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936
박근혜를 끌어내린 13명의 기자들-방송
[미디어오늘 창간기획] 한국 명예혁명을 이끈 기자들
미디어오늘 미디어부 media@mediatoday.co.kr 2017년 05월 20일 토요일
우린 대통령을 파면시킨 기자들이 궁금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 같은 알려진 ‘선수’ 말고 현장에서 뛰며 취재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크로스 체크를 했던 현장의 평기자들이 궁금했다.
미디어오늘은 박근혜를 끌어내린 수많은 기자들 가운데 상징적인 평기자 13명을 선정했다. 이들이 쓴 기사는 보이지 않는 실선처럼 연결되어 박근혜 파면을 이끌었다.
국정농단 보도에 있어서는 이른바 보수-진보언론 간의 장벽이 없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최초로 보수-진보 언론합작에 의해 불의한 국가권력이 무너졌던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편집자 주
[ 관련기사 : 박근혜를 끌어내린 13명의 기자들 - 신문·잡지 ]
▲ 3월21일 오전 박근혜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 박근혜-최순실 가문에 집중, ‘국정농단 뿌리’ 조명 (김수진 YTN 기자)
▲ 김수진 YTN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은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대를 이은 국정농단이 뿌리다.
지난 1월3일 김수진 YTN기자는 ‘최순실-박근혜 일가 공동 재산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을 단독 보도했다. 2007년 8월 폐암 말기였던 조순제씨(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가 간병하던 아들에게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에 얽힌 이야기를 한 것을 아들 조아무개씨가 증언했다. 당시 떠돌던 ‘조순제 녹취록’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보도였다.
조순제씨의 아들 조아무개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그가 갖고 있던 상당한 규모의 재산이 최태민 목사에게 넘어갔으며, 이 과정에 조순제씨가 개입했다고 밝혔다. 조아무개씨에 따르면 최태민의 5번째 아내인 임선이씨가 재산의 대부분을 관리해왔다. 임선이씨는 최순실의 어머니로 두 일가의 재산이 공동관리 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아무개씨 역시 “따로 떼어서 어느 부분은 최태민의 돈, 박근혜의 돈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YTN의 지난 1월4일 후속보도 역시 이 같은 정황에 힘을 실었다. 조순제씨가 2007년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보낸 진정서에 따르면 구국봉사단, 여성봉사단, 새마음병원 등의 단체가 최태민과 당시 박근혜 영애, 자신의 3인 협의 운영체제였다고 밝혔다. 이는 YTN의 진정서 입수로 드러났다.
김수진 YTN기자는 “조아무개씨는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에 합류해 우연히 만난 취재원”이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아 설득에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취재팀이 해체되고 난 다음 나온 기사다. 굵직굵직한 보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보도가 ‘현재’를 다뤘다면 이 보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사태가 역사 속에 뿌리가 깊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는 “취재원도 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두 일가의 문제는 특검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목하고 밝혀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2. 그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김필준 JTBC 기자)
▲ 김필준 JTBC 기자
김필준 JTBC 기자는 지난해 10월 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이었던 ‘최순실 태블릿 PC’를 최초 입수해 보도했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데 핵심 물증을 확보하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대국민 사과를 받아낸 보도로 주목을 받았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자가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게이트의 빗장이 열렸지만 박씨가 해당 사실을 시인할 만한 물증이 없었다. 김 기자와 JTBC는 태블릿PC를 입수·보도해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외교·안보 자료 등 청와대 문건을 미리 받아봤다고 보도했고, 이는 시민과 부패 권력 간의 대결에서 시민으로 무게의 중심을 옮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기자는 “당시 보도만 잘해달라며 용기를 내줬던 건물 관리인 노광일씨의 도움이 있었고 함께 힘을 내준 선배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태블릿PC 보도 이후에도 소심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최씨 관련한 제보들, 또 특검 사무실에서 최순실씨에게 소리를 친 청소미화원 임애순씨도 기억에 남는다 ”고 말했다. 또한 “이외에도 촛불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 그런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를 보고 힘을 냈다”고 말했다.
