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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7.5년’… 한국의 좌표를 찍어보자
박근혜 정부가 8월25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이명박 정부까지 포함해 보수 집권 7.5년이다. <시사IN>은 글로벌 지표를 활용해 ‘보수 집권 1.5기’를 평가했다. 정부 능력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관성 있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조회수 : 5,545 | 천관율·신한슬·이상원 기자 | webmaster@sisain.co.kr [414호] 승인 2015.08.24 03:51:31
박근혜 정부는 8월25일에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전임인 이명박 정부까지 포함하면 보수 집권 1.5기를 채우게 된다.
“보수는 부패했고 진보는 무능하다.” 대중의 통념에 자리 잡은 두 진영의 인상은 대체로 이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보수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렀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탈법 이력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패할지언정 유능한 보수’를 뽑겠다는 정서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정말로 보수는 부패할지언정 유능할까. 정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지지하는 노선과 진영에 따라 갈리게 마련이어서, 국내에서는 어떤 평가지표를 동원한다 해도 그저 진영 논리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정치 양극화의 시대에 객관적이라고 공인된 논평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시사IN 조남진
<시사IN>은 글로벌 지표를 활용했다. 국제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국가나 정부 평가지표들이 있다. 다보스 포럼(정식 명칭은 ‘세계경제포럼’이다)이 매년 내놓는 국가경쟁력 지수, 프리덤하우스가 내놓는 세계자유지수, 세계은행이 내놓는 거버넌스 지표 등이 그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글로벌 NGO들도 각각의 활동 영역에 맞는 지표를 제공한다. 이들 기관이 한국의 사정을 국내 당사자만큼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신 국제사회에서 ‘한국호’가 어디쯤 항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보수 정부 1.5기의 글로벌 성적표다.
<시사IN>은 주요 국제 지표들 중에서 다보스 포럼과 프리덤하우스 지표를 주축으로 살펴보았다.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다보스 포럼과 프리덤하우스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나 미국적 자유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한국 보수가 앞세우는 이념 성향과 비슷하고, 보수 정부에 유리한 평가 잣대가 많다. 정부가 지표의 편향성을 문제 삼기 힘들다. 둘째, 다보스 포럼은 특히 정부 평가라는 주제에 맞는 세부 지표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진보 정부 2기)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7.5년(보수 정부 1.5기)을 비교할 수 있다.
언론은 다보스 포럼의 조사 결과를 종합점수 격인 국가경쟁력 지수 위주로 보도해왔다. <시사IN>은 세부 내역으로 들어가 ‘현 정부의 능력’을 직접 평가하는 지표 12개를 추출했다. 예를 들어 ‘사법부의 독립성’은 분명 정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항목이지만 ‘시장 크기’는 그렇지 않다(20쪽 상자 기사). 진보 정부 2기와 보수 정부 1.5기가 어떤 성적표를 받았는지 그래프로 그린 결과가 16~17쪽 <그림 2>부터 <그림 9>까지다.
결과는 ‘종합점수’로 보던 인상보다 훨씬 적나라하다. 보수 정부는 정부 능력 영역에서 일관성 있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세부 지표 12개 중 5개가 이명박 정부 임기에서 국제 순위 최저점을 찍었다. 6개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최저점을 찍었다. 진보 정부 시절에 최저점을 찍은 지표는 한 개다. ‘창업 절차 개수’(<그림 9>)다. 반면에 12개 지표 중 8개가 2007년에 최고점을 찍었다. 이해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다.
뜯어보면 더 의미심장하다. <그림 2>를 보자. 보수의 대원칙인 ‘재산권 보호’ 평가지표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후 대폭 개선이 되어야 할 지표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22위로 정점을 찍은 ‘재산권 보호’ 순위는 2009년 47위로 추락하더니, 지난해에는 66위까지 떨어졌다.
<그림 3>은 ‘정부 규제 부담’ 지표다. 순위가 높을수록 규제 부담이 적은 것이다. 규제 완화를 주문처럼 외는 한국 보수를 생각하면 이 지표는 정권 교체 이후 가장 크게 상승해야 한다. 실제로는 가장 크게 떨어졌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한국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규제 부담이 적은 국가로 평가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117위로 109계단 추락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95위와 96위로 제자리걸음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부 정책 투명성 지표 ‘최악’
보수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부의 전횡이다. 정부의 권한 남용이야말로 시민의 자유를 파괴하는 위협이라는 믿음이 보수의 핵심 가치다. 행정부의 전횡을 제어할 중요한 방파제가 사법부 독립이다. 평가 결과가 <그림 4>다. 2007년에는 35위였다. 법치주의를 외치는 보수 정부가 들어선 후 이 지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82위로 최저점을 찍었다.
보수의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정부란 무엇보다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어야만 정부를 감시할 수 있고, 그래야 정부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다. <그림 5>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성적표가 30위로 가장 좋다. 보수의 원칙대로라면 이 지표의 상승세 역시 뚜렷해야 한다. 현실은 추락폭이 100계단이 넘는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성적이 137위다. 12개 정부 평가지표 중에서 결과가 가장 나쁘다.
