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764
숨길 게 많았던 박근혜, 언론통제와 여론조작으로 버텼다
[김영한 비망록과 청와대 언론탄압] KBS·JTBC 심의제재 압박하고 세계일보엔 ‘공격방안’ 지시, 日 가토 다쓰야 기소까지 개입정황…전 방위적 보도통제 목적은 ‘국정농단 은폐’
정철운·김도연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6년 12월 07일 수요일
11월14일 TV조선을 통해 처음 공개된 故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의 핵심은 “비판언론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라”(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였다. 2014년 7월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할 때 김기춘 비서실장은 언론 탓을 했다. 김기춘 실장은 대통령의 인사 참사를 비판했던 언론을 두고 “일방적 지적, 비판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며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청구 등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철저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박근혜정부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최순실게이트만큼 언론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번 비망록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14일부터 정윤회 비선실세 파문이 불거진 2015년 1월9일까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영한 민정수석이 작성한 메모로, 박근혜정부의 언론탄압지침이 기록돼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황만 △JTBC 심의제재 △공영방송 이사 성향 파악 △가토 다쓰야 기소 개입 △세계일보 공격 △시사저널·일요신문 탄압 △채널A 프로그램 폐지 △YTN해직자 사찰 등이다. 야3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를 침해한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박근혜정부의 언론탄압은 세세하고 집요했다. 2014년 8월27일자 중앙일보 “세월호 악순환의 고리를 풀 방법은 없는가”란 제목의 사설은 “집권 여당과 대통령이라도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야당 탓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썼다. 사설의 전체 논조는 야당 비판에 가까웠지만 비망록엔 ‘논조 이상’이라고 적혀있었다. 청와대는 사설 하나에도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해 8월14일자 메모인 “KBS, VIP 행적 보도”의 경우 8월13일자 KBS ‘뉴스9’에서 청와대가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 밝힌 세월호 당시 대통령 행적이 보도된 것을 주시한 기록이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KBS보도국장에게 “하필이면 (대통령이) 봤네”라며 보도를 통제했던 장면이 오버랩 된다.
비망록에 언급된 ‘문제의’ 프로그램은 곧바로 폐지되기도 했다. 2015년 1월4일자 비망록엔 “채널A기자 ‘세습’ 발언 방통위(방송통신심의위) 조치토록 할 것”이 적혀있었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발언은 채널A ‘청와대25시’ 1월3일자 방송에서 나왔다. 진행자인 이남희 앵커(당시 청와대 출입기자)가 ‘세습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놀랍게도 1월3일자 해당 방송 민원은 그해 1월 15건이나 접수됐다. 심의 결과는 법정제재가 아닌 ‘권고’에 그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당시 이기홍 채널A 보도본부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앵커가 해당 표현(세습정치)을 쓴 것은 박근혜 정부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오히려 정 반대”라고 해명했으나 “이번 의견진술 요청이 계기가 돼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압이 없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근혜정부의 언론관 = “열정 대처”, “면종복배”
박근혜정부에서 납득하기 어려웠던 언론탄압조치들은 비망록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방송사 가운데는 신뢰도와 영향력이 높은 KBS와 JTBC에 집중되어 있었다.
2014년 6월26일자 메모에는 “KBS 추적60분 천안함 관련 판결-항소”라고 기재돼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추적60분 ‘천안함 의혹’편에 대한 방통위의 경고(중징계) 처분은 위법하다는 1심 법원 판결이 나온 뒤 곧바로 항소했다. 이 같은 항소는 사내 제작자율성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7월2일자에는 ‘문창극 KBS보도-중징계-방심위’란 메모가 남아있다. 7월1일 방심위 보도교양특위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KBS뉴스와 관련해 중징계 의견을 냈다. 그해 9월5일에는 ‘방심위, 문창극 관련 지도’란 기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강한 의지. 열정 대처 – 체제 수호 → 유념’ / ‘전사들이 싸우듯이 ex 방심위 KBS 제재심의 관련’. 전사가 되어 언론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대목으로, 그 수단은 ‘심의제재’다.
▲ 2014년 9월15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JTBC 화면 갈무리.