태블릿PC가 놓여있던 더블루K 건물관리인 노씨는 “JTBC는 손석희 사장이 있어 진실에 입각해 보도한다고 판단해 협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 2016년 10월31일 국정농단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3. 국정농단 보도과정에서 빛났던 PD저널리즘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
▲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기자들의 기사뿐 아니라 탐사보도프로그램의 활약도 뛰어났다. 방송에서 직접 “제보자를 기다립니다”라는 알림을 띄우고, PD들이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는 취재현장을 보여주며 PD저널리즘은 시청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 진실을 추구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1054회에서 수십 년에 걸친 최태민 일가의 행적을 추적해 최태민에서 최순실까지 이어진 국정농단의 기원을 취재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정면으로 다룬 1059회와 1060회에선 청와대 비밀노트를 단독입수해 보도했다.
1053회에선 ‘세월호 7시간’ 당시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했던 노력도 돋보였다. 이외에도 지상파에서 처음으로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의혹을 보도’(1057회)하는 등 ‘그것이 알고싶다’는 박근혜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보도에서 ‘그것이 알고싶다’는 박근혜씨의 5촌 사촌인 박용수씨가 사촌동생인 박용철씨를 살해한 후 자살했다는 경찰 수사결과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방송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박용철씨의 최측근이라는 제보자를 만나 두바이에서 3박4일간 인터뷰를 하고, 실제 살해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을 만나는 등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의 전말을 드러내고자 했다.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는 “박근혜씨와 최순실씨 집안,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의 시작이 육영재단을 둘러싼 측면이 있다”라며 “좁게 본다면 국정농단과는 무관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수 있으나 그런 일을 벌이고 또 계획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다보면 이 인물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PD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배PD는 “관련해 제보를 계속 받고 확인하는 중”이라며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배PD는 “다음 방송편은 추정이 아니라 확정적 방송이 될 것, 그에 준하는 제보자들이 나타났다”며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살해했는지 연결고리를 찾아서 방송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4. 문화계까지 뻗친 ‘블랙리스트’ 단독입수 (온누리 JTBC 기자)
▲ 온누리 JTBC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의 임무를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않은 민간인이 수행했다는 점도 외에도 그 수행분야가 거의 모든 분야에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치나 외교, 인사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계에도 그 세력이 넓게 뻗쳐있었다.
특히 이른바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어도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사회에 비판적인 작품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블랙리스트를 가장 먼저 단독 입수 한 기자가 온누리 JTBC 기자였다. 온누리 기자는 “단독 입수했다고 알려졌지만 스포츠 문화팀 팀원들과 함께 취재한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2016년 12월29일자 단독보도에서 JTBC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전 차관의 주도로 비협조적인 경기단체명단, 이른바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해당 단체는 예산 지원을 끊으라는 공문을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보냈다고 폭로했다. 문체부는 단체들이 문체부의 요구에 제대로 따랐는지를 O, X로 표시했다. 개인별 블랙리스트가 따로 있다는 증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확인한 단독보도 이후에도 온누리 기자는 “해외 문화원서도 블랙리스트… 외교라인도 개입 증언” 후속 리포트를 통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문체부를 넘어 한국문화원, 총영사 등 외교라인까지 관여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온 기자는 블랙리스트부터 시작해 어버이연합을 동원한 관제데모 등 정부가 개입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분야로 취재영역을 확장했다.
이 같은 보도는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던 반 헌법적 행위를 드러냄으로서 박근혜씨의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하나인 직권남용의 증거로 충분했다.