‘나쁜 정부’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국민 전체보다 특정 진영의 편을 들고, 부패로 공적 자산 손실을 일으키며, 정부 지출을 엉뚱한 곳에 낭비한다면 나쁜 정부일 가능성이 높다. 순서대로 <그림 6> <그림 7> <그림 8>이다. 편파성은 15위(2007년)에서 94위(2011년)로 나빠졌다(순위가 낮을수록 편파성이 높다는 의미다). 보수는 노무현 정부 임기를 진영론이 판치던 시절로 기억하지만, 국제 지표는 보수 집권 이후 한국 정부가 더 편파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부패는 26위(2007년)에서 67위(2014년)로 나빠졌다. ‘보수는 부패할지언정 유능하다’는 명제의 절반은 참일지도 모른다. 낭비는 22위(2007년)에서 107위(2012년)로 나빠졌다.
14쪽 <그림 1>은 지금까지 살펴본 8개 지표 중 7개가 포함된 상위지표인 ‘공적 제도 평가’다(<그림 9>의 창업 절차 개수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일종의 종합성적표다. 2007년 22위로 최고점을 찍고 2014년 77위까지 떨어진다.
정부의 성적을 측정하는 12개 지표 중 지면상 <그림 2>에서 <그림 9> 중 빠진 지표는 모두 넷이다. 정치인 신뢰도는 22위(2007년)에서 117위(2012년)로 떨어졌다. 교육 체계의 질은 19위(2007년)에서 73위(2014년)로 떨어졌다. 은행 건전성은 51위(1999년)에서 122위(2014년)로 떨어졌다. 창업 준비일수 지표는 최고점과 최저점이 모두 보수 정부에서 나왔다. 2014년 18위가 최고점, 2011년 58위가 최저점이다. 다보스 포럼의 나머지 지표들은 정부 자체의 능력보다는 민간의 역량이나 외부 환경과 긴밀하게 엮여 있어 제외했다.
아래 <그림 12>는 다보스 포럼의 2007년 한국 국가경쟁력 지수와 2014년 지수를 요약해 한 장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12시 방향의 ‘제도 영역’에서 붉은색 그래프(2014년)가 움푹 꺼져 있다. 국가경쟁력의 여러 영역 중에서 제도 경쟁력이 특히 낮다는 의미다. 정부가 전체 국가 역량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반대로 갈색 그래프(2007년)에서는 12시 방향에서 제도 경쟁력의 ‘함몰’이 나타나지 않는다.
보수 정부는 국가경쟁력의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보수는 왜, 어떤 식으로 무능한가.
2007년 8월20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위 왼쪽). 이명박·박근혜 정부 집권기가 7.5년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정부의 능력이라는 말을 들을 때 국내 여론은 대체로 추진력·기획력·과단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박정희 모델에서 비롯된 ‘명령하는 정부’가 유능한 정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수가 더 유능하리라는 대중의 통념도 어느 정도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적절히 차용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직계 혈육이다.
반면 국제사회가 정부를 평가할 때 쓰는 척도는 국내 여론의 눈에는 아주 낯설다. 투명성과 사법부 독립성이 높아야 하고,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며, 과도한 규제와 편파성과 부패를 방지해야 한다. 과단성 있게 휘두르는 정부가 아니라, 스스로를 제도로 구속할 줄 아는 정부를 국제사회는 유능하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목표를 설정해서 끌고 가는 개발국가 모델로는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각 부문의 자발성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정부의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언론의 자유나 정치적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한국 여론 일각에서 배부른 소리 취급을 받아왔다. ‘유능한 정부냐 민주적인 정부냐’라는 양자택일이 마치 중대한 질문인 양 제기되곤 했다. 하지만 ‘자기를 구속할 수 있는 정부가 유능하다’라는 국제사회의 관점으로 보면, 언론 자유와 정치적 자유야말로 유능한 정부의 증거가 된다. 이 둘은 정부를 구속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언론자유지수·정치적 권리지수 동반 하락
미국의 국제 인권 감시기구인 프리덤하우스는 언론자유지수와 정치적 권리지수를 매년 발표한다. 한국은 언론자유지수가 계속 하락해오다가, 2011년에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되었다(17쪽 <그림 10>). 프리덤하우스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 표현의 자유는 뚜렷한 하락세다”라고 썼다. 2005년에 1등급으로 승급한 정치적 권리지수 역시 2011년에 2등급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그림 11>).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혐의를 포함한 권력 남용과 부패 스캔들이 이유로 지목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후퇴인 동시에 정부 능력의 후퇴다.
한국의 보수 정부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구속하는 능력’에서 끔찍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자기 구속보다는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추구하며, 박정희식 명령하는 정부 모델로 현대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태도를 두 보수 정부가 보여주었다. 투명성 지표가 특히 나쁜데(2014년 133위), 이러면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신뢰가 생기지 않고, 신뢰 고갈로 자발성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게 된 정부는 결국 무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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