JTBC가 두시간 짜리 메인뉴스 ‘뉴스룸’으로 개편을 준비하던 지난 2014년 9월, 청와대는 이를 주시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을 활용한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비망록 9월15일자를 보면 “JTBC 22일부터 8시 뉴스 개시”, “보수 분위기 기조에 악영향 우려. 적극적 오보 대응 및 법적 대응 요구”, “방심위 제소 활용” 등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해 6월 비망록에는 ‘JTBC 뉴스가치 왜곡사례-list up’이라고 적혀있었다. 청와대는 JTBC가 오보를 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JTBC는 각종 심의제재에서 제재 건수는 적지만 제재수위는 늘 높아서 정치 심의를 받고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JTBC는 비망록 이전 시기부터 청와대의 ‘집중 관리’를 받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JTBC는 2013년 12월19일 방심위로부터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과 인터뷰한 것이 편향적이었다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별점 4점)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중앙일보·JTBC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뉴스의 본질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히며 “JTBC 뉴스는 이날 정부의 통진당 해산심판청구 내용을 두 꼭지에 걸쳐 보도하는 등 해당 이슈에 대한 고른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방심위 결정을 비판했다.
심의를 넘어선 인사개입 정황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해 7월4일자 메모에는 “KBS 이사 우파 이사 - 성향 확인 요”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 KBS 양대 노조 파업으로 길환영 전 사장이 물러난 뒤 후임 사장이었던 조대현 KBS 사장 후보자로 기우는 KBS 여당 추천 이사들이 누구인지 ‘색출’에 나섰던 대목이다. 7월9일 조대현 전 사장이 KBS 사장 후보로 내정된 이후 7월11일자 메모에는 “부처-정상화·공공기관 개혁-면종복배”라는 기록이 있으며 그 공공기관으로 “KBS 이사”를 지칭해 표기했다. KBS의 정상화가 필요하니, KBS이사들 가운데 면종복배(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 배반하는 사람)하는 이를 솎아내자는 의미였다.
이와 관련 KBS가 새 사장 선임에 깊숙이 개입할 의사가 있었다는 정황도 나왔다. 실제로 비망록 10월15일자에는 ‘KBS 이사장 선정과정 BH개입’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사장으로 유력했던 고대영 후보가 탈락하고 조대현 후보가 당선 된 이후 이길영 KBS이사장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 여당 이사 ‘이탈표’를 막지 못한 문책성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최근 “이길영 이사장이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과 면담자리에서 먼저 사퇴 요구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주장해 청와대 인사개입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이를 두고 최성준 위원장은 “당시 (이 전 이사장을) 뵌 적은 있지만, 이 이사장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셨다”고 반박했다.
공영방송 KBS인사와 방송에 개입한 정황은 2014년 6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 무려 17건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16일자 메모에는 “홍보/미래 KBS 상황, 파악, plan 작성”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에 대해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KBS 사장 선임 관련 플랜을 작성하라고 청와대 홍보수석 및 미래전략수석에게 지시한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가토 다쓰야 기소도 박근혜·김기춘 작품
2년 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검찰의 무리했던 기소 역시 청와대의 지시와 공조 속에 이뤄졌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8월7일자 메모에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List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경찰 국정원을 팀 구성토록’이란 대목이 등장했다. 가토 다쓰야는 2014년 8월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일보 최보식칼럼을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풍문을 소개했다.
▲ 2014년 8월9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언론노조 보도자료.
이에 자유청년연합 등이 가토 다쓰야를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 김영한 비망록에 따르면 이 같은 고소와 기소 과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8월9일자 메모에선 ‘사생활, 국가안보 운운은 부적절. 산케이 특파원 교체. 출입국 비자 담당관’이라 적혀있는데, 가토 전 지국장은 실제로 이후 특파원에서 교체되고 출국금지조치를 당했다. ‘외교문제X, 특정기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대응(法), 언론자유 이름으로 국가원수 모독은 용납될 수 없다’는 대목도 등장하는데 이는 외교문제로 비화되어선 안 되며, 일개 기자의 대통령 명예훼손에 따른 대응으로 프레임을 설정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8월20일자 메모에선 산케이신문을 두고 ‘①위법성 ②언론의 자유 ③조선(?)’이라고 적었다. 대통령의 7시간 풍문을 다룬 해당 칼럼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명예훼손 위법성을 강조하고 언론의 자유를 넘어섰다고 강조하는 가운데 가토 전 지국장 칼럼의 근거가 된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에 대한 대응을 놓고서는 결정을 못하고 있던 대목으로 추정된다. 뒤이은 메모에는 ‘外장관, 문체차관 회의 주제 정부체면 고려 대응’이란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는 외교부장관과 문체부 고위라인을 통해 당시 사건으로 불거진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한 대응지시로 풀이된다.
