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41929

'럭비공' 정유라, 이재용 재판을 헤집다
[38차 공판] 예상 못한 법정 출석에, ‘말 세탁’ 의혹 등 거침없이 증언
17.07.12 21:16 l 최종 업데이트 17.07.13 11:22 l 글: 박소희(sost) 편집: 김도균(capa1954)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씨는 2차 구속영장 기각 후 첫 소환이다.
▲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가 6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럭비공 같다'는 평대로 그의 출석은, 증언 내용은 누구도 생각 못한 방향으로 튀었다.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8차 공판에는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전날 변호인이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까지 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는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삼성의 승마 지원에 대해 자신이 아는 대로, 생각한 대로 거침없이 말했다(관련 기사 : 정유라 '이재용 재판' 출석에 변호인단은 '멘붕'). 

[말 소유권] "삼성이 줬고 내 것처럼 타면 된다더라"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정씨 승마훈련 지원 명목으로 건넨 77억 9735만 원을 뇌물(단순뇌물죄)로 본다. 정씨가 탄 말 살시도와 비타나V, 라우싱1233 구입대금, 최씨 회사 '코어스포츠'와 체결한 용역계약대금 등을 포함한 액수다. 하지만 삼성은 말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넘어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정씨 승마훈련 지원은 뇌물이 아닌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최씨 모녀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정씨는 "2016년 1월 어머니에게 살시도를 우리가 삼성에게서 사면 안 되냐고 묻자 '그럴 필요 없다,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들었다"며 "우리가 말을 소유하는 걸로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는 "어머니가 살시도를 '삼성에서 받은 말'이라고 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정씨가 이 말을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특정하지 못했다며 본인 생각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정씨는 "(삼성에서 받은 말이라고 들은 게) 확실하다"고 반박했다. 

최순실씨는 비타나V와 라우싱1233도 "삼성이 지원하는 말"이라고 했다. 정유라씨는 2016년 2월 두 말을 구입할 때 라우싱1233은 마음에 들었지만 유명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냈던 그랑프리급 말, 비타나V는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어머니가 '삼성이 그랑프리급 말을 지원하는 거다, 그랑프리급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며 "삼성이 선수 한 명당 그랑프리급 말 1마리와 그보다 낮은 말 1마리, 총 2마리를 지원해준다고 들었다"고 했다.

말 소유권이 정확히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정씨는 증언 과정에서 종종 '삼성 말'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해경 검사가 그 뜻을 묻자 "그 말을 삼성이 사준 건지, 빌려 준 건지 파악이 안 되니까 그냥 삼성 말이라고 했다"고 답했다. 다만 살시도든 비타나V, 라우싱1233이든 삼성이 말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정말 삼성 말이라면 지난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비타나V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은 납득 안 된다'는 박주성 검사 질문에는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삼성 지원] "다른 선수 안 오냐는 물음에 엄마가 화냈다"

최씨가 독일에서 만든 코어스포츠가 유령회사인지도 주요 쟁점이다. 특검은 삼성이 정씨 지원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실체도, 실적도 없는 회사와 용역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삼성은 코어스포츠는 유령회사가 아니며 정상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맞선다.

12일 정씨는 코어스포츠가 여러 종목 선수들의 전지훈련을 도와주는 곳이라면서도 "어머니가 제 독일 비자문제로 설립했다"고 했다. 또 2015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월 5000유로(약 650만 원)을 급여로 받았고 이 돈을 생활비로 썼다고 했다. 특검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증언이었다.

삼성 변호인단은 승마훈련 지원 자체가 정씨만 위한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마장마술선수 3명, 장애물 경기선수 3명 등 모두 6명을 지원하기로 한 용역계약 내용을 강조해왔다. 정씨도 이 내용을 알고 있었고, 비슷한 취지로 얘기했다. 그는 "어머니와 (측근) 박원오씨로부터 '삼성이 도쿄올림픽 준비 관련해 6명을 선정한 뒤 훈련시켜 네 명을 단체전에 내보낼 건데 그 중 한 명이 네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없었다. 의아했던 정씨는 몇 차례 어머니에게 '나만 지원 받느냐'고 물었다. '좀 있으면 온다'고 답하던 최씨는 어느 날 "그냥 조용히 있어라, 때가 되면 오겠지 왜 자꾸 물어보냐"며 화를 냈다. 

