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02098.html
[단독] 미군 “한미연합사 잔류, 숙소·위락시설도 필요”…‘용산공원’ 누더기
등록 :2017-07-10 05:59 수정 :2017-07-10 15:36
미군기지 이전 잃어버린 10년 ①
100년 여망 용산공원 사업 차질, 2014년 한미연합사 잔류 결정
반환부지 줄어 ‘반쪽 공원’ 될판, 설계 수정안조차 손놓은 상황
서울시 용산구 80여만평의 땅. 그곳은 지금 주소가 따로 없다. 과거만 있다.
13세기 고려를 침략해온 몽골군 병참기지, 16세기 왜군 주둔지, 그리고 1880년대 들어 청군 숙영지, 1900년대 초입부턴 제국주의 일본의 기지였다. 1945년 그곳만 해방이 되지 않았다. 조선총독의 항복을 받은 미24군단이 일본군 대신 임시로 군장을 풀었고, 6·25 전쟁 중엔 북한군 지휘소가 들어섰다. 1953년 서울대 문리대(동숭동)에 있던 미8군사령부가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산은 미군의 것으로 장기화했다. 말하자면 적어도 100년 넘게 외국군의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없던 잃어버린 땅이다.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받아 ‘모두의’ 국가공원 1호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은 1세기 넘게 죽은 땅을 되살리는 제의를 닮았다. “어느 나라도 수도의 시가지 안에 외국 군대가 별도의 병영을 지어 주둔하고 있는 예가 없기 때문이다. 2차대전을 일으켰다가 참패했던 독일의 베를린 시내에도 연합군이 주둔한 바 없었다”(조광 국사편찬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용산공원의 세계유산적 가치>)는 말마따나, 다시는 그 누구의 것으로도 종속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용산공원 사업은 본래 궤도에서 크게 탈선해 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지연되면서 공원화 일정도 늦춰진데다,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한미연합사 용산 잔류’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국토교통부는 2011년 세운 종합기본계획을 2014년 말 대폭 수정해야 했고, 2년 반이 넘도록 다음 단계인 기본설계 수립조차 못하고 있다. 한미연합사 잔류 규모 등이 미정이고, 반환이 늦어지면서 부지 조사도 덜 된 탓이다.
한미연합사는 다분히 시설 하나가 남는 구조일 수 없어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에 “한미연합사 병력이 남기 위해선 사무실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숙소, 장병들 위락시설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단급 병원이 평택기지로 옮기는 대신 대대 내지 중대급 병원이 잔류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한미연합사 잔류 규모와 관련해 국내 언론을 통해 처음 확인된 주한미군 쪽 입장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4일 오후 내려다본 용산 미군기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방부는 그간 “한미연합사는 (용산기지) 전체의 10분의 1이 안 되게 남기는 것”이라고만 말해왔다. 하지만 이조차 메인포스트(기지 상반부) 안에서만 봤을 때 30% 정도(24만㎡ 추정 시)가 연합사로 인해 ‘통제구역’에 묶인다는 걸 뜻한다. 무엇보다 메인포스트는 일제 때 지어져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군집해 있어 주목을 받아왔다.
사우스포스트(기지 하반부)에선 주한미국대사관 직원들 숙소(17.4만㎡)가 언제 퇴거할지 미정이다. 새 숙소가 완공될 때까지 현 위치에 남기로 전 정부가 추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숙소는 사우스포스트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큰 규모”라며 “(사업주 입장에선) 알박기”라고 말한다.
잔류시설은 이미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 때부터 존재했다. 한-미 간 연락부대를 남기기 위해 드래곤힐 호텔 부지와 헬기장, 출입·방호시설이 반환 대상에서 빠졌다. 규모가 확정된 두 부지와 달리, 출입·방호시설은 7.4만㎡로 국토교통부가 잠정한 적 있지만, 여전히 “늘어나는 것 같다”는 말만 전해진다. 이들의 대략적인 잔류 규모만 빼도 반환 대상 부지에서 4분의 1이 넘게 사라지고, 한미연합사로 공원은 남북으로 쪼개지게 된다.