10월3일 메모에는 ‘산케이 처리’라고 짤막하게 적혀있다. 검찰은 그해 10월2일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3차 소환조사를 마치고 10월8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으며, 가토 전 지국장은 10월1일자로 도쿄본부 사회부 편집위원으로 발령이 났다. 가토 전 지국장 ‘처벌’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이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청와대에 있었고 정윤회와 최태민과 긴밀한 남녀관계가 아니다”라며 가토 다쓰야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국제적 망신이었다. 가토 다쓰야는 무죄 선고 직후 “검찰은 우익단체들의 고발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사를 시작해 명예훼손이라고 단정 지어 기소를 단행했다”며 정권차원의 외압을 주장했다.
정윤회 문건보도 앞에서 박근혜·김기춘이 택한 건 ‘공격’
세계일보가 청와대 내부에서 작성된 ‘정윤회 문건’을 입수해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처음 보도한 2014년 11월28일, 청와대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주재 회의에서 세계일보 공격 방안을 논의했다. 증거는 비망록에 등장한 “세계일보 공격 방안”이란 글귀다. 비망록의 해당 대목을 본 세계일보 기자들은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모든 국민과 동등하게 법 테두리 안에서 보장받는 정정보도·반론보도 청구권을 행사하는 대신 ‘언론사 공격’이라는 사실상의 범죄를 모의한 것”이라며 “비망록에 정부가 언론사 내부 동향과 취재기자를 사찰한 흔적이 담긴 것도 경악스러운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 2014년 11월28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TV조선 화면 갈무리.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된 11월28일 세계일보 사장, 편집국장, 기사를 작성한 평기자 등 6명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는 등 언론사를 상대로 압박을 가했다. 3일 뒤 김기춘 실장은 세계일보사를 압수수색 장소로 결정했으나 이후 파장을 우려했는지 압수수색을 포기하고 세무당국을 통해 세계일보 모체인 통일교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비망록에는 정윤회 문건 보도를 했던 조현일 세계일보 기자에 대한 사찰 정황도 드러나 있었다.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조한규씨는 보도 3개월 뒤 해임됐다. 비망록에는 “세계일보 회장 교체 움직임”, “현 사장 지지세력 내분양상” 등의 문구도 있다. 세계일보 경영진 교체에 청와대 입김이 사실상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선실세’ 관련보도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대응은 오보대응이라기 보다는 ‘공격’에 가까웠다. 2014년 7월15일자 비망록에는 “시사저널 일요신문-끝까지 밝혀내야. 피할 수 없다는 본때를 보여야. 선제적으로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이라 적혀있다. 시사저널은 그해 4월 “정윤회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 한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그해 6월 “정윤회씨 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기사를 냈다. 그해 3월 시사저널은 “박지만 EG회장이 한 달 이상 미행을 당했는데 미행을 지시한 사람이 정윤회씨”라고 보도하며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역린’이었던 비선실세를 건드렸다. 그 결과는 소송폭탄이었다. 시사저널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현 정권 실세들로부터 수차례 고소 및 고발을 당하고 국세청 세무조사 및 가판 판매망에 대한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지난 7월 TV조선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관련 보도를 시작하고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보도를 통해 박근혜정부의 ‘역린’을 건드리자 곧바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을 대우조선해양 로비를 받은 ‘부패기득권세력’으로 낙인찍고 조선일보를 압박했던 정황에 비춰보면 박근혜정부의 언론대응에는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선정하는 언론자유지수 역대 최하위(70위)였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의 언론장악 결과물인 YTN해직기자들의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11월27일자 비망록에는 “YTN 해고자 복직소송-대법선고-이후 동향”이라고 적힌 대목이 나왔다. YTN의 경우 이명박정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2009년 YTN노조 파업 직전 남대문 경찰서를 찾아 수사지침을 내렸다는 의혹과 함께 이후 배석규 사장 선임 당시까지 사내 불법사찰을 해온 정황이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 