▲ 1월2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5. 김영한 靑 민정수석의 210일치 비망록을 쏘아 올리다 (하누리 TV조선 기자)
▲ 하누리 TV조선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사태에서 TV조선 보도를 떠올리면 지난해 7월 중순 미르·K스포츠재단 최초 보도나 10월25일 최순실의 의상실 영상보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TV조선의 ‘임팩트’는 고인이 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단독보도였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생활했던 210일간의 업무일지격인 비망록은 청와대의 문제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가득했다.
하누리 TV조선 기자는 김영한 비망록 보도를 주도했다. 2016년 11월13일자 “‘세월호 7시간’ 김기춘, 수석들 입과 귀 막았다” 리포트를 통해 “이 7시간에 대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수석들에게 모르쇠 방침을 지시했다”며 그 증거로 2014년 7월18일자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하누리 기자는 이밖에도 “정윤회 수사 축소, 청와대 검찰 협의 정황 나왔다”(11월11일), “청와대 ‘비판언론 불이익 가도록’”(11월15일) 등 단독보도를 쏟아내며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로 국정농단의 실체를 가리켰다.
이 무렵 국정농단보도는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보도와 TV조선의 김영한 비망록 보도 두 날개로 날았다. 김영한 비망록 보도는 박근혜정부에서의 언론탄압과 여론조작, 사찰 등의 반 헌법적 행위들을 추적해 최순실 개인의 국정개입으로 그칠 뻔 한 사태를 국정농단으로 키워낸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김영한 비망록을 발굴해낸 TV조선으로 인해 타사에서도 수많은 관련 보도를 쏟아낼 수 있었으며, 당시 보도는 한국판 명예시민혁명 국면에서 진보·보수언론간의 ‘합작’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누리 TV조선 기자는 “탄핵 선고가 나고 타사 선후배들과 모여앉아 ‘누가 이기고 지는 일도 아니었고, 기쁠 일도 아니었다’는 데 공감했다. 기뻤던 적 없는 취재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하며 매번 무거웠고 반성했다”며 그간 소회를 밝혔다.
하누리 기자는 “재판도 취재도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고 아직 풀어내야 할 진실이 남아있다”며 “앞으로도 차분히 책임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선후배들과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한 비망록 보도와 관련해선 “김 전 수석 어머님과 가족 분들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꼭 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하누리 기자는 비선실세 정윤회가 안광한 전 MBC사장과 여러 차례 만났고, 우호적인 보도를 요구했다는 리포트를 내며 MBC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6. 덴마크로 날아간 추적자, 정유라를 체포하다 (이가혁 JTBC기자)
▲ 이가혁 JTBC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모든 언론의 목표는 정유라를 찾는 것이었다. 많은 기자들이 유럽의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기어코 찾아냈다. 이가혁 JTBC기자였다. 그는 지난 1월2일 덴마크 현지에서 정유라 체포과정을 단독 보도했다. 취재진은 덴마크 올보르 한 주택가에서 정씨가 타고 다닌 폭스바겐 차량을 발견해 정씨를 찾아냈다.
이 기자는 “꾸준하게 제보가 있어서 현지로 가게 된 것인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나’가 아니라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럼에도 정유라가 지나간 흔적이나 교민들의 제보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취재 과정을 꾸준하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현지에 25일 정도 머물렀다.