2017년은 애초 용산기지 반환 시설이 처음으로 시민에게 개방되기로 한 해다. 한미연합사가 그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다. 국토부는 1970년대 건립된 상징성 때문에 ‘일부 보전’ 건물로 분류한 한미연합사를 포함해 먼저 반환된 5개 시설을 첫 임시개방 대상으로 추진했다. 건물 그대로 시민들에게 노출시켜 ‘진로’를 함께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변심으로 이젠 2025년께 이후 반환되어 공원에 맨 마지막으로 ‘첨부’될 판이다.
국방부나 국토부는 “공원의 (단계적) 조성 계획엔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차례 요청 끝에 지난 2월 시장으론 처음 용산기지를 답사한 뒤 “잔류 부지가 계속 늘어 반쪽짜리 공원이 되고 있다”고 맞서왔다.
2016년 8월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공원 토론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988년 8월13일치 <경향신문>에 실린 ‘한국 속의 미국’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미터 간격으로 ‘무단출입금지’란 경고문이 나붙어 있는 그곳이야말로 한국 국민에겐 금단의 성역이다. 인접지역의 재개발·고층건물 규제는 강력히 요구하면서 서울시의 행정 협조 요청엔 ‘노’ 한마디로 거절하는 고자세를 일삼아온 그들이다. (…) 이제 미8군사가 용산 주둔 40여년을 마감하고 한강 이남 이주를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시민들에겐 앓던 이가 빠지기라도 하는 듯한 시원한 낭보다.”
한국 현대사에 용산기지 이전 방침이 처음 공론화된 때다. 전국 토지 9000만평, 건물 8만평을 미군이 무상으로 사용하던 시절, 용산기지만 100만평에 이르고 내부 8만평이 골프장으로 사용되던 시절, 말로나 부려보는 허세였다. 하지만 30년이 더 지난 지금 용산기지는 여전히 잃어버린 땅이고, 그 허세는 일러도 너무 일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단독] 미군 “한미연합사 잔류, 숙소·위락시설도 필요”…‘용산공원’ 누더기
등록 :2017-07-10 05:59 수정 :2017-07-10 15:36
미군기지 이전 잃어버린 10년 ①
100년 여망 용산공원 사업 차질, 2014년 한미연합사 잔류 결정
반환부지 줄어 ‘반쪽 공원’ 될판, 설계 수정안조차 손놓은 상황
서울시 용산구 80여만평의 땅. 그곳은 지금 주소가 따로 없다. 과거만 있다.
13세기 고려를 침략해온 몽골군 병참기지, 16세기 왜군 주둔지, 그리고 1880년대 들어 청군 숙영지, 1900년대 초입부턴 제국주의 일본의 기지였다. 1945년 그곳만 해방이 되지 않았다. 조선총독의 항복을 받은 미24군단이 일본군 대신 임시로 군장을 풀었고, 6·25 전쟁 중엔 북한군 지휘소가 들어섰다. 1953년 서울대 문리대(동숭동)에 있던 미8군사령부가 이전하면서 비로소 용산은 미군의 것으로 장기화했다. 말하자면 적어도 100년 넘게 외국군의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없던 잃어버린 땅이다.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받아 ‘모두의’ 국가공원 1호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은 1세기 넘게 죽은 땅을 되살리는 제의를 닮았다. “어느 나라도 수도의 시가지 안에 외국 군대가 별도의 병영을 지어 주둔하고 있는 예가 없기 때문이다. 2차대전을 일으켰다가 참패했던 독일의 베를린 시내에도 연합군이 주둔한 바 없었다”(조광 국사편찬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용산공원의 세계유산적 가치>)는 말마따나, 다시는 그 누구의 것으로도 종속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용산공원 사업은 본래 궤도에서 크게 탈선해 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지연되면서 공원화 일정도 늦춰진데다,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한미연합사 용산 잔류’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국토교통부는 2011년 세운 종합기본계획을 2014년 말 대폭 수정해야 했고, 2년 반이 넘도록 다음 단계인 기본설계 수립조차 못하고 있다. 한미연합사 잔류 규모 등이 미정이고, 반환이 늦어지면서 부지 조사도 덜 된 탓이다.