9월 총리실에서 작성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자료에는 배석규 당시 YTN사장 직무대행을 두고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YTN의 개혁에 몸을 바칠 각오가 돋보임’이라고 나와 있었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로부터 ‘사찰 인수인계’를 받은 셈이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모두를 통제하려 했다, 최순실 빼고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이 같은 정부의 전방위적 보도통제 목적은 오늘날 최순실게이트로 드러난 ‘국정농단’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정부는 가릴 것이 너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론에 민감했고 그래서 여론조작에 주저함이 없었다. 주요 보수성향 언론사 가운데 아직까지 김영한 비망록에 등장하지 않는 곳은 조선일보·MBC·SBS정도다. 비망록에 드러난 세세한 지시사항과 조치들을 토대로 미뤄 봤을 때 이들 언론사에 대한 통제와 지시의 흔적 또한 어딘가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영한 비망록에 드러나지 않은 언론탄압 피해자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건 비망록에 등장하지 않은 언론계 ‘부역자들’을 찾는 일이다.
최근 JTBC가 입수한 2014년 6월 작성 국가정보원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고 정부비판여론을 ‘보수언론·단체들의 적극적인 맞대응 집회·여론전 전개 병행’으로 돌파하려 했다. 이 문건에선 ‘언론은 비판세력의 국가재난 악용 정치투쟁 행태 비판과 함께 국가 개조 방안 관련 각계 논의를 확산, 여론을 건설적 방향으로 이끌고’란 대목이 등장한다. 해당문건은 대통령 맞춤문서였다. 이에 비춰보면 당시 청와대·국정원의 여론전에 ‘협조’한 공범이 여전히 언론사 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비망록에 등장하는 “각종 금전적 지원”이란 대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
숨길 게 많았던 박근혜, 언론통제와 여론조작으로 버텼다
[김영한 비망록과 청와대 언론탄압] KBS·JTBC 심의제재 압박하고 세계일보엔 ‘공격방안’ 지시, 日 가토 다쓰야 기소까지 개입정황…전 방위적 보도통제 목적은 ‘국정농단 은폐’
정철운·김도연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6년 12월 07일 수요일
11월14일 TV조선을 통해 처음 공개된 故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의 핵심은 “비판언론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라”(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였다. 2014년 7월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할 때 김기춘 비서실장은 언론 탓을 했다. 김기춘 실장은 대통령의 인사 참사를 비판했던 언론을 두고 “일방적 지적, 비판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며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청구 등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철저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박근혜정부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최순실게이트만큼 언론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번 비망록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14일부터 정윤회 비선실세 파문이 불거진 2015년 1월9일까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영한 민정수석이 작성한 메모로, 박근혜정부의 언론탄압지침이 기록돼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황만 △JTBC 심의제재 △공영방송 이사 성향 파악 △가토 다쓰야 기소 개입 △세계일보 공격 △시사저널·일요신문 탄압 △채널A 프로그램 폐지 △YTN해직자 사찰 등이다. 야3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를 침해한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박근혜정부의 언론탄압은 세세하고 집요했다. 2014년 8월27일자 중앙일보 “세월호 악순환의 고리를 풀 방법은 없는가”란 제목의 사설은 “집권 여당과 대통령이라도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야당 탓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썼다. 사설의 전체 논조는 야당 비판에 가까웠지만 비망록엔 ‘논조 이상’이라고 적혀있었다. 청와대는 사설 하나에도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해 8월14일자 메모인 “KBS, VIP 행적 보도”의 경우 8월13일자 KBS ‘뉴스9’에서 청와대가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 밝힌 세월호 당시 대통령 행적이 보도된 것을 주시한 기록이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KBS보도국장에게 “하필이면 (대통령이) 봤네”라며 보도를 통제했던 장면이 오버랩 된다.
