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5696

가짜뉴스 5870건 삭제? 모두 ‘가짜’였을까
오남용으로 논란이 된 '선관위 게시글 삭제'제도, "가짜뉴스 잡겠다"는 명분으로 물타기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7년 03월 17일 금요일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전담팀을 꾸려 대응 중에 있습니다. 어제까지 삭제 요청한 건수가 5870건인 걸로 나왔습니다.”

JTBC 뉴스룸이 지난 16일 보도한 내용이다. 선관위는 16일 네이버, 페이스북코리아 등 사업자들과 '가짜뉴스' 대응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방침을 발표했다. 선관위는 사업자와 협력 강화를 강조하며 이번 대선 정국에서 5780건의 게시물에 대해 삭제요청을 하고 5건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 지난 16일 보도된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 지난 16일 보도된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언론은 선관위의 발표를 인용해 “중앙선관위, 가짜뉴스 엄단 팔 걷어부쳤다” “선관위, 대선 앞두고 ‘가짜뉴스’에 엄포” “선거운동 시작 전 가짜뉴스만 4000여 건...선관위, 전면전 선포” 등으로 보도했다. 

마치 수천건의 ‘가짜뉴스’가 삭제된 것 같은 착시를 준다. 그러나 삭제요청된 게시물과 가짜뉴스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 게시물’과 ‘가짜뉴스’를 혼용하면서 와전된 것이다. 

선관위가 지금까지 삭제요청을 한 5870건의 게시물은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등 비방’ 4662건, ‘여론조사실시 및 공표방법 등 위반’ 1192건, ‘특정지역 등 비하모욕’ 5건, ‘기타’ 11건 순이다.  

여기서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등 비방’ 항목을 제외하면 가짜뉴스를 ‘언론기사를 흉내낸 게시물’로 보든 ‘언론 기사 중 악의적인 왜곡’으로 보든 가짜뉴스와는 무관한 통계다.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등 비방’도 실제 삭제요청된 내역을 살펴보면 허위사실을 담았다고 보기 힘든 내용이 적지 않다.  

지난 총선 때 MLB파크의 한 댓글은 당시 나경원 후보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 관해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라고 나경원 의원의 딸이 면접 중 발언한 것)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고 밝혔을 뿐인데 삭제됐다.  

▲ 지난 총선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요청한 유승민 의원 비방 트윗.
▲ 지난 총선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요청한 유승민 의원 비방 트윗.

윤상현 후보에 관해서는 “전두환 장군 청와대 있을 때 딸과 결혼해서 대통령 사위로 사시다가 (중략) 이혼하고 돈 많은 재벌가 롯데사위로 갈아타시고”라고 쓴 댓글이 삭제됐다. 유승민 의원의 얼굴을 ‘내시’에 합성한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린 유저들의 게시물도 삭제됐다. 의혹제기나 풍자마저도 허위사실이나 비방이라는 이유로 삭제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선관위가 특정 게시물이 허위사실인지 판단하고 삭제요청을 할 권한이 있는지도 논란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관위가 게시물 삭제요청 및 고발 권한을 갖는 건 맞지만 선거 때마다 시민사회단체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해왔다. 오픈넷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자의 최태민-최순실 유착 문제를 제기했다가 처벌된 김해호 목사’사례를 언급하며 사법부가 아닌 선관위가 사실여부를 판단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후보자비방죄를 폐지하고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명령 제도를 폐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 허위사실이나 비방 뿐만 아니라 선관위의 선거기간 게시물 삭제제도 자체가 오남용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총선 기간 후보자의 대략적인 지지율을 언급한 네이트 댓글로 '여론조사에 필수적으로 고지해야 할 항목'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 허위사실이나 비방 뿐만 아니라 선관위의 선거기간 게시물 삭제제도 자체가 오남용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총선 기간 후보자의 대략적인 지지율을 언급한 네이트 댓글로 '여론조사에 필수적으로 고지해야 할 항목'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손지원 오픈넷 자문변호사는 “가짜뉴스가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사회적 합의처럼 이뤄지니까 기존에 해오던 심의검열에 가짜뉴스라는 이름을 쓰는 것 같다”면서 “기존부터 선관위가 해오던 일이고 시민사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문제가 있는 제도를 합리화하는 ‘물타기’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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