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731

[단독] MBC 프리랜서 뉴스진행자 “나는 파업 대체인력 아냐”
사측의 부당 발언 폭로한 김형기 캐스터, 계약 외 업무 맡기며 대체 인력 활용 정황도 공개
“더이상 라디오뉴스 전하지 않을 것” MBC 총파업 지지 및 퇴사 의사 밝힌 프리랜서 진행자도 있어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9월 04일 월요일

MBC 사측이 프리랜서 계약직 라디오뉴스 진행자에게 TV 관련 업무를 맡기는 등 파업 인력에 대한 대체를 요구하고 실행했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또한 현재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는 MBC 고위 임원이 프리랜서 뉴스 진행자에게 “이 팀은 기존 아나운서들이 복귀하면 없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당노동행위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MBC와의 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불안한 신분을 고리로 비정규직 직원들을 ‘계약 외 업무’에 활용, 파업 공백을 메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라디오뉴스 진행자 6명은 지난해 2월부터 MBC 보도국 소속으로 매시간 라디오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업무는 MBC 아나운서들이 담당했던 업무였으나 사측은 2012년 파업에 참여한 아나운서들을 배제하고 대신 프리랜서 진행자들을 채용했다. 정작 프리랜서 뉴스 진행자는 ‘아나운서’가 아닌 ‘캐스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야 했다.  

이들과 같은 팀에서 일하던 라디오뉴스팀 데스크들이 총파업에 나선 상황에서 프리랜서 진행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파업 대체 인력’으로 활용하려는 사측의 꼼수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일주일여 전 한 MBC 고위 임원은 라디오뉴스 진행자 가운데 한 명을 사석으로 불러 “지금 경영진이 바뀌면 현행 프리랜서 진행자 6명이 라디오뉴스를 진행하는 시스템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유지가 어려울 것”, “총파업으로 라디오뉴스 외에 TV쪽에서도 업무 공백이 생기면 도와 달라”는 취지의 사실상 ‘협박성 발언’을 했다.
이 인사는 현재 고용노동부 등으로부터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3일 이 인사의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지난 1일에는 회사 전달사항을 공유하는 SNS방에 “주말 TV 뉴스에 임시 신설되는 코너 녹음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내려왔고 담당 프리랜서 진행자는 거절하지 못한 채 따라야 했다. 

1년여 단위로 이뤄졌던 이들 계약서에는 불공정한 조항이 적지 않다. ‘계약의 해지’ 항목에는 “계약기간 종료 전이라도 ‘을’(프리랜서 진행자)의 출연 프로그램이 폐지된 경우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또 집단적 또는 개인적 이유로 프로그램 출연을 거부할 수 없게 명시돼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프리랜서 진행자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위반하면 위약금 200만 원을 회사(계약서상 ‘갑’)에 지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발생한 손해 전부를 프리랜서 진행자들에게 배상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MBC와 프리랜서 라디오뉴스 진행자들과 맺은 계약서. 사진=미디어오늘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MBC와 프리랜서 라디오뉴스 진행자들과 맺은 계약서. 사진=미디어오늘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한 프리랜서 김형기 캐스터는 미디어오늘에 “이런 계약 사항들을 위반하면 위약금을 물거나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까지 가능하도록 한 독소조항도 있다”며 “지금 하는 일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비정규직 인력을 파업대체용으로 사용하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파업 상황에서 계약과 다른 업무가 주어지면 이는 부당노동행위, 즉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대체하려는 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MBC 구성원들과 언론 소비자가 고통 받는 현실을 연장하는 재료로 쓰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언론개혁이 화두인 지금, 목소리를 보탤 권리조차 없고 신분상 재갈이 물린 비정규직 뉴스 진행자의 존재는 공정방송 투쟁 중인 방송사에서 조명 받지 못했던 또 다른 단면”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프리랜서 라디오뉴스 진행자 A씨도 4일 총파업을 앞두고 미디어오늘에 “다른 데서 일을 하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솔직히 불안하지만 더 이상 MBC 라디오뉴스를 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MBC 총파업 지지와 퇴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아래는 프리랜서 라디오뉴스 진행자 김형기 캐스터가 3일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입장문 전문이다.  

<저는 비정규직 언론인입니다> 

사무실이 텅 비었습니다. 인사발령 안내문들만 게시판에 가득합니다. 따끈한 뉴스들이 오가던 일터는 왠지 모를 차가운 공기가 감돕니다. 총 파업 첫날, 여기는 MBC 보도국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지 1년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같은 팀으로 일하던 라디오뉴스팀 데스크들은 20여 일간의 제작거부 끝에 이제는 아예 회사 밖에서 끝 모를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안에 남겨진 저는 오늘도 가시방석에 앉아 정시 라디오뉴스를 전합니다. 저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아니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라디오뉴스 전문 진행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 파업 약 1주일 전, 회사의 한 고위 임원이 라디오뉴스 진행자 중 한 명을 사석으로 불러 전달토록 한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 경영진이 바뀌면 현행 프리랜서 진행자 6명이 라디오뉴스를 진행하는 시스템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총파업으로 라디오뉴스 외에 TV쪽에서도 업무 공백이 생기면 도와달라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라디오뉴스 전문 인력인 진행자들에게 프리랜서 출연 계약이라는 신분상 약점을 이용해 불안감을 조장하고 파업 대체 인력이 되어 달라는 것으로 해석될 발언이었습니다.

며칠 뒤 총 파업을 코앞에 둔 금요일 오전, 갑자기 전달사항을 알리는 용도의 단체 카카오톡방에 ‘주말 TV 뉴스에 임시 신설되는 코너 녹음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당일 회사에 있던 진행자는 갑작스런 계약 외 업무라고 말했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야 했습니다.

계약서상 저를 비롯한 라디오뉴스 진행자들은 ‘을’입니다. 계약서엔 집단적 또는 개인적 이유로 프로그램 출연을 거부할 수 없게 명시되어 있고, ‘갑’인 회사는 계약 해지 권한은 물론 출연프로그램까지도 자유롭게 폐지할 수 있을 만큼 권한이 막강합니다. 부당한 줄은 알지만 ‘을’인 저에게 이런 내용에 대한 이의 제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또 이런 계약 사항들을 위반하면 위약금을 물거나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까지 가능하도록 한 독소조항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에서도 배제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짊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비정규직 인력을 파업대체용으로 사용하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파업 상황에서 계약과 다른 업무가 주어진다면 이는 법으로 막고 있는 부당노동행위, 즉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대체하려는 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이건 이미 고용노동부가 특별 근로 감독 중인 사항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MBC구성원들이 그리고 언론소비자가 고통 받는 이런 현실을 연장하는 재료로 쓰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언론개혁이 화두인 지금, 목소리를 보탤 권리조차 없고 신분상 재갈이 물려 더더욱 외칠 수 없는 비정규직 뉴스진행자의 존재는 공정방송 투쟁 중인 방송사에, 조명 받지 못했던 또 다른 단면입니다. MBC 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도 저 같은 수많은 비정규직 언론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비극은 다시없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호소합니다. 우리들이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두렵지만 다시 한 번 외칩니다. 저는 파업대체인력이 아닙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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