당시 JTBC ‘뉴스룸’에서 이 기자는 “외출하는 정씨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저희가 은신처를 잠시라도 벗어난 사실을 정씨 측이 파악한다면 새로운 장소로 도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한국 경찰이 정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을 한 만큼 덴마크 수사 당국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현지 기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정유라 체포는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사그라지던 시점에서 다시금 사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으며 ‘기자는 관찰자인가 참여자인가’ 라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먼저 행동하는 시민과 기자의 역할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쪽에서는 직업윤리의 추구는 사회의 안녕과 보편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정유라 신고 직전 상황을 두고 “저희가 수일동안 해당 은신처 앞에서 기다렸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현지 주민들이 저희를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희가 사라지면 정유라씨가 도주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기자의 행동은 언론계에서의 논란과 달리 일반 뉴스수용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 기자는 “전체 언론이 열심히 취재하는 상황에서 ‘기자하기 잘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껴 본 취재였다”면서 “단순히 거대 권력에 대항해 싸운다기보다는 잘못된 과정을 하나하나 보도해주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목포인데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어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 1월2일 jtbc 뉴스룸 보도
7. “세월호 7시간 朴 머리 연출” 결정적 ‘팩트 폭격’ (이세영 SBS 기자)
▲ 이세영 SBS 기자
“박근혜는 그날(2014년 4월16일)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지난 3월10일 박근혜의 대통령직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결정문 중 일부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의 불성실한 직책 수행이 탄핵 소추 사유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줬고 아직 사법적 판단도 끝나지 않았다.
헌재가 지적한 박근혜씨의 ‘무성의한 태도’에는 4월16일 오후 3시 박씨가 세월호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준비를 지시한 후 지척 거리인 중대본을 방문하기까지 2시간15분이나 걸렸다는 것도 포함된다.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의 미용 시술 의혹 등 행적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시점에서 결정적 ‘팩트 폭격’을 한 언론은 SBS였다. 이세영 SBS 기자는 4월16일에도 박씨의 머리 손질을 위해 청와대를 출입한 전담 미용사를 만나 “박씨가 중대본 방문을 앞두고 일부러 부스스한 모양으로 머리를 연출했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온 국민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탑승자가 무사히 구조돼 돌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하던 시간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한가롭게 머리 연출이나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이세영 기자는 “베일에 싸여있던 세월호 7시간 중 처음으로 드러난 90분이 ‘올림머리’ 손질 시간이란 사실에 국민의 분노가 번지면서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참사를 포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술회했다.
이 기자는 “탄핵 심판 당시 윤전추 행정관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대통령의 머리가 단정했다고 진술했는데 그럼 오후에 일부러 흐트러진 머리를 연출한 건지, 구체적인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13명의 기자들-방송
[미디어오늘 창간기획] 한국 명예혁명을 이끈 기자들
미디어오늘 미디어부 media@mediatoday.co.kr 2017년 05월 20일 토요일
우린 대통령을 파면시킨 기자들이 궁금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 같은 알려진 ‘선수’ 말고 현장에서 뛰며 취재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크로스 체크를 했던 현장의 평기자들이 궁금했다.
미디어오늘은 박근혜를 끌어내린 수많은 기자들 가운데 상징적인 평기자 13명을 선정했다. 이들이 쓴 기사는 보이지 않는 실선처럼 연결되어 박근혜 파면을 이끌었다.
국정농단 보도에 있어서는 이른바 보수-진보언론 간의 장벽이 없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최초로 보수-진보 언론합작에 의해 불의한 국가권력이 무너졌던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편집자 주
[ 관련기사 : 박근혜를 끌어내린 13명의 기자들 - 신문·잡지 ]
▲ 3월21일 오전 박근혜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 박근혜-최순실 가문에 집중, ‘국정농단 뿌리’ 조명 (김수진 YTN 기자)
▲ 김수진 YTN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은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대를 이은 국정농단이 뿌리다.
지난 1월3일 김수진 YTN기자는 ‘최순실-박근혜 일가 공동 재산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을 단독 보도했다. 2007년 8월 폐암 말기였던 조순제씨(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가 간병하던 아들에게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에 얽힌 이야기를 한 것을 아들 조아무개씨가 증언했다. 당시 떠돌던 ‘조순제 녹취록’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보도였다.