비망록에 언급된 ‘문제의’ 프로그램은 곧바로 폐지되기도 했다. 2015년 1월4일자 비망록엔 “채널A기자 ‘세습’ 발언 방통위(방송통신심의위) 조치토록 할 것”이 적혀있었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발언은 채널A ‘청와대25시’ 1월3일자 방송에서 나왔다. 진행자인 이남희 앵커(당시 청와대 출입기자)가 ‘세습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놀랍게도 1월3일자 해당 방송 민원은 그해 1월 15건이나 접수됐다. 심의 결과는 법정제재가 아닌 ‘권고’에 그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당시 이기홍 채널A 보도본부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앵커가 해당 표현(세습정치)을 쓴 것은 박근혜 정부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오히려 정 반대”라고 해명했으나 “이번 의견진술 요청이 계기가 돼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압이 없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근혜정부의 언론관 = “열정 대처”, “면종복배”
박근혜정부에서 납득하기 어려웠던 언론탄압조치들은 비망록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방송사 가운데는 신뢰도와 영향력이 높은 KBS와 JTBC에 집중되어 있었다.
2014년 6월26일자 메모에는 “KBS 추적60분 천안함 관련 판결-항소”라고 기재돼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추적60분 ‘천안함 의혹’편에 대한 방통위의 경고(중징계) 처분은 위법하다는 1심 법원 판결이 나온 뒤 곧바로 항소했다. 이 같은 항소는 사내 제작자율성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7월2일자에는 ‘문창극 KBS보도-중징계-방심위’란 메모가 남아있다. 7월1일 방심위 보도교양특위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KBS뉴스와 관련해 중징계 의견을 냈다. 그해 9월5일에는 ‘방심위, 문창극 관련 지도’란 기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강한 의지. 열정 대처 – 체제 수호 → 유념’ / ‘전사들이 싸우듯이 ex 방심위 KBS 제재심의 관련’. 전사가 되어 언론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대목으로, 그 수단은 ‘심의제재’다.
▲ 2014년 9월15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JTBC 화면 갈무리.
JTBC가 두시간 짜리 메인뉴스 ‘뉴스룸’으로 개편을 준비하던 지난 2014년 9월, 청와대는 이를 주시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을 활용한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비망록 9월15일자를 보면 “JTBC 22일부터 8시 뉴스 개시”, “보수 분위기 기조에 악영향 우려. 적극적 오보 대응 및 법적 대응 요구”, “방심위 제소 활용” 등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해 6월 비망록에는 ‘JTBC 뉴스가치 왜곡사례-list up’이라고 적혀있었다. 청와대는 JTBC가 오보를 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JTBC는 각종 심의제재에서 제재 건수는 적지만 제재수위는 늘 높아서 정치 심의를 받고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JTBC는 비망록 이전 시기부터 청와대의 ‘집중 관리’를 받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JTBC는 2013년 12월19일 방심위로부터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과 인터뷰한 것이 편향적이었다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별점 4점)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중앙일보·JTBC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뉴스의 본질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히며 “JTBC 뉴스는 이날 정부의 통진당 해산심판청구 내용을 두 꼭지에 걸쳐 보도하는 등 해당 이슈에 대한 고른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방심위 결정을 비판했다.
심의를 넘어선 인사개입 정황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해 7월4일자 메모에는 “KBS 이사 우파 이사 - 성향 확인 요”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 KBS 양대 노조 파업으로 길환영 전 사장이 물러난 뒤 후임 사장이었던 조대현 KBS 사장 후보자로 기우는 KBS 여당 추천 이사들이 누구인지 ‘색출’에 나섰던 대목이다. 7월9일 조대현 전 사장이 KBS 사장 후보로 내정된 이후 7월11일자 메모에는 “부처-정상화·공공기관 개혁-면종복배”라는 기록이 있으며 그 공공기관으로 “KBS 이사”를 지칭해 표기했다. KBS의 정상화가 필요하니, KBS이사들 가운데 면종복배(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 배반하는 사람)하는 이를 솎아내자는 의미였다.
