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실명제-주민번호 '백기'... 1년만 빨랐어도
최시중 방통위 4년, 시청자·소비자는 안중에 없었다
11.12.29 11:30 ㅣ최종 업데이트 11.12.29 11:30  김시연 (staright)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3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제2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오랜 고집이 꺾였다.
 
방통위는 29일 오전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터넷상 주민번호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고 본인확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SK컴즈, 넥슨의 연이은 개인정보유출 사고로 각각 3500만 명과 1320만 명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되자 방통위도 결국 '백기'를 든 셈이다.
 
전 국민 주민번호 유출됐는데... 방통위 '뒷북 대책' 
 
당장 내년부터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을 비롯해 1일 방문자 1만 명이 넘는 웹사이트는 인터넷상 주민번호 수집이나 이용을 할 수 없고 2013년부터는 모든 웹사이트로 확대된다. 또 그동안 악성 댓글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인터넷 여론 소통으로 차단해온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 역시 재검토하기로 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늦게나마 반가운 소식이지만 2008년 옥션 해킹 사건 등으로 이미 인터넷상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이미 사실상 전 국민 주민번호가 유출된 상황에서 '뒷북 대책'이란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2007년 출발한 인터넷 실명제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 1일 방문자 10만 명 이상 웹사이트까지 점차 확대되며 포털은 물론 주요 언론사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게시글과 댓글을 통한 활발한 여론 교류를 막아왔다. 더구나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사이트는 손을 놓으면서 국내 기업 역차별이란 비난까지 받아왔다. 수년째 인터넷 기업과 사용자들의 폐지 요구를 외면해 온 방통위지만 주민번호 이용 금지와 맞물려 실명제 폐지나 대폭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MB18nomA'가 유언비어?... '통제위' 비난 자초
 
이날 방송통신 업무보고에선 지난해에 이어 3대 핵심 과제의 하나로 '건전한 소통 사회 조성'을 내걸었다. 하지만 실제 지난 4년 방통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함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데 앞장섰다.
 
지난 연말 업무보고 당시 방통위는 "사회교란 유언비어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겠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심의 강화를 선언했다(관련기사: '조중동 방송'은 띄우고 누리꾼 입은 막고).
 
실제 공안검사 출신 박만 위원장 취임 이후 방통심의위는 이 과제를 충실히 수행했다. 지난 5월 '2MB18nomA' 트위터 계정이 대통령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차단해 논란을 빚더니, 급기야 SNS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감시를 전담하는 '뉴미디어심의팀'을 만들어 10·26재보선으로 모처럼 불붙은 '트위터 선거'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업무보고에도 기업의 '자정 역할'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방통심의위와 주요 포털 간에 '불법유해정보 자율심의 협력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불법성이 명확한 음란 사행 행위 정보 등'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방통심의위 등 외부 요청 없이 포털 스스로 문제되는 글을 '일시 차단'(임의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셈이어서 자발적 '통신 검열'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통신] 통신요금 인하는 생색내기... 사업자 편에 선 방통위
 
▲ 지난 7월 14일 저녁 종로의 한 한정식집에서 마주앉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통신3사 CEO. 최 위원장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이석채 KT 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총괄사장 ⓒ 방통위 제공

방통위는 2011년을 돌아보면서 통신요금 인하가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2012년 과제에서 취약계층 요금 감면 외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통신요금 인하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려 국민들이 체감하는 가계통신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자 올해 초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까지 나서 통신요금 인하를 압박했다. 오랜 진통 끝에 이통3사는 기본료 1000원 내리고 문자 50건을 무료 제공하기로 했지만 생색내기란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통신사들이 요금 인하 적용 시점을 10월 이후로 계속 미루면서 실제 요금 인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시민사회 요구로 어렵게 도입한 스마트폰 선택요금제 역시 기존 요금할인을 없애는 식으로 실익이 없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런데도 최시중 위원장은 우리나라 통신비는 싼 편인데 통계가 잘못이라며 시종일관 이통사를 두둔했다. 반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가입비 폐지, 반값 기본료 요구와 통신요금 원가 관련 정보공개 청구는 끝까지 외면해 스스로 통신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 편임을 인정했다.
 
[방송] 최시중 '종편 광고팀장' 자임... 재전송 갈등은 속수무책
 
▲ 12월 1일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동아일보), TV조선(조선일보), jTBC(중앙일보), MBN(매일경제) 개국을 앞둔 지난 1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조중동방송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누리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의견으로 '조중동방송을 만든 5적'에 선정된 인물로 한나라당 고흥길(경기 성남분당갑), 이윤성(인천 남동갑), 정병국(경기 가평양평) 의원과 나경원(서울 중구) 전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발표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방송 정책에서도 시청자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그 정점에는 조중동매 종편(종합편성채널)이 있었다. 최시중 위원장은 '종편 광고팀장'이란 비난까지 받으며 광고주들을 수차례 만났고 재허가권을 무기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을 압박해 종편에게 14~19번대 '황금채널'을 안겨줬다.
 
이 때문에 EBS 교육 채널을 비롯한 케이블 채널 번호가 대폭 바뀌고 종편 대신 일부 군소 채널들이 사라져 시청자들은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정작 12월 동시에 개국한 종편은 평균 0.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무리한 개국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KBS 수신료 인상 논란 역시 종편 먹을거리인 광고 수익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 KBS 수신료 1천 원 인상안을 통과시키면서도 일부 여당 상임위원은 수신료를 더 올리더라도 KBS 2TV 광고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방통위는 원안에는 없던 광고 축소를 전제로 한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로 넘겼지만 물가 인상 부담으로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다.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을 압박해 종편에게 황금채널을 안겨준 방통위지만 정작 보편적 시청권과 직결된 지상파 재송신료 갈등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지난 11월 28일 전국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SBS, MBC, KBS2 등 지상파 HD 방송 송출을 중단하면서 700만 명에 이르는 시청자들이 1주일 넘게 시청권을 제약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연말까지 논란을 빚은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법 논란에선 오히려 발을 뺐다. 국회에서 미디어렙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틈을 타 SBS와 MBC까지 직접 광고영업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방통위는 수수방관해 방송계 내부 갈등을 키웠다.
 
최시중 위원장은 이날 종편 방송 개시로 '미디어 빅뱅'이 본격화된 것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실제 '최시중 표 미디어 빅뱅'은 이처럼 언론계 내부 갈등을 증폭시켰고 애꿎은 시청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과오 대상임이 분명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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