조순제씨의 아들 조아무개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그가 갖고 있던 상당한 규모의 재산이 최태민 목사에게 넘어갔으며, 이 과정에 조순제씨가 개입했다고 밝혔다. 조아무개씨에 따르면 최태민의 5번째 아내인 임선이씨가 재산의 대부분을 관리해왔다. 임선이씨는 최순실의 어머니로 두 일가의 재산이 공동관리 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아무개씨 역시 “따로 떼어서 어느 부분은 최태민의 돈, 박근혜의 돈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YTN의 지난 1월4일 후속보도 역시 이 같은 정황에 힘을 실었다. 조순제씨가 2007년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보낸 진정서에 따르면 구국봉사단, 여성봉사단, 새마음병원 등의 단체가 최태민과 당시 박근혜 영애, 자신의 3인 협의 운영체제였다고 밝혔다. 이는 YTN의 진정서 입수로 드러났다.
김수진 YTN기자는 “조아무개씨는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에 합류해 우연히 만난 취재원”이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아 설득에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취재팀이 해체되고 난 다음 나온 기사다. 굵직굵직한 보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보도가 ‘현재’를 다뤘다면 이 보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사태가 역사 속에 뿌리가 깊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는 “취재원도 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두 일가의 문제는 특검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목하고 밝혀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2. 그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김필준 JTBC 기자)
▲ 김필준 JTBC 기자
김필준 JTBC 기자는 지난해 10월 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이었던 ‘최순실 태블릿 PC’를 최초 입수해 보도했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데 핵심 물증을 확보하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대국민 사과를 받아낸 보도로 주목을 받았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자가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게이트의 빗장이 열렸지만 박씨가 해당 사실을 시인할 만한 물증이 없었다. 김 기자와 JTBC는 태블릿PC를 입수·보도해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외교·안보 자료 등 청와대 문건을 미리 받아봤다고 보도했고, 이는 시민과 부패 권력 간의 대결에서 시민으로 무게의 중심을 옮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기자는 “당시 보도만 잘해달라며 용기를 내줬던 건물 관리인 노광일씨의 도움이 있었고 함께 힘을 내준 선배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태블릿PC 보도 이후에도 소심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최씨 관련한 제보들, 또 특검 사무실에서 최순실씨에게 소리를 친 청소미화원 임애순씨도 기억에 남는다 ”고 말했다. 또한 “이외에도 촛불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 그런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를 보고 힘을 냈다”고 말했다.
태블릿PC가 놓여있던 더블루K 건물관리인 노씨는 “JTBC는 손석희 사장이 있어 진실에 입각해 보도한다고 판단해 협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 2016년 10월31일 국정농단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3. 국정농단 보도과정에서 빛났던 PD저널리즘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
▲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기자들의 기사뿐 아니라 탐사보도프로그램의 활약도 뛰어났다. 방송에서 직접 “제보자를 기다립니다”라는 알림을 띄우고, PD들이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는 취재현장을 보여주며 PD저널리즘은 시청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 진실을 추구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1054회에서 수십 년에 걸친 최태민 일가의 행적을 추적해 최태민에서 최순실까지 이어진 국정농단의 기원을 취재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정면으로 다룬 1059회와 1060회에선 청와대 비밀노트를 단독입수해 보도했다.
1053회에선 ‘세월호 7시간’ 당시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했던 노력도 돋보였다. 이외에도 지상파에서 처음으로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의혹을 보도’(1057회)하는 등 ‘그것이 알고싶다’는 박근혜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보도에서 ‘그것이 알고싶다’는 박근혜씨의 5촌 사촌인 박용수씨가 사촌동생인 박용철씨를 살해한 후 자살했다는 경찰 수사결과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방송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박용철씨의 최측근이라는 제보자를 만나 두바이에서 3박4일간 인터뷰를 하고, 실제 살해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을 만나는 등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의 전말을 드러내고자 했다.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는 “박근혜씨와 최순실씨 집안,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의 시작이 육영재단을 둘러싼 측면이 있다”라며 “좁게 본다면 국정농단과는 무관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수 있으나 그런 일을 벌이고 또 계획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다보면 이 인물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PD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배PD는 “관련해 제보를 계속 받고 확인하는 중”이라며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배PD는 “다음 방송편은 추정이 아니라 확정적 방송이 될 것, 그에 준하는 제보자들이 나타났다”며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살해했는지 연결고리를 찾아서 방송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4. 문화계까지 뻗친 ‘블랙리스트’ 단독입수 (온누리 JTBC 기자)
▲ 온누리 JTBC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의 임무를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않은 민간인이 수행했다는 점도 외에도 그 수행분야가 거의 모든 분야에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치나 외교, 인사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계에도 그 세력이 넓게 뻗쳐있었다.