이와 관련 KBS가 새 사장 선임에 깊숙이 개입할 의사가 있었다는 정황도 나왔다. 실제로 비망록 10월15일자에는 ‘KBS 이사장 선정과정 BH개입’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사장으로 유력했던 고대영 후보가 탈락하고 조대현 후보가 당선 된 이후 이길영 KBS이사장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 여당 이사 ‘이탈표’를 막지 못한 문책성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최근 “이길영 이사장이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과 면담자리에서 먼저 사퇴 요구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주장해 청와대 인사개입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이를 두고 최성준 위원장은 “당시 (이 전 이사장을) 뵌 적은 있지만, 이 이사장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셨다”고 반박했다.
공영방송 KBS인사와 방송에 개입한 정황은 2014년 6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 무려 17건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16일자 메모에는 “홍보/미래 KBS 상황, 파악, plan 작성”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에 대해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KBS 사장 선임 관련 플랜을 작성하라고 청와대 홍보수석 및 미래전략수석에게 지시한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가토 다쓰야 기소도 박근혜·김기춘 작품
2년 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검찰의 무리했던 기소 역시 청와대의 지시와 공조 속에 이뤄졌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8월7일자 메모에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List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경찰 국정원을 팀 구성토록’이란 대목이 등장했다. 가토 다쓰야는 2014년 8월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일보 최보식칼럼을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풍문을 소개했다.
▲ 2014년 8월9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언론노조 보도자료.
이에 자유청년연합 등이 가토 다쓰야를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 김영한 비망록에 따르면 이 같은 고소와 기소 과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8월9일자 메모에선 ‘사생활, 국가안보 운운은 부적절. 산케이 특파원 교체. 출입국 비자 담당관’이라 적혀있는데, 가토 전 지국장은 실제로 이후 특파원에서 교체되고 출국금지조치를 당했다. ‘외교문제X, 특정기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대응(法), 언론자유 이름으로 국가원수 모독은 용납될 수 없다’는 대목도 등장하는데 이는 외교문제로 비화되어선 안 되며, 일개 기자의 대통령 명예훼손에 따른 대응으로 프레임을 설정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8월20일자 메모에선 산케이신문을 두고 ‘①위법성 ②언론의 자유 ③조선(?)’이라고 적었다. 대통령의 7시간 풍문을 다룬 해당 칼럼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명예훼손 위법성을 강조하고 언론의 자유를 넘어섰다고 강조하는 가운데 가토 전 지국장 칼럼의 근거가 된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에 대한 대응을 놓고서는 결정을 못하고 있던 대목으로 추정된다. 뒤이은 메모에는 ‘外장관, 문체차관 회의 주제 정부체면 고려 대응’이란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는 외교부장관과 문체부 고위라인을 통해 당시 사건으로 불거진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한 대응지시로 풀이된다.
10월3일 메모에는 ‘산케이 처리’라고 짤막하게 적혀있다. 검찰은 그해 10월2일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3차 소환조사를 마치고 10월8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으며, 가토 전 지국장은 10월1일자로 도쿄본부 사회부 편집위원으로 발령이 났다. 가토 전 지국장 ‘처벌’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이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청와대에 있었고 정윤회와 최태민과 긴밀한 남녀관계가 아니다”라며 가토 다쓰야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국제적 망신이었다. 가토 다쓰야는 무죄 선고 직후 “검찰은 우익단체들의 고발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사를 시작해 명예훼손이라고 단정 지어 기소를 단행했다”며 정권차원의 외압을 주장했다.
