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5361.html

정부 비판하면 ‘좌파’ 낙인…헌법 가치 무시한 ‘신유신시대’
등록 :2017-03-06 19:30 수정 :2017-03-06 22:25

특검 “블랙리스트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중대 범죄”
‘박근혜 아니면 적’ 정권 비판세력 억압 위해 예산 사유화
세월호 추모글 모아 책 펴낸 <문학동네>도 ‘좌편향 출판사’ 낙인 
블랙리스트 실행 소극적 공무원은 ‘성분불량자’로 지목해 인사 조처
반면, ‘화이트리스트’ 단체엔 전경련 동원해 3년간 68억원 지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블랙리스트 수사’는 박근혜 정부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좌파’로 낙인찍어 정부 예산을 사유화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다양한 문화융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를 자신에 대한 비판세력(블랙리스트)과 우호세력(화이트리스트)으로 이분법화해 사실상 ‘신유신시대’를 부활시켰다. 우호세력에 대해선 청와대가 ‘민간자본’까지 동원해 지원에 나선 사실이 드러났다.

6일 박 특검은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최고위층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행이다. 정부·청와대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을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헌법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라고 밝혔다. 특검 수사결과, 안보 이슈 등 정치적 입장에 대립될 만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 정부의 탄압 대상이 됐다.

순수문예지인 <문학동네>를 ‘좌편향 출판사’로 낙인찍은 게 대표적이다. <문학동네>는 2014년 10월 소설가·문학평론가 등 12명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본 글을 모아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펴낸 뒤 정부 지원에서 단계적으로 배제됐다. 정부 지원을 받는 ‘세종도서’로 선정된 출판물이 2014년 25종에서 2015년 5종으로 확 줄었다. 또 10억원 규모의 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자체가 아예 폐지되기도 했다. 또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반대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시켜 지원을 차단하기도 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정권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척결 대상이라고 봤다. 박 대통령의 ‘말씀’ 한 마디에 김 전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정무수석실, 교문수석실, 문체부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2014년 1월 김 전 실장은 문화계 좌파 척결을 강조하며 ‘전투 모드’ ‘불퇴전의 각오’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은 김 전 실장의 행보에 부지런히 보조를 맞췄다. 정무수석실은 ‘민간단체 보조금 티에프’를 운영하면서 2015년 5월 9473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해 업데이트했고, 이 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에 그대로 내려보냈다. 특검은 “문체부 담당자 등 실무자 어느 누구도 그 기준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특정 대상자를 배제해야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직업공무원제’까지 붕괴시켰다. 블랙리스트 명단 실행에 소극적인 1급 간부들 3명을 ‘성분 불량자’로 분류해 2014년 9월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옥죄기 위해 더욱 노골화됐다.

청와대는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동원해 정권 우호적인 단체를 중심으로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했다. 2014년 전경련은 청와대의 요청으로 삼성, 엘지, 현대차, 에스케이 등 대기업에서 받은 돈과 자체 자금 등을 합해 24억여원을 청와대가 지정한 22개 단체에 지원했다. 2015년에는 31개 단체 35억원으로 늘어났다가 지난해에는 22개 단체에 약 9억원의 돈이 건너가는 등 3년 간 총 68억원이 지원됐다.

지난해 4월 ‘청와대 관제데모 의혹’이 불거진 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검찰에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 의뢰했지만,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은 해 7~8월까지도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계자들은 전경련에 특정 단체에 대한 활동비 지원을 요구했고, 전경련은 2016년 10월까지 활동비 지원을 계속했다. 지원 대상은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로 꼽히는 어버이연합·엄마부대·고엽제전우회 등이었다. 특검팀은 “청와대 관계자들이 직권을 남용해 전경련 임직원들에게 특정 단체에 대한 활동비 지원을 요구한 의혹 사항에 대한 사건 기록과 증거 일체를 검찰로 넘겼다”고 밝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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