특히 이른바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어도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사회에 비판적인 작품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블랙리스트를 가장 먼저 단독 입수 한 기자가 온누리 JTBC 기자였다. 온누리 기자는 “단독 입수했다고 알려졌지만 스포츠 문화팀 팀원들과 함께 취재한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2016년 12월29일자 단독보도에서 JTBC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전 차관의 주도로 비협조적인 경기단체명단, 이른바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해당 단체는 예산 지원을 끊으라는 공문을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보냈다고 폭로했다. 문체부는 단체들이 문체부의 요구에 제대로 따랐는지를 O, X로 표시했다. 개인별 블랙리스트가 따로 있다는 증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확인한 단독보도 이후에도 온누리 기자는 “해외 문화원서도 블랙리스트… 외교라인도 개입 증언” 후속 리포트를 통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문체부를 넘어 한국문화원, 총영사 등 외교라인까지 관여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온 기자는 블랙리스트부터 시작해 어버이연합을 동원한 관제데모 등 정부가 개입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분야로 취재영역을 확장했다.
이 같은 보도는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던 반 헌법적 행위를 드러냄으로서 박근혜씨의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하나인 직권남용의 증거로 충분했다.
▲ 1월2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5. 김영한 靑 민정수석의 210일치 비망록을 쏘아 올리다 (하누리 TV조선 기자)
▲ 하누리 TV조선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사태에서 TV조선 보도를 떠올리면 지난해 7월 중순 미르·K스포츠재단 최초 보도나 10월25일 최순실의 의상실 영상보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TV조선의 ‘임팩트’는 고인이 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단독보도였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생활했던 210일간의 업무일지격인 비망록은 청와대의 문제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가득했다.
하누리 TV조선 기자는 김영한 비망록 보도를 주도했다. 2016년 11월13일자 “‘세월호 7시간’ 김기춘, 수석들 입과 귀 막았다” 리포트를 통해 “이 7시간에 대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수석들에게 모르쇠 방침을 지시했다”며 그 증거로 2014년 7월18일자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하누리 기자는 이밖에도 “정윤회 수사 축소, 청와대 검찰 협의 정황 나왔다”(11월11일), “청와대 ‘비판언론 불이익 가도록’”(11월15일) 등 단독보도를 쏟아내며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로 국정농단의 실체를 가리켰다.
이 무렵 국정농단보도는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보도와 TV조선의 김영한 비망록 보도 두 날개로 날았다. 김영한 비망록 보도는 박근혜정부에서의 언론탄압과 여론조작, 사찰 등의 반 헌법적 행위들을 추적해 최순실 개인의 국정개입으로 그칠 뻔 한 사태를 국정농단으로 키워낸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김영한 비망록을 발굴해낸 TV조선으로 인해 타사에서도 수많은 관련 보도를 쏟아낼 수 있었으며, 당시 보도는 한국판 명예시민혁명 국면에서 진보·보수언론간의 ‘합작’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누리 TV조선 기자는 “탄핵 선고가 나고 타사 선후배들과 모여앉아 ‘누가 이기고 지는 일도 아니었고, 기쁠 일도 아니었다’는 데 공감했다. 기뻤던 적 없는 취재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하며 매번 무거웠고 반성했다”며 그간 소회를 밝혔다.