정씨는 "저만 지원받기로 됐단 말은 들은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선수'로 거론된 사람들 가운데 같은 종목 선수 2명은 박원오씨가 농담처럼 언급한 것이라고 했다. 또 장애물 종목에 참가하는 박재홍 전 마사회 감독 겸 선수와 이아무개 선수가 독일에 오긴 했지만 박 전 감독은 자신이 떠난 뒤에 입국했고 이아무개 선수는 처음부터 다른 승마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2015년 12월말쯤 살시도의 이름을 살바토르로 바꾸는 과정도 석연찮았다. 정씨는 "어머니가 국제승마협회 홈페이지에 살시도 소유가 삼성전자라고 등재됐는데 삼성이 다른 선수들 오기 전에 너만 지원해준다고 소문나면 시끄러워지니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삼성이 바꾸라고 했다더라"고도 했다. 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가 "증인이 삼성 지원을 받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어머니가 화를 냈다고 이해하면 되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말 세탁] "삼성, 말 교환 전날 코펜하겐에서 엄마와 만나"

 최순실(최서연)-정유라 모녀가 소유한 독일 회사 비덱이 인수한 호텔 비덱-타우누스 호텔 전경. 3성급 호텔로 독일 헤센지방에 있으며 16년 6월 23일 재개장했다.
▲  최순실씨 모녀가 인수한 독일 헤센의 비덱-타우느스 호텔. 최씨는 2015년 세운 '코어스포츠' 이름을 비덱스포츠로 바꾼 뒤 호텔을 인수했다. 이 회사는 삼성 돈을 받아 정씨 승마훈련에 필요한 말을 샀고,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삼성과 함께 '말 세탁'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비덱-타우누스 호텔 홈페이지

말들은 끝까지 쟁점이었다. 특검은 국정농단의혹이 불거진 뒤 삼성이 정씨 지원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말 세탁'에 나섰다고 했다. 지난해 8월 22일 삼성과 말 중개상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트가 살시도와 비타나V, 라우싱1233의 허위 매매계약서를 썼다는 얘기다. 또 특검은 삼성이 최씨와 상의해 2016년 9월 비타나V와 살시도를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로 교환했다며 이 과정 전체에 범죄수익 등의 은닉 및 가장죄를 적용했다. 삼성은 8월 맺은 계약엔 문제가 없고, 말 교환은 최씨가 임의로 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12일 정유라씨는 "어머니가 말 교환 계약 전날 (승마 지원을 담당하던)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를 만났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귀국 후 사실관계가 궁금해 자신의 코치이자 코어스포츠 CEO였던 크리스티안 캄플라데와 전화 통화했다. 

"삼성에서 말 바꾸는 걸 몰랐고, 어머니가 독단적으로 했다는데 나는 아닌 걸로 안다. 뭐가 맞냐고 물었더니 크리스티안이 말 바뀌기 바로 전날 코펜하겐에서 어머니와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 전무 세 분이 만난 걸로 알고 있다. 삼성이 모를 수 없다는 의미로 말했다."

당시 최씨 등과 만나긴 했지만 삼성전자가 국내 승마선수들 독일전지훈련을 안드레아스쪽 회사에 맡기기 위해 계약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는 박상진 전 사장의 특검 진술을 뒤집는 얘기였다. 박 전 사장과 황 전무는 이때 말 교환 얘기도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정씨는 자신과 캄플라데의 통화를 녹음해뒀다며 그 파일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국정농단 의혹이 터진 후 승마 지원 관련 용역계약을 종료했고, 2016년 8월 이후 최씨 쪽에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삼성 주장과 미묘하게 다른 얘기도 나왔다. 정씨는 "지난해 9월 덴마크로 이사 간 후 안드레아스가 '삼성이 돈을 주기로 했는데 안 들어온다'고 짜증낸 적이 있다"며 "영어로 제일 먼저 '삼성'을 말해서 정확히 기억한다"고 했다. 말 세탁에 삼성이 관여했을 뿐 아니라 거기서 발생한 비용마저 부담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이날 정씨의 증언은 '승마 지원 = 뇌물'이라는 특검 주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는 말 소유권이나 승마 지원의 성격 자체를 명확히 설명하진 못했다. 하지만 캄플라데와 통화 내용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뇌물 공여(승마 지원)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말 세탁까지 했다는 공소사실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이었다. '범죄를 감췄다'는 이 부분이 인정된다면 특검은 뇌물죄 입증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변호인단은 정씨의 말을 믿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권순익 변호사는 "정씨는 승마지원 관련 각종 계약서나 서류를 본 적 없고, 체결이나 협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어머니에게 간혹 들은 게 아는 내용의 전부"라고 말했다. 또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구속영장이 또 청구될지 모르는 상태라 일부 사실을 특검이 원하는 대로 증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씨 진술은 어머니에게 나중에 들은 몇 마디와 본인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다른 증거에 비해 전혀 우월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