐나가야 한다. 또한 ‘지기지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이겨야’ 한다. 그것이 지기지피의 본래 목적이기 때문이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9스타북스,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 보완한것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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