하누리 기자는 “재판도 취재도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고 아직 풀어내야 할 진실이 남아있다”며 “앞으로도 차분히 책임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선후배들과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한 비망록 보도와 관련해선 “김 전 수석 어머님과 가족 분들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꼭 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하누리 기자는 비선실세 정윤회가 안광한 전 MBC사장과 여러 차례 만났고, 우호적인 보도를 요구했다는 리포트를 내며 MBC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6. 덴마크로 날아간 추적자, 정유라를 체포하다 (이가혁 JTBC기자)
▲ 이가혁 JTBC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모든 언론의 목표는 정유라를 찾는 것이었다. 많은 기자들이 유럽의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기어코 찾아냈다. 이가혁 JTBC기자였다. 그는 지난 1월2일 덴마크 현지에서 정유라 체포과정을 단독 보도했다. 취재진은 덴마크 올보르 한 주택가에서 정씨가 타고 다닌 폭스바겐 차량을 발견해 정씨를 찾아냈다.
이 기자는 “꾸준하게 제보가 있어서 현지로 가게 된 것인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나’가 아니라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럼에도 정유라가 지나간 흔적이나 교민들의 제보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취재 과정을 꾸준하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현지에 25일 정도 머물렀다.
당시 JTBC ‘뉴스룸’에서 이 기자는 “외출하는 정씨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저희가 은신처를 잠시라도 벗어난 사실을 정씨 측이 파악한다면 새로운 장소로 도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한국 경찰이 정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을 한 만큼 덴마크 수사 당국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현지 기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정유라 체포는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사그라지던 시점에서 다시금 사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으며 ‘기자는 관찰자인가 참여자인가’ 라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먼저 행동하는 시민과 기자의 역할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쪽에서는 직업윤리의 추구는 사회의 안녕과 보편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정유라 신고 직전 상황을 두고 “저희가 수일동안 해당 은신처 앞에서 기다렸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현지 주민들이 저희를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희가 사라지면 정유라씨가 도주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기자의 행동은 언론계에서의 논란과 달리 일반 뉴스수용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 기자는 “전체 언론이 열심히 취재하는 상황에서 ‘기자하기 잘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껴 본 취재였다”면서 “단순히 거대 권력에 대항해 싸운다기보다는 잘못된 과정을 하나하나 보도해주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목포인데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어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 1월2일 jtbc 뉴스룸 보도
7. “세월호 7시간 朴 머리 연출” 결정적 ‘팩트 폭격’ (이세영 SBS 기자)
▲ 이세영 SBS 기자
“박근혜는 그날(2014년 4월16일)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지난 3월10일 박근혜의 대통령직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결정문 중 일부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의 불성실한 직책 수행이 탄핵 소추 사유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줬고 아직 사법적 판단도 끝나지 않았다.
헌재가 지적한 박근혜씨의 ‘무성의한 태도’에는 4월16일 오후 3시 박씨가 세월호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준비를 지시한 후 지척 거리인 중대본을 방문하기까지 2시간15분이나 걸렸다는 것도 포함된다.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의 미용 시술 의혹 등 행적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시점에서 결정적 ‘팩트 폭격’을 한 언론은 SBS였다. 이세영 SBS 기자는 4월16일에도 박씨의 머리 손질을 위해 청와대를 출입한 전담 미용사를 만나 “박씨가 중대본 방문을 앞두고 일부러 부스스한 모양으로 머리를 연출했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온 국민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탑승자가 무사히 구조돼 돌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하던 시간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한가롭게 머리 연출이나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이세영 기자는 “베일에 싸여있던 세월호 7시간 중 처음으로 드러난 90분이 ‘올림머리’ 손질 시간이란 사실에 국민의 분노가 번지면서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참사를 포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술회했다.
이 기자는 “탄핵 심판 당시 윤전추 행정관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대통령의 머리가 단정했다고 진술했는데 그럼 오후에 일부러 흐트러진 머리를 연출한 건지, 구체적인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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