한미연합사는 다분히 시설 하나가 남는 구조일 수 없어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에 “한미연합사 병력이 남기 위해선 사무실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숙소, 장병들 위락시설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단급 병원이 평택기지로 옮기는 대신 대대 내지 중대급 병원이 잔류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한미연합사 잔류 규모와 관련해 국내 언론을 통해 처음 확인된 주한미군 쪽 입장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4일 오후 내려다본 용산 미군기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방부는 그간 “한미연합사는 (용산기지) 전체의 10분의 1이 안 되게 남기는 것”이라고만 말해왔다. 하지만 이조차 메인포스트(기지 상반부) 안에서만 봤을 때 30% 정도(24만㎡ 추정 시)가 연합사로 인해 ‘통제구역’에 묶인다는 걸 뜻한다. 무엇보다 메인포스트는 일제 때 지어져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군집해 있어 주목을 받아왔다.
사우스포스트(기지 하반부)에선 주한미국대사관 직원들 숙소(17.4만㎡)가 언제 퇴거할지 미정이다. 새 숙소가 완공될 때까지 현 위치에 남기로 전 정부가 추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숙소는 사우스포스트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큰 규모”라며 “(사업주 입장에선) 알박기”라고 말한다.
잔류시설은 이미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 때부터 존재했다. 한-미 간 연락부대를 남기기 위해 드래곤힐 호텔 부지와 헬기장, 출입·방호시설이 반환 대상에서 빠졌다. 규모가 확정된 두 부지와 달리, 출입·방호시설은 7.4만㎡로 국토교통부가 잠정한 적 있지만, 여전히 “늘어나는 것 같다”는 말만 전해진다. 이들의 대략적인 잔류 규모만 빼도 반환 대상 부지에서 4분의 1이 넘게 사라지고, 한미연합사로 공원은 남북으로 쪼개지게 된다.
2017년은 애초 용산기지 반환 시설이 처음으로 시민에게 개방되기로 한 해다. 한미연합사가 그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다. 국토부는 1970년대 건립된 상징성 때문에 ‘일부 보전’ 건물로 분류한 한미연합사를 포함해 먼저 반환된 5개 시설을 첫 임시개방 대상으로 추진했다. 건물 그대로 시민들에게 노출시켜 ‘진로’를 함께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변심으로 이젠 2025년께 이후 반환되어 공원에 맨 마지막으로 ‘첨부’될 판이다.
국방부나 국토부는 “공원의 (단계적) 조성 계획엔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차례 요청 끝에 지난 2월 시장으론 처음 용산기지를 답사한 뒤 “잔류 부지가 계속 늘어 반쪽짜리 공원이 되고 있다”고 맞서왔다.
2016년 8월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공원 토론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988년 8월13일치 <경향신문>에 실린 ‘한국 속의 미국’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미터 간격으로 ‘무단출입금지’란 경고문이 나붙어 있는 그곳이야말로 한국 국민에겐 금단의 성역이다. 인접지역의 재개발·고층건물 규제는 강력히 요구하면서 서울시의 행정 협조 요청엔 ‘노’ 한마디로 거절하는 고자세를 일삼아온 그들이다. (…) 이제 미8군사가 용산 주둔 40여년을 마감하고 한강 이남 이주를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시민들에겐 앓던 이가 빠지기라도 하는 듯한 시원한 낭보다.”
한국 현대사에 용산기지 이전 방침이 처음 공론화된 때다. 전국 토지 9000만평, 건물 8만평을 미군이 무상으로 사용하던 시절, 용산기지만 100만평에 이르고 내부 8만평이 골프장으로 사용되던 시절, 말로나 부려보는 허세였다. 하지만 30년이 더 지난 지금 용산기지는 여전히 잃어버린 땅이고, 그 허세는 일러도 너무 일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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