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reamind.co.kr/html/organ/hangang.hwp (문서파일)
* "한강하구를 둘러싼 고대국가들의 각축전 -윤명철" 중 "◇참고사항◇ - (1) 아차산성"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 "한강하구를 둘러싼 고대국가들의 각축전 -윤명철" 중 "◇참고사항◇ - (1) 아차산성"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아차산성
아차산 일원은 의정부와 양주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마지막이며 이 산줄기의 좌측에는 중랑천, 우측에는 왕숙천을 낀 비교적 넓은 평지가 분포되어있다. 아차산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즉 책계왕 원년(責稽王 元年, AD 286년)에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하여 아차성(阿且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였다. 또 개로왕 21년(AD 475)에 고구려 장수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내려와 한성을 공격하여 점령한 다음에 개로왕을 포로로 삼아 아차성(阿且城) 아래에서 죽였다. '대동지지'에는 ‘양진성(楊津城)은 아차산(莪嵯山)의 동쪽 절벽 광진(廣津)의 위에 있는데 한수(漢水)에 임하여 광주(廣州)의 평고성(坪古城)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고 하여 현재의 아차산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아차산성은 산 정상부를 돌아가며 축성한 테뫼식과는 달리 아차산 능선 말단부 지역을 적절히 이용하여 작은 계곡이 포함되도록 함으로써 성내에 우물과 작은 개울이 흐르는 포곡식산성이다. 전체의 길이는 1,125m이고 내부면적은 25,000평이다. 장대지에서는 서울시내 전역과 한강변 일대 풍납토성·몽촌토성·이성산성·남한산성·북한산성·암사동토성·구산토성·남한산성·이성산성까지 한 눈에 조망되는 중요한 위치이다. 채집된 유물은 와편이나 토기편 중에 고구려나 백제토기로 판단되는 것도 한 두점 있지만 신라토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결국 이러한 역사 교차지역이 가진 특성이지만 삼국이 골고루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주석
주석
21) '대동지지(大東地志)' 卷3, 경기도(京畿道), 양주(楊州), 성지조(城池條) : 양진성재아차산동애광진 상(楊津城在峩嵯山東崖廣津 上), 부임한수여광주평 고성(俯臨漢水輿廣州坪 古城), 격강상대(隔江相對)
22) 명지대학교가 이 산성을 발굴하면서 신라토기를 대량으로 수습하였다.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 '아차산성 ‘96 보수구간 내 실측 및 수습발굴보고서', 광진구청, 1998; 아차산성발굴조사단(峨嵯山城發掘調査團), '아차산성발굴조사약보고(峨嵯山城發掘調査略報告)', 1999.
23) 1998년 조사시에는 10,328.58m로 실측되었다.(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 '아차산성 기초학술조사보고서', 광진구청, 1998, 42쪽.
24) 심광주·윤우준, 「문화유적」, 앞의 책, 구리시·구리문화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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