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02097.html

해외 미군기지 이전, 한국처럼은 안 했다
등록 :2017-07-10 05:59 수정 :2017-07-10 07:42

미군기지 이전 잃어버린 10년 ① 
독일 공군기지 이전 협정에 총사업비·내역 명시
일본 오키나와 기지 옮길 땐 주민의견 수용제도

독일과 일본에도 미군 주둔 기지가 있고, 전략상 등의 이유로 기지 이전이 진행됐다. 하지만 한국처럼 ‘사업 청구서’ 내지 ‘시간표’가 마구잡이로 춤추는 경우를 찾아보긴 어렵다.

독일은 1990년대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라인마인 공군기지 이전사업을 미군과 협정을 맺어 추진한다. 사업비 최대 비용이 2조1항에 명시됐고, 부록엔 세부항목별 건설비도 적시됐다. 라인마인협정(2조5항)은 규정된 사업비를 초과할 수 없고, 초과할 경우 사업규모를 줄이도록 못박았다. 독일은 심지어 남은 사업비의 반환 규정까지 담았다.

2014년 11월5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해안에서 주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철조망에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글귀와 상징물이 붙어 있다. 이날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에서 수학여행 온 중학생들이 주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철책을 둘러보고 있다. 오키나와/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014년 11월5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해안에서 주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철조망에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글귀와 상징물이 붙어 있다. 이날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에서 수학여행 온 중학생들이 주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철책을 둘러보고 있다. 오키나와/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미 기지이전협정의 불평등은 노태우 정부 때 맺은 ‘1990년 양해각서’가 발단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을 앞두고 “(외교부·국방부 주도의) 잠정합의 내용이 90년 합의·양해각서의 불평등 조항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 요구조건까지 수용”했다고 분석(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2003년)했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1990~2000년대 진행된 일본 오키나와 기지 이전사업은 한미연합사나 동두천 화력여단 잔류 문제와 비교된다. 일본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 협의회’를 1995년 설립해 주민 의견을 수용하는 창구로 활용한다. 관방·외무·방위청장관과 오키나와현 지사가 협의회 위원이다. 지역주민의 의견이 대체시설의 규모·위치, 건설공법 등과 관련한 기본계획에도 직접 반영되었다.

이는 국내 지방정부나 주민들의 처지와 많이 다르다. 특히 국방부 주도 사업에서 지역주민의 권리는 대개 ‘안보’ 뒤로 밀렸다. 2003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도 “용산기지 이전 문제는 성격상 재경부·건설부·기획예산처·환경부 등 관계부처 외에 서울시, 평택시, 오산시 등 자치단체가 협상 초기부터 참여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참여가 배제되었다”고 지적했다. 10여년이 지난 2014년 다시 서울시와 동두천시는 관내 주요 기지시설이 더 잔류한다는 정부의 결정을 뉴스를 통해 전해듣는다.

두 지역 일부 시민들은 한미연합사·2사단 210화력여단의 잔류 승인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9월 법원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라며 기각했다. 시민들은 항소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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