정윤회 문건보도 앞에서 박근혜·김기춘이 택한 건 ‘공격’
세계일보가 청와대 내부에서 작성된 ‘정윤회 문건’을 입수해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처음 보도한 2014년 11월28일, 청와대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주재 회의에서 세계일보 공격 방안을 논의했다. 증거는 비망록에 등장한 “세계일보 공격 방안”이란 글귀다. 비망록의 해당 대목을 본 세계일보 기자들은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모든 국민과 동등하게 법 테두리 안에서 보장받는 정정보도·반론보도 청구권을 행사하는 대신 ‘언론사 공격’이라는 사실상의 범죄를 모의한 것”이라며 “비망록에 정부가 언론사 내부 동향과 취재기자를 사찰한 흔적이 담긴 것도 경악스러운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 2014년 11월28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TV조선 화면 갈무리.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된 11월28일 세계일보 사장, 편집국장, 기사를 작성한 평기자 등 6명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는 등 언론사를 상대로 압박을 가했다. 3일 뒤 김기춘 실장은 세계일보사를 압수수색 장소로 결정했으나 이후 파장을 우려했는지 압수수색을 포기하고 세무당국을 통해 세계일보 모체인 통일교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비망록에는 정윤회 문건 보도를 했던 조현일 세계일보 기자에 대한 사찰 정황도 드러나 있었다.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조한규씨는 보도 3개월 뒤 해임됐다. 비망록에는 “세계일보 회장 교체 움직임”, “현 사장 지지세력 내분양상” 등의 문구도 있다. 세계일보 경영진 교체에 청와대 입김이 사실상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선실세’ 관련보도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대응은 오보대응이라기 보다는 ‘공격’에 가까웠다. 2014년 7월15일자 비망록에는 “시사저널 일요신문-끝까지 밝혀내야. 피할 수 없다는 본때를 보여야. 선제적으로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이라 적혀있다. 시사저널은 그해 4월 “정윤회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 한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그해 6월 “정윤회씨 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기사를 냈다. 그해 3월 시사저널은 “박지만 EG회장이 한 달 이상 미행을 당했는데 미행을 지시한 사람이 정윤회씨”라고 보도하며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역린’이었던 비선실세를 건드렸다. 그 결과는 소송폭탄이었다. 시사저널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현 정권 실세들로부터 수차례 고소 및 고발을 당하고 국세청 세무조사 및 가판 판매망에 대한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지난 7월 TV조선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관련 보도를 시작하고 조선일보가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보도를 통해 박근혜정부의 ‘역린’을 건드리자 곧바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을 대우조선해양 로비를 받은 ‘부패기득권세력’으로 낙인찍고 조선일보를 압박했던 정황에 비춰보면 박근혜정부의 언론대응에는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선정하는 언론자유지수 역대 최하위(70위)였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의 언론장악 결과물인 YTN해직기자들의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11월27일자 비망록에는 “YTN 해고자 복직소송-대법선고-이후 동향”이라고 적힌 대목이 나왔다. YTN의 경우 이명박정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2009년 YTN노조 파업 직전 남대문 경찰서를 찾아 수사지침을 내렸다는 의혹과 함께 이후 배석규 사장 선임 당시까지 사내 불법사찰을 해온 정황이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 9월 총리실에서 작성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자료에는 배석규 당시 YTN사장 직무대행을 두고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YTN의 개혁에 몸을 바칠 각오가 돋보임’이라고 나와 있었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로부터 ‘사찰 인수인계’를 받은 셈이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모두를 통제하려 했다, 최순실 빼고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이 같은 정부의 전방위적 보도통제 목적은 오늘날 최순실게이트로 드러난 ‘국정농단’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정부는 가릴 것이 너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론에 민감했고 그래서 여론조작에 주저함이 없었다. 주요 보수성향 언론사 가운데 아직까지 김영한 비망록에 등장하지 않는 곳은 조선일보·MBC·SBS정도다. 비망록에 드러난 세세한 지시사항과 조치들을 토대로 미뤄 봤을 때 이들 언론사에 대한 통제와 지시의 흔적 또한 어딘가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영한 비망록에 드러나지 않은 언론탄압 피해자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건 비망록에 등장하지 않은 언론계 ‘부역자들’을 찾는 일이다.
최근 JTBC가 입수한 2014년 6월 작성 국가정보원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고 정부비판여론을 ‘보수언론·단체들의 적극적인 맞대응 집회·여론전 전개 병행’으로 돌파하려 했다. 이 문건에선 ‘언론은 비판세력의 국가재난 악용 정치투쟁 행태 비판과 함께 국가 개조 방안 관련 각계 논의를 확산, 여론을 건설적 방향으로 이끌고’란 대목이 등장한다. 해당문건은 대통령 맞춤문서였다. 이에 비춰보면 당시 청와대·국정원의 여론전에 ‘협조’한 공범이 여전히 언론사 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비망록에 등장하는 “각종 금전적 지